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이 쓰러진 꽃을 세우다
권영상
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사가지고 돌아올 때다. 집에서 나올 때 생각해두었던 것이 다행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길 옆 동네 철물점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톱 좀 보여주세요.”
내 말에 철물점 주인이 나를 쳐다봤다.
“뭣에 쓰시게요?”
용도에 맞는 톱을 내놓을 모양이었다.
“말뚝을 만드려고요.”
그 말에 주인 아저씨가 나를 훑어보더니 웃었다.
“뭔 말뚝 같은 말씀을.”
요량없이 대답한 나의 솔직함에 나도 웃었다. ‘집안에 두고 쓰려고’ 라든가 ‘의자 좀 고치려고’라든가 그렇게 좀 에둘러 말해도 좋을 걸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새뚱스럽게 ‘말뚝’이라고 했다. 흙 한 톨 밟을 데 없는 서울바닥에서 가당치도 않게 말뚝이라니!
주인은 말뚝보다는 소소한 나무도막을 자르기에 딱 맞는 접이식 톱을 내놓았다. 그것뿐인 듯 해 그냥 그 톱을 들고 나왔다. 나오면서 펴 보니 톱은 작아도 톱니들은 날카롭고 또 번득였다.
안성 오두막집 둘레에 프렌치 메리골드가 한창 피고 있다. 온상 모판에서 기른 꽃모종 80여 포기를 옮겨 심었었다. 그 메리골드가 포기를 벌면서 뭉게구름처럼 자라오르더니 저절로 꽃울타리가 되고 꽃담장이 되었다. 붉은 색 바탕에 노란 줄무늬가 있는 꽃은 필 줄만 알았지 한 달여가 지나도 지는 법이 없었다. 주변에서 일을 하다가도 힘이 들면 메리골드 꽃더미에 달려가 꽃을 흔들면 독특한 허브향이 쏟아졌다. 허브 향은 지친 몸을 단숨에 살려올렸다.
근데 이 프렌치 메리골드가 장마비에 약하다는 흠이 있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내린 몇 차례의 장맛비에 일부 꽃들이 벌써 쓰러지기 시작했다. 꽃포기가 크니 몸을 사려내기도 어려울 테다. 뭔가 꽃을 받쳐줄 지지대가 필요했다. 그럴 때에 떠오른 게 아파트 후문 너머 느티나무 숲이다. 비가 내리면 오래된 삭정이들이 땅바닥에 툭툭 떨어져 내렸다.
집에 오는 대로 옷을 갈아입고 느티나무 숲으로 갔다. 말뚝으로 쓸만한 삭정이들이 수두룩히 많았다. 예전 아버지가 고추밭 둘레에 박으시던 말뚝에 대한 기억이 역연했다. 가급적 굵은 가지를 1미터씩 자르고, 박히는 쪽을 톱으로 뾰족하게 위초리를 냈다. 톱은 생각보다 단호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척척 말을 들었다.
말뚝 십여 개를 만들어 차에 싣고 안성으로 내려갔다.
그 사이 꽃포기들이 여기저기 무너진 둑처럼 쓰러져 있었다. 알맞은 간격으로 돌아가며 말뚝을 박았다. 그리고 토마토를 지지해주던 폴대로 말뚝과 말뚝 사이를 이어 묶었다. 그걸 다 하느라고 오후 해가 깜물 기울었다. 그렇지만 그 바람에 쓰러졌던 꽃포기들이 말뚝에 기대어 깐촐하고도 반듯하게 섰다. 손만 좀 써주면 혼자 힘으로 일어서기 힘든 꽃들도 추슬러 세워줄 수 있다. 이러고 보니 말뚝도 네 것 내 것의 경계를 짓는 노릇만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일어서는데 힘이 되어줄 수 있다.
“꽃이 다 쓰러져 다시는 못 보면 어쩌나 했는데,.......”
길을 사이로 두고 사는 할머니가 나오셨다.
할머니도 이 꽃의 향기를 맡아보신 모양이다. 꽃더미 속에 얼굴을 반쯤 묻고 꽃포기를 흔드신다. 그 향기가 서 있는 내 코에도 알싸하게 날아와 닿는다.
“일몰이 올 때까지 사람도 이렇게 향기로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할머니가 손에 묻은 향기마저 아까우신지 다시 한번 손을 코에 대신다.
떨어져 썩고말 느티나무 삭정이가 말뚝이 되어 프렌치 메리골드를 일으켜 세우는 일을 했다. 그 덕분에 장맛비를 보내고 가을에도 꽃구경을 하게 될 것 같다. 붉게 지던 노을도 금방 어두워지는 계절이다. 이따 밤에 외등을 켜고 나와 말뚝이 하는 일을 다시 한번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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