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에서 보낸 한 자락 가을 여유
권영상
월요일 오후 7시 고향 형님을 뵈올 일이 생겼다.
출판 계약서를 읽는 대로 얼른 회신해 달라는 메모가 있어 일찍 집을 나왔다. 우체국 문을 여는 대로 계약서를 보내고 전철에 올랐다. 전철에 올라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강릉까지 버스로 세 시간, 암만 생각해도 너무 일렀다. 교대역에서 2호선을 갈아탔다. 시간을 좀 늦잡죄려면 한 역 남은 고속버스터미널보다 동서울터미널로 가 거기서 버스를 타는 게 좋을 듯 싶었다. 일찍 강릉에 내린다고 좋을 일이 없다. 어머니가 계실 때라면 어머니 핑계 삼아 일찍 내려가 동무해드리면 되지만 어머니 안 계신 집에 일찍 가기도 그랬다. 그러니 상책은 서울서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늦잡죄는 길 뿐이다.
동서울버스터미널엔 금방 떠나는 버스가 있었다. 좀 천천히 가려고 하니 오히려 버스가 척, 하고 대령이다. 버스는 나를 포함해 승객 6명을 태우고 출발했다. 내 입장에선 편하고 좋았다. 책 좀 읽자고 가방에 넣어간 책을 폈다. 한 시간쯤 책장을 넘기다가 고개를 들었다. 차창밖 풍경이 이미 가을 쪽에 가 있다. 초록이 잔뜩 절정에 닿았다가 그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버스에 앉아 가지만 내 코엔 이미 가을풀 마르는 냄새가 푸슥푸슥 났다. 산자락 아래에 오순도순 모여 앉은 정겨운 마을 모습이 자꾸 내 눈길을 끌어당겼다. 잘 익은 수수와 고추밭에서 붉은 고추를 따는 이들, 담장 가에 늘어선 해바라기, 그리고 논마다 천천히 익어가는 벼들…….
나는 센 볕이 들어오든 말든 창문 커튼을 활짝 열고 비스듬히 앉아 창밖의 이른 가을을 내다보았다.
버스가 강릉에 도착한 건 오후 1시 30분, 두 시간 반만이 왔다.
시간이 풍족하다. 풍족해도 너무 풍족하다. 나는 택시가 아니라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책을 두어 쪽 읽고 있을 때다.
“버스 안 타요?”
누가 나를 부른다.
고개를 드니 버스가 와 있다. 버스 안에서 나이 지긋한 기사가 내 쪽으로 고개를 빼고 묻는다. 내가 기다리던 ‘경포’행 버스다. 나는 가방과 책을 주섬주섬해 들고 버스에 올랐다.
“책은 집에서 읽지 길가에까지 나와서 읽으시느라고…….”
자리를 잡고 앉은 나를 보고 싱긋이 웃는다.
나도 웃었다.
“세상의 책이 추석 무렵의 가을 날씨만큼 좋을 수 있나요?”
나를 떠보려고 그러는지 백미러로 또 한번 나를 본다.
“아이쿠,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그이의 말대로 창밖을 내다봤다.
강릉의 하늘이 날아갈 듯이 가볍고 파랗다. 햇볕이 잘 익은 살굿빛 같이 노랗다. 아니 보리수 익은 열매처럼 투명하다. 이렇게 좋은 가을 하늘을 두고 서울서 하던 버릇으로 책을 읽고 있었으니 그분의 눈에 내가 하는 짓이 너무도 부당했겠다. 싱거워 보였겠다. 나이 먹은 자가 눈이 멀어 책이나 들여다보고 있다니! 하고.
나는 가방 안에 책을 깊숙이 눌러놓고 두리번두리번 도로변을 살폈다. 오래도록 변하지 않고 서 있는 낯익은 건물들이며 길목이며 그 가로수들에 정을 붙이는데 버스가 주문진 방향으로 좌회전을 한다. 시내 안쪽을 한 바퀴 돌아주면 남는 시간을 푹 잘라낼 수도 있을 텐데, 바로 화부산 이명고개가 나온다.
코스모스가 한창 피는 선교장 앞에서 그만 내렸다.
이 안에 들어가 시간을 좀 보낼 생각이었다. 연잎에 휩싸인 활래정을 한 바퀴 돌고는 홍예헌 마루에 걸터앉았다. 가끔 찾아와 보던 곳이라 본채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쪽마루 턱에 신문 한 장을 깔고 편하게 쉬어볼 작정이다.
99칸 본채가 눈앞에 길게 펼쳐진다. 행랑채 너머에 있는 연지당과 서별당이 보인다. 그러고는 열화당이며 외별당이 모두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기와지붕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선교장은 효령대군의 후손 이내번이 지었다.
