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되는 일
권영상
딸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의 일이다. 모처럼 나들이를 끝내고 늦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저녁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길이 너무 막혀 음식점에 들르기가 어려웠다. 그때 우리는 얼른 집에 들어가 음식을 시켜먹기로 했다. 딸아이도 배고팠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내도 나도 배고팠다. 집에 들어오는 대로 음식 배달을 시켰다.
그 사이 아내는 식구들의 벗어놓은 나들이옷을 세탁하기 시작했고, 나는 나대로 다음 날에 줄 원고를 정리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내는 더운 물에 비벼놓은 빨래를 세탁기로 나르느라 내 방 앞을 지나고 있었다. 나도 간밤에 써놓은 글을 대충 마무리해 가고 있을 때였다.
“아빠, 왜 자장면 안 오지?”
딸아이가 참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시계를 봤다. 음식을 시킨 지 벌써 30분이 지났다. 주문이 잘못 됐나 싶어 다시 그 음식점에 독촉 전화를 했다.
“미안합니다. 방금 떠났습니다.”
태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여태 뭘 하다가 방금 떠난 걸까! 나는 수화기를 놓고 딸아이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며 달랬다. 배고프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배고픈 걸 잊으려고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다시 시계를 봤다. 10분이 다시 흘렀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급기야 아내가 ‘어떻게 시켰는데 그러냐’고 한마디 했다. 딸아이는 집 앞 음식점에 나가자고 투덜댔고, 이리저리 달래는 동안 또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초인종이 울렸다. 배달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나갔다.
“음식 시킨 적 없습니다. 돌아가세요.”
나는 굳게 닫힌 문 이쪽에서 배달 온 이를 차갑게 돌려세웠다. 그도 미안했던지 순순히 돌아가 버렸다. 음식을 시킨 지 40여분이 지나고 있었다. 거실에 들어서자, 딸아이도 아내도 뜻밖의 내 행동에 허탈해 했다. 이윽고 딸아이가 눈물을 보였다.
“다 식은 음식 먹어봐야 맛없어.”
아내가 얼른 딸아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우리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밤을 넘겼다.
그 뒷날부터다. 딸아이와 아내 볼 낯이 없어졌다. 아빠란 사람이, 아니 남편이란 사람이 그걸 참지 못해 배달 온 사람을 돌려보내다니! 그런 마음으로 나를 볼 것 같아 부끄러웠다. 어떻게 생각하면 늦어도 너무 늦어진 배달음식을 거부한 나의 판단이 정상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내가 부끄러워진 건 그 일이 어린 딸아이가 보는 앞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딸아이에게 좀은 너그러운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안 되었을까.
나는 요즘도 그때 딸아이가 흘리던 눈물을 잊지 못한다. 그 눈물이 배고픔의 눈물이었는지 아빠에 대한 실망의 눈물이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나는 그와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능력 이상의 에너지를 쓰며 참는 버릇을 키워왔다. 아빠가 인색하지 않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데 좀은 관대하다거나 좀은 아량 있다는 걸 어떻게든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살아오며 생각해도 자식 앞에서 아버지 노릇하는 일은 힘들다. 제대로 된 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라도 남자는 아버지가 되어볼 필요가 있다.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비 오는 밤 (0) | 2015.04.05 |
---|---|
차두리의 아름다운 눈물 (0) | 2015.04.02 |
화양연화 (0) | 2015.03.27 |
펜실베니아의 오래고 긴 겨울 (0) | 2015.03.22 |
창호문을 바르고 봄을 맞다 (0) | 2015.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