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두레박우물물 길어올리기

권영상 2015. 2. 8. 23:11

두레박우물물 길어올리기

권영상

 

 

추억 길어올리기, 옛정 길어올리기, 시심 길어올리기, 달빛 길어올리기, 희망 길어올리기, 사랑 길어올리기, 우물물 길어올리기........

 

 

참 좋은 말들이지요? ‘길어올리기’란 말이 이 말들을 그윽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는 듯합니다. ‘길어올리다’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우물이나 샘에서 두레박이나 바가지로 물을 떠올리다’ 라고 적혀 있네요. 이 말은 그 앞에 놓인 ‘추억’, ‘옛정’, ‘시심’, ‘달빛’, ‘희망’ 등의 추상적인 말을 시각화하면서 동시에 사람의 내면적 행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들의 중심의미를 갖는 말은 맨 마지막 ‘우물물 길어올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용례들의 의미는 모두 ‘깊은 지하의 물을 길어올리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물을 길어올리는 일이란 어떤 일인가요?

 

 

 

내 친구 민요의 집은 즈므에 있지요. 즈므란 강릉에서 주문진으로 넘어가는 중간쯤에 있는 마을로 조산(助山)이라는 순우리말 지명입니다. 나는 청년 시절 가끔 술을 마시러 즈므에 있는 민요의 집에 들렀고, 밤이 늦으면 그의 집 행랑방에서 자고 오곤 했었지요.

민요의 집앞 담장너머에는 백일홍나무 한 그루가 아주 호사스런 꽃을 피우며 서 있었는데 그 곁에 두레박우물이 있었답니다. 막돌로 쌓은 둥근 우물입니다. 우물 주변엔 역시 미나리밭이 있고, 창포가 빙 둘러가며 크고 있었지요. 우물은 깊었습니다. 한 이십 미터는 되었을 것 같습니다. 돌로 쌓아내려간 우물벽엔 파랗게 물이끼가 살거나 관중 비슷한 꽤 큰 홀씨식물들이 붙어 살았습니다.

 

 

 

컴컴한 우물 밑바닥엔 늘 물빛이 번들댔습니다. 우물샘을 쉬지않고 흘렀고, 그 분출로 말미암아 우물물은 신비하게 번들거렸지요. 민요의 집에 들를 때면 일부러라도 두레박질을 해 우물물을 길어올려 마시곤했습니다. 이승의 물 같지 않게 시원했습니다. 마치 막힌 내 몸의 구멍이 확 열려나는 기분이었지요. 부유한 백일홍꽃이며 보랏빛 창포나 푸른 미나리 빛이 뿜어내는 울력 탓에 물맛도 어지간히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맛은 혀로도 보지만 실은 눈으로도 본다는 말이 허사가 아닙니다.

 

 

 

 

그렇게 가끔 가던 민요네를 찾던 어느 한 날 밤이었습니다.

방안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술김에 민요와 그만 다투는 일이 생겼습니다. 다툼은 금방 끝났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심한 밤인지라 나는 그와 서로 등을 대고 취한 채 누워잤습니다. 아무리 자려해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도 우리 집을 들락였고, 나 또한 그랬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 모르는 것 없이 잘 알고 있다고, 세상에서 둘도 없이 절친한 사이라고 믿었던 거지요.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서로의 마음 속에 든 것을 알지 못하는 게 많았습니다. 내가 그의 마음을 알지 못할 때, 그가 또 나의 마음을 알지 못할 때, 그때의 그 기분은 서로를 참 서먹하게 만들었습니다. 먼 사람 같이 외로워졌고, 서로 잘 안다고 하던 그 마음의 부위를 채울 길 없어 허전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밤이 깊다 하여도 거기 누워있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조용히 그 방을 나와 민요의 집을 나섰습니다.

 

 

 

그때, 나를 이끈 것이 있었습니다. 백일홍나무 곁에 서 있는 두레박우물이었습니다. 마침 술로 인해 한창 내 몸이 말라있을 때였으니까요. 나는 달빛이 어스름하게 비치는 두레박우물터로 다가갔습니다. 백일홍꽃 잔잔한 향기가 밤공기 중에 떠돌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물에서 피어오르는 차고 신선한 기운이 우물터를 휩싸고 돌았습니다.

나는 나무 기둥에 걸쳐놓은 두레박을 내려 우물 속에 내려보냈습니다. 물에 대한 갈증이 심하게 일었습니다. 그렇다고 꼭 몸에 밴 술 탓만은 아니었습니다. 민요에게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데 대한 나의 허전함을 두레박 물로 채우고 싶다는 뜻도 있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답답한 속을 펑 뚫어내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기도 했겠지요.

 

 

 

나는 그런 마음으로 줄을 풀어 두레박을 다 내렸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줄은 다 풀렸는데, 두레박은 우물물에 가 닿지 않았습니다. 두레박이 가 닿는다면 저 안쪽에서 번들거리는 물빛이 부서져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 기척이 없습니다. 두레박을 끌어올려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줄이 엉킨 데는 없었습니다. 결국 나는 우물물을 마시지 못하고 갈증인 채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먼 시오 리 길을 돌아 집 앞에 다 왔을 때입니다.

 

 

 

 

“내 마음의 두레박끈이 짧았구나.”

불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여도 그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것은 나만이었을까요. 그도 내게서 그런 아쉬운 마음을 느꼈을 테지요.

그 후, 우리는 화해하여 다시 만났지만 그 만남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마음에 가 닿지 못 하던 때에 겪었던 상처 때문이었을까요. 결국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날 민요의 집 두레박우물에서 겪었던 일만은 잊히지 않습니다.

 

 

 

엉덩이가 위보다 좁은 두레박은 우물물에 닿으면 쓰러져 물속에 잠깁니다. 그 두레박 줄을 천천히 두 손으로 번갈아 잡고 힘들게 끌어올리는 일, 그 일이 물을 길어올리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민요의 집에서 있었던 그날의 일 말입니다. 그날의 일은 내 마음의 짧은 두레박줄이 그의 마음에 가 닿는 데 실패한 사건이었습니다.

물이, 깊은 지하에서 맑아지는 데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도 세상 희노애락을 삭이고 삭여 순정한 마음에 이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나도 아닌 타인의 순정한 마음을 빛의 세상으로 길어올리자면 지난한 고심과 배려와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 무엇을 길어올리는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심오한 작업입니다.

 

 

 

덤벙덤벙하고, 성정이 조용하지 못한, 무언가를 오래 참고 기다릴 줄 모르는, 타인을 배려하는데 서툰 내가 맛보기엔 너무나 난해한 것이 무엇을 길어올리는 일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더욱 ‘추억 길어올리기’니 ‘옛정 길어올리기’, ‘시심 길어올리기’, ‘달빛 길어올리기’ 등의 행위가 부럽고, 멋지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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