선교장이 선교헌이거나 선교재가 아닌 까닭은 대가족을 거느리며 사는 일종의 장원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선교장의 경관 중에는 선교장을 에워싸는 병풍 같은 야산을 뺄 수 없다. 그 산에 기거하는 우람하거나 목피가 붉은 소나무 숲이 이 집의 역사와 이 집 주인사내들이 어떤 정신으로 살았는지를 알게 해준다.
늙은 소나무 야산이 끝나는 지점에 활래정이 서 있다. 조선 정자답게 집 바깥에 나와 너른 뜰과 마주하고 있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폐쇄적인 가옥이 조선 민가다. 그점을 보완하기 위해 세상과 소통하기를 소망하는 개방형의 외별당을 두었다. 활래정 그 너머는 뱃길이 열려있는 경포호수와 맞닿아 있다. 예전엔 배로 호수를 건너다녔다 하여 이 건축물을 선교장이라 한다.
나는 여기 홍예헌 벽에 기대고 앉아 사대부가의 고즈넉한 옛집을 건너다본다. 칸수에 비해 웅장하거나 호사스럽거나 유난스럽지 않다. 천박한 부의 위용이나 위압적인 구조가 아니다. 민가와 사찰의 높낮이가 같은 내소사의 절집마냥 수평적 구조다. 마치 경포호수의 수면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물결처럼 높지도 낮지도 않다. 구비치는 파도의 형상이 아니라 맑은 날 푸른 솔바람에 이는 물결 정도의 높이라면 딱 맞다. 경포호수의 물결이 기슭을 타고 밀려와 소나무 우거진 야산 자락에 찰랑찰랑 부딪히는 듯 한 형국이 내 눈에 보이는 선교장의 풍경이다.
만석꾼의 만용과 오기와 자만심이 전연 없다. 이게 이 집을 처음으로 지은 이내번이라는 이의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한다. 건축물과 자연의 친근성, 소박하면서도 서민적인, 그러면서도 인근의 여타 민가와 바다와 호수와 호수에 떠 있는 거룻배와 거기 비친 달빛, 그것들이 저항 없이 선교장과 어울리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선교장에서 수직으로 서 있는 것이라면 굴뚝뿐이다. 그만큼 만용을 부리지 않는 자제력이 엿보인다. 검은 벽돌에 흰색 회를 받혀 쌓아올린 십여 개의 굴뚝에서 식솔과 식객을 따뜻하게 대하려는 푸근함도 외면할 수 없다.
나는 고요히 앉아 어린 은행나무 사이로 보이는 대문의 현판을 생각한다. 선고유거仙高幽居, 여기 오는 이들은 신선이 되어 머물라는 글귀. 세속의 벼슬에 욕심내지 말고 살기를 바라는 저 집 바깥주인의 마음이, 저 잔잔한 건축의 구조에 닿아있는 게 분명하다.
세상과 더불어 나를 잊자. 다시 벼슬을 어찌 구할 것인가. 친척들의 정다운 이야기를 즐겨 듣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우수憂憩를 쓸어버리리라. 라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절에서 연유했다는 열화당의 이름처럼 욕심 없이 정담을 나누며 살겠다는 심사가 느껴진다.
나도 욕심 없이 고개를 들어 남향을 본다. 남으로 가없이 펼쳐지는 파란 강릉의 하늘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열화당과 중사랑과 때로는 활래정에 앉아 이 하늘을 바라보며 궁궐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애썼던 선교장의 이내번을 생각한다.
그때 서너 명의 아이들이 마치 신선의 땅에서 노니는 동자들처럼 잔디밭을 뛰며 소리친다. 나도 문득 일어섰다. 그 사이 벌써 4시간이 흘렀다. 내가 잠시 거하는 그 동안 내 몸이 잠깐 신선의 여유로움을 맛본 듯하다. 여유란 맛이 달지도 쓰지도 맵지도 않은 것으로 어떤 한 자리에 매임없이 머물다 일어선 그 시간인 듯하다.
나는 그 길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고향 집을 향했다. 여기서 집까지 3킬로, 호숫길을 걸어 마침맞게 집에 들었다.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가위 즐겁게 잘 보내세요 (0) | 2014.09.05 |
---|---|
낙서 천태만상 (0) | 2014.09.05 |
연필통 속 페이퍼 나이프 (0) | 2014.08.29 |
부켄베리아가 주소지를 옮기다 (0) | 2014.08.29 |
쓰러진 꽃을 말뚝이 세우다 (0) | 2014.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