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창호문을 바르고 봄을 맞다

권영상 2015. 3. 21. 12:15

창호문을 바르고 봄을 맞다

권영상

 

 

 

 

 

봄볕 잘 드는 곳이 있다. 앞 베란다다. 봄 느낌이 들면서부터 앞 베란다에 자주 나간다. 베란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데 문득 잊혀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해마다 이맘쯤에 꽃 피던 히아신스 화분이다. 베란다 구석에 쌓아놓은 빈 화분들을 살폈다. 그 어디에 묻혀있을 것 같았다. 그걸 찾아내려면 우선 창가의 난화분이며 행운목이며 향수나무 화분을 옮겨야 한다. 히아신스 화분을 찾으려다 결국 베란다 정리까지 했다. 힘들어 그렇지 하고 나면 한결 넓고 깨끗해 보여 좋다.

 

 

 

내 눈에 성가신 게 또 하나 띄었다. 안방 창호 미닫이문이다. 이중 창문이라 바깥쪽은 유리문이고, 방안 쪽은 창호지를 바른 전통 격자문양 미닫이다. 문구멍을 뚫을 아이도 없고, 사람이 가까이하는 문이 아니라 문은 멀쩡하다. 그러나 문을 바른지 오래 되어서 종이가 어둡다.

“창호문 뜯어내고 다시 발라볼까?”

지나가는 말투로 아내 마음을 슬쩍 떠보았다.

멀쩡한 문 뜯었다가 어쩌려고 그러냐며 펄쩍 뛴다. 그렇기는 했다. 괜히 일을 벌려놓았다가 마무리를 못하고 말까 은근히 걱정은 되었다.

 

 

 

“아니, 봄이라.......”

나는 봄 핑계를 대며 한 발 물러섰다.

예전 어렸을 땐 아버지 손에 이끌려 온 집안 문을 발랐다. 긴 겨울을 나고 봄이 천천히 다가오면 아버지는 마당 볍씨 독에 볍씨를 담가놓고 안방 사잇방 사랑방 문과 덧문을 모두 떼어 창호지를 바르셨다. 방안 가득히 따스한 봄볕을 받아들여 집의 체온을 높이려고 그러셨을 터다. 집의 체온이 높아져야 거기 사는 사람들의 기력 회복이 빨라진다.

“그럼 한번 발라보든지.”

뜻밖에도 아내가 생각을 바꾸었다. 그건 집에 한지가 몇 묶음이나 있고, 페인트칠을 하느라 사놓은 페인트 붓이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내 말이 떨어지자, 창호문 네 짝을 떼어 화장실로 가져갔다. 더운 물을 틀어 창호문에 붙어 있는 오래된 종이를 충분히 적시고 불렸다. 종이가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불렸다가 아버지가 하시듯 종이 끝을 찾아 쥐고 가볍게 떼어냈다. 종이가 떨어지지 않은 곳은 칼로 말끔하게 긁어내는 동안 아내는 냄비에 풀을 쑤었다. 아내도 나처럼 창호문을 가진 집에서 살았던 과거가 있을 테니 그런 문에 대한 향수도 있을 테다.

손질을 다 마친 문을 한 짝씩 거실에 날라다 뉘여 놓고 문에 맞추어 한지를 잘랐다. 마당에 나가선 측백나뭇잎을 조끔씩 떼어왔다. 시골 같으면 문 손잡이 칸에 댓잎이나 은행잎을 붙이거나 종이 문양을 내어 붙였다.

 

 

 

 

아내가 쑤어온 풀로 한지에 풀칠을 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나는 아내의 손을 재촉했다. 종이가 풀의 무게를 못 이겨 쳐지기 전에 얼른 맞들어야 한다. 창호문 바르기는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반드시 그 누군가와 풀 바른 종이를 마주 들고 호흡을 맞추어야 한다. 그게 창호문 바르기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어느 한쪽이 먼저 내려놓아도 안 되고 비뚤게 놓아도 안 된다. 한지는 풀을 먹으면 종이가 금방 쳐져서 딱 한 번 만에 네 귀를 맞추어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찢어지거나 접혀져서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나는 아내와 손을 맞추어 한장 한장 정성들여 네 짝을 다 발랐다. 두 짝씩 짝을 맞추어 손잡이 옆에 측백나뭇잎도 운치 있게 넣었다. 그리고는 스프레이로 창호지에 물을 뿜어주었다. 예전 아버지 하시던 대로 할 양이면 물을 한 입 물어 푸우푸우 뿜어내는 일이다. 물을 뿜어내어 풀 먹은 종이를 또 한번 적셔주는 것은 잘 붙으라고 손으로 꼭꼭 눌러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거기다가 또 하나 말랐을 때 종이에 팽팽한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다.

종이 바르기가 다 된 문을 볕드는 베란다에 비스듬히 내다세웠다. 고향집에선 마루 난간에 비스듬하게 기대어놓고 마를 때를 기다렸다.

 

 

 

세월이 아득히 흘렀다. 볍씨 독에 볍씨를 담그고 아버지와 마주 문종이를 잡던 일을 이제는 아내와 함께 한다. 아내와 결혼을 하여 산 지 오래됐다. 그렇지만 무슨 일이든지 젖은 문종이를 맞들 듯 서로 그 무언가를 맞들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아내에겐 아내의 직장이 있고, 내겐 내 직장이 있었으니 서로 마주 앉아 생각과 마음을 맞추어 가며 살지 못했다. 마치 종목이 다른 달리기 선수처럼 자신의 코스에만 매달려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런 까닭에 잠시 길을 세우면 티격태격 싸우거나 얼굴을 붉혔고, 시간이 지나면 잊은 듯이 감정을 감추며 살아왔다.

 

 

 

볕이 설핏 베란다를 빠져나간다.

나가 보니 그 사이 문이 바짝 말랐다. 손끝으로 창호를 두드려 본다. 통통통 문종이가 맑은 소리로 울린다. 한 짝 한 짝 들어 순서에 맞게 제 문틀에 끼운다. 별안간에 방이 환해진다. 봄이 안방까지 깊숙이 들어온 느낌이다. 아내와 오랜만에 손을 맞추어서 얻어낸 봄이다. 이 봄볕으로 겨울에 지친 기력을 되찾아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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