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우물이 있는 고향

권영상 2015. 2. 2. 16:21

우물이 있는 고향

권영상

 

 

 

 

나의 고향 아랫말에 두레박우물이 있다. 지금도 있다. 민속촌 아니면 보기 어려운 두레박우물이 우리 아랫말에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내가 살던 아랫말은 고작 다섯 집의 집성촌이다.

지금의 우물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다. 광해 연간에 웃대할아버지께서 우리 아랫말로 내려오셨으니 4백년쯤 되지 않을까, 아는 것은 그것뿐이다. 지금 이 우물 자리가 그 무렵의 우물자리인지도 분명히 알 까닭이 없다. 분명한 것은 사람이 정착하는 데에 반드시 우물이 필요하였을 테니, 우물의 형태는 달라도 우물 자리는 지금 이 자리일 것이라고 추측해볼 뿐이다.

 

 

 

 

우물터는 비교적 큰 편이다. 웬만한 집터만 하다. 빨래나 등목하기에 좋은 너럭바위와 물빠짐을 고려한 평평한 바윗돌들이 깔려있고, 그 중심부에 우물이 있다. 물동이를 얹을 수 있는 1미터 20센티 높이의 우물턱이 있는, 둥근 모양의 우물이다. 그 곁엔 목간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목간통이 있다. 우물터 낮은 쪽엔 버려진 물을 정수하는 미나리밭이 있고, 그 어름에 늙은 포플러나무 한 그루가 높게 서 있었다.

다섯 집 아랫말은 이 우물을 중심에 두고 방사형으로 모여 있다. 그러니까 길은 모두 우물을 향하여 났고, 이 우물터에 서면 넓게 펼쳐진 들판과 들판 너머 윗마을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우물터는 물 공급원이며 동시에 아랫말로 흘러오는 소식의 첫기착지였다.

 

 

 

그러나 이 좋은 우물터 풍경도 상수도가 들어오면서 변했다. 우물물 사용량이 줄어들면서 미나리밭이 사라졌고, 포플러나무가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이란 우물과 목간통과 주변의 너럭바위와 바윗돌이다. 우리 아랫말의 형편이 이 정도였으니 문명의 세례가 미치는 윗마을 우물은 내가 알기로 다 사라졌다. 어쩌면 우리나라 두레박우물 사정도 별반 다를 게 없이 다 사라졌을 테다.

그러는 격변 속에서도 우리 아랫말의 우물은 용케 살아남았다. 물이 마르지 않았다. 가물 때면 그 예전처럼 수위가 조금 내려가고 장마가 지면 조금 불어올랐다. 이건 분명 우물샘이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우물에 대한 공경심이다. 입에 담을 말은 아니지만 우물을 메우면 사람에 이롭지 않다는.

 

 

 

요 얼마 전 고향집에 내려간 나는 확 변한 우물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물에 먼지와 비를 막는 그럴싸한 모양의 차양대가 번듯하게 서 있었고, 한때 있다가 사라진 목재로 된 우물 뚜껑도 씌워져 있었다. 우물을 관리하던 큰댁 종조카의 뜻이라 했다. 할아버지들이 쓰시던 우물을 어떻게 없애느냐는 거였다. 그 생각이 너무 아름다웠다.

넓은 우물터를 메운다면 집이 한 채도 들어설 수 있고, 고가로 판다하여도 큰돈을 잡을 수 있는 우물터다. 무엇보다 우리 아랫말에 무용한 우물을 그 자리에 두겠다는 뜻이 훌륭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아랫말 풍경이 일순 고답적이며 고상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우물뚜껑을 열고 우물을 들여다 봤다. 거기 뜻밖에도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너무도 닮아가는 내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식전마다 찬 새벽우물물을 길어가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백부님들과 백모님들 모습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분들의 얼굴 모습만이 아니다. 그분들이 사시던 삶과 도덕과 풍습이 마치 필름처럼 또렷이 떠올랐다.

가끔씩 고향에 내려오거든 이걸 보고 가라고 종조카가 재물을 들여 우물을 살려놓은 모양이구나, 싶었다. 포플라와 우물이 있는 풍경, 우물 곁을 지나가던 이들이 두레박우물을 마시고 가던 풍경, 그리고 더운 여름날밤 목간통에 가득 물을 채우고 여럿이 들어가 물탕질을 하다가 말고 반딧불이를 바라보던 어린 날의 풍경들.....

나는 우물턱에 걸쳐놓은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려 지난 날의 풍경에서 벗어나듯 얼굴을 씻었다. 물은 예전 만큼 맑지 않아 음용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차고 시원했다.

 

 

 

가지런히 우물뚜껑을 닫고 돌아섰다.

그 순간 우물가에 서 있던 소년 시절의 내 모습이 설핏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미나리밭의 미나리를 꺾고, 포플러나무에 올라 물오른 포플러 가지로 호드기를 만들어 불던 소년이, 겨울이 오면 여기 이 우물터에서 연을 날리고, 여기 이 우물터에 모여 비석치기를 하고, 땅따먹기를 하던 소년이 슬쩍 우물가 측백나무 숲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여기, 고향을 떠나 오래도록 도회의 회색늪을 살고 있는 한 사내만이 외로이 서 있다.

 

모여든 아이들로 시끄럽던 우물터도 조용하다. 이젠 뛰어나와 놀 아이들도 없다. 그러나 우물샘이 이토록 마르지 않는 한 우물이 있는 고향은 오래도록 번성해 갈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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