차두리의 아름다운 눈물
권영상
어제다.
아침부터 뉴질랜드와의 A매치 축구 평가전을 기다렸다. 정확히 말하자면뉴질랜드와의 축구 시합을 기다렸다고 볼 수는 없다. 나는 뉴질랜드 축구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쪽에 어떤 선수들이 있는지, 그들 중 누구를 주목해야 하는지, 우리가 이길 건지 질 건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차두리 선수가 출전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차두리 선수를 아침부터 기다릴 만큼 좋아하는 팬이냐, 그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지난 아시안컵 대회 때 우즈베키스탄 전에서 보여주던 그의 70미터 ‘폭풍 드리블’ 질주, 그 모습을 잊을 수는 없다. 그가 체력이 좋고 불뚝소처럼 드리블 하여 상대편 골문 앞으로 공을 날리는 슛 능력은 익히 알고 있다. 그날의 폭풍 질주는 그의 불뚝소 기질을 잘 증명해 보이는 명쾌한 장면이었다.
그렇도록 체력 있고, 능력 있는 청년 선수가 은퇴를 하네 마네 하는 말은 그때에 나왔다. 축구의 문외한이지만 한 인재를 잃는 아쉬움이 있었다. 왜 잘 나가는 그가 이 황금시기에 국가대표 선수를 그만 둘까. 혹시 만용은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준우승을 하긴 했지만 실제 아시안컵 당시만 해도 우리의 공격력은 지지부진했다. 대부분이 무승부였다. 패스나 드리블도 정확도가 떨어졌다. 그런 중에도 차두리 선수가 공을 잡으면 왠지 마음이 놓였다. 어떻든 공만은 빼앗기지는 않을 것 같은, 아니 상대 진영으로 밀고 올라가 골이라도 하나 넣을 것 같은 안도감이 그의 불뚝소 같은 몸에서 풍겼다.
“차두리 잡았다.”
차두리 선수가 공을 잡으면 뭔일이라도 낼 것처럼 나는 소리쳤다. 안 풀리던 경기도 그가 잡으면 풀릴 것 같고, 그가 슛을 날리면 누군가의 뒷머리를 맞고도 골이 들어갈 것 같았다. 아니 허공으로 날아가던 공도 갑자기 방향을 바꿔 골문 안으로 쑥 들어가 줄 것 같았다.
그렇게 믿음을 주던 차두리 선수에게 뉴질랜드 전 하프타임에 은퇴 기회를 줄거라는 기사가 있었다. 그 장면이 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침부터 뉴질랜드전을 기다린 건 순전히 그 이유 때문이었다.
저녁 8시. 그가 운동장에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포지션을 잘 맡아주었고 기어이 전반 종료 직전 교체 아웃되었으며 그것이 그의 은퇴가 되었다. 그는 그 순간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모인 3만여 관중의 기립 박수를 받았고, 아버지 차범근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의 눈물은 감동적이었다. 이로서 그는 76번째 대표 팀 경기를 끝으로 대표 팀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저는 분명히 제가 한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는 말을 남기고 대표 팀에서 물러났다. 그가 관중을 향해 작별의 손을 흔들 때 나도 그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의 축구 역정 때문이 아니었다. 아직 ‘많은 사람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러설 줄 아는 35살 청년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내년에 K리그마저 은퇴한다면 이제 그라운드에 서는 그를 다시 볼 수 없다. 동료 선수들에게 짐이 되기 전에, 70미터 '폭풍 질주'의 열광이 식기 전에 그라운드를 떠나는 그의 아름다운 결단이 너무도 그다워 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박수를 받으며 떠나고 싶어 한다. 박수를 받을 때가 어떤 때인가. 그때를 올바로 선택하지 못할 때 사람은 추해진다. 잘 떠나는 일이란 잘 나가는 일만큼 어렵다. 아버지이며 축구 신화 차범근이라는 거대한 벽과 부딪히며 살아온 그만이 선택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은퇴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호기로운 사람도 가끔은 넘을 수 없는 벽과 마주 서보아야 한다. 그래야 겸손할 수 있고 또한 물러설 때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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