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부켄베리아가 주소지를 옮기다

권영상 2014. 8. 29. 08:52

부켄베리아가 주소지를 옮기다

권영상

 

 

 

 

작년 늦봄이다. 진딧물로 시름시름 앓던 부켄베리아를 끝내 베란다 창문 밖으로 내쳤다. 한 일 년 공 들여 키웠지만 역부족이었다. 내 뜻을 몰라주는 부켄베리아가 밉기만 했다. 그러나 어찌 생각하면 아파트에서 나무를 키운다는 일 자체가 우선 적절치 못했다. 나는 그게 미안했다. 꽃을 보자고 나무를 끌어들인 내 책임이 컸다.

어떻든지 버리는 셈 치고 부켄베리아를 베란다 창문 밖 난간에 내놓았다. 나무에 대한 나의 패륜이며 불친절이며 최후의 악수였다. 근데 그 최후의 악수가 악수가 아니라 정수였다. 진딧물에 시달리던 부켄베리아가 직접 부딪히는 바람과 비에 살아나기 시작했다. 불과 두어 달 만에 네 개의 튼튼한 새순을 밀어 올렸다. 그 해 여름, 새순은 1미터가 넘도록 자랐고 중심이 되는 가지는 위층집 창문을 기웃거릴 정도였다.

 

 

 

그 무렵, 안성에 내려가 일 주일을 머물다 올라왔을 때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부켄베리아가 꽃 피고 있었다. 너무도 놀라웠다. 집밖으로 내쫓긴 나무가 울분을 삭혀 꽃을 만들었던 거다. 가지마다 진한 분홍빛 꽃을 피워냈다. 나중에 알았지만 물이 부족하면 꽃을 피운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내가 안성에 내려가 있는 사이 나무는 물 부족을 느꼈고, 끝내 그 위기를 개화로 쏟아냈다.

근데 키우면서 놀란 사실이 또 있다. 일 년에 서너 차례씩이나 꽃이 핀다는 거다. 거기다 더 놀라운 건 화기가 길다는 점이다. 한번 피기 시작하면 두어 달은 갔다. 결국 부켄베리아는 일 년 내내 꽃 피우는 셈이었다.

 

 

 

가끔 아파트 마당 놀이터에서 4층 우리 집을 올려다본다. 진한 분홍 부켄베리아가 눈에 확연히 띈다. 무엇보다 그 꽃을 좋아하는 이가 있다. 바로 위층에 사시는 할머니 내외다.

“날마다 좋은 선물을 주셔서 너무 고맙네요.”

어쩌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할머니를 뵈면 부켄베리아 이야기를 꺼내신다. 날마다 아랫창문을 열고 아침 선물인 양 부켄베리아 꽃을 보신다고 했다. 부켄베리아의 꽃다운 아름다움과 그의 세상을 향해 보내는 빛나는 미덕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도 아침에 일어나면 부켄베리아 꽃부터 본다. 아침 기운을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독특함이 있다. 부켄베리아의 특징은 화사함이다. 마음에 진 깊은 주름살을 활짝 펴준다. 이 화사한 꽃은 실은 꽃이 아니라 초록 꽃받침이다. 초록 꽃받침이 빨강 꽃빛으로 변한 이 화포가 수술 모양의 꽃을 감싸고 있는데 그걸 통틀어 우리는 꽃이라 한다.

 

 

 

부켄베리아를 만난 건 이십여 년 전 인도 조드푸르의 메헤르가르 성에서다. 타르 사막이 내려다보이는 그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성채를 부켄베리아가 분홍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 다음 날 사막 건너 라자스탄의 어느 민가에서 만난 부켄베리아도 향수에 지친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뜨거운 햇빛과 고혹적인 꽃의 화사함을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구한 꽃이라 마음이 좀 각별했다.

 

 

 

그런데 문제는 태풍이었다.

4층 베란다 창밖에 화분을 내놓고 사는 일이 불안했다. 폭우도 그렇지만 강풍이 두려웠다. 화분을 묶어두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쓰였다.

“안성에 가져가 땅에다 심어두면 안 좋을까?”

엊그제 아침이다. 천성적으로 걱정이 많은 아내가 그 말을 꺼냈다. 나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아열대 식물이 안성의 겨울을 견뎌낼 수 있을까, 그게 걱정이었다. 어쨌거나 집 안에 들여놓기 어려울 만큼 커 오르기 전에 안성으로 옮겨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말이 나온 김에 부켄베리아 화분을 간신히 거실로 끌어들였다. 들여놓고 보니 키만도 3미터가 넘었다. 그걸 간신히 안고 아파트 마당에 내려설 때다.

“화분을 어쩌시려고?”

바깥출입을 하고 오시던 위층 할머니가 놀라듯이 물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날마다 이 꽃 보시는 걸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그 사이 할아버지를 잃은 할머니가 더 아쉬워하셨다.

 

 

 

 

안성에 내려와 햇볕 좋은 남향에 화분을 벗기고 부켄베리아를 심었다. 백암에서 사온 쪽파도 같은 날 심었다. 같은 날 배추 모종도 하고, 열무도 두 이랑 심었다. 같은 땅에 같이 뿌리를 내려 같이 크라고 장미 허브도 함께 죽 심었다.

이만큼 키워보니 잘 크는 게 부켄베리아다. 첫날은 잎이 시드는 듯 하더니 이튿날부터 금방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무에겐 아파트 안보다 위험해도 바깥 난간이 좋고, 화분보다야 지력을 직접 느끼는 땅이 제격이다. 그게 정수다. 자식을 키우는 이치가 또한 그렇다.

 

 

 

안성의 겨울이 지난해에는 그리 매섭지 않았다. 어린 산딸나무 묘목도 살아났고, 대봉시 감나무도 견뎌냈다. 서울에서 버젓이 대나무가 사는 것처럼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이국의 만데빌라가 청계산 신구대학 식물원 노지에서 자라며 꽃 피우는 것도 봤다. 좀 무리한 부탁 같지만 부켄베리아에게 탈 없는 월동을 기대해 봐야 할 것 같다. 악수가 정수였듯이.

이렇게 하여 부켄베리아의 주소지가 변경됐다.

밤골 16번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