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동시는 어떤 웃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권영상 2014. 8. 25. 21:52

<아평 가을호 계평>

 

동시는 어떤 웃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권영상

 

 

 

 

 

어린이는 힘겹다. 하루도 편하게 놀 시간이 없다. 공부 강요에 시달린다. 그리고 학교 폭력과 가정 붕괴, 빈부격차가 만들어내는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굶는 경우도 시골 어린이가 도시 어린이의 14배나 되며 대부분 학교 급식에 의존한다.

어린이를 힘들게 하는 가장 큰 주범은 공부 강요다. 수업이 끝나면 방과 후 수업이나 사교육을 받기 위해 ‘허겁지겁 뛴다.’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의 학원 공부는 대부분 오후 7시 이후에나 끝난다. 집에 돌아오면 잠잘 때까지 숙제에 매달린다.

EBS가 발표한 10대 자살 보고서에 의하면 1일에 한 명꼴로 자살하며, ‘죽고 싶다’고 생각해본 10대가 43%나 된다고 한다. 공부에 내몰린 어린이들이 최대 위험수위에 와 있다.

 

 

 

동시는 최대의 독자인 어린이들을 위해 어떤 위안과 위로를 준비하고 있는가. 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자들이 벼랑 끝에 내몰려 있는데도 95퍼센트의 동시는 현실을 외면하는, 그저 그런 일상의 시에 빠져있다.

이번 여름호엔 웃음을 찾으러 나섰다. 시를 읽기 전에는 시인들은 어린이에게 줄 웃음을 어떤 방식으로 찾아내고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읽었고, 다 읽고 나서는 동시는 왜 독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일을 기피할까? 그런 의문을 갖게 되었다. 모랫벌에서 보석을 찾듯 웃음주기에 관한 시, 8편을 간신히 찾았다.

 

 

 

유머는 상처와 갈등을 이겨내는 안전밸브와 같다고들 말한다. 그런데도 우리 문학에 녹아든 유머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유머가 통하지 않는 사회에 살기 때문이다.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그 작품을 폄하하거나 그 작가조차 폄하하려는 엄숙주의가 원인이다. 유머있는 시는 멋있고, 유머를 아는 시인은 더욱 멋있다. 그에겐 세상을 웃겨보려는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1. 기피와 금기로부터 벗어나기

 

 

 

세상에서 가장 큰/ 아프리카 코끼리/ 똥, 떨어지는 소리.

 

                                               유강희의 「귀 기울이면」 전문 (《시와동화》2014년 여름호)

 

 

산은 저 많은 오줌을/ 어떻게 참고 겨울을 지나 왔나?// 아마도 고추를 꽉 붙잡고/ 봄까지 뛰었을 거다.

 

                                                한혜영의 「오래 참았다」 전문 (《시와동화》2014년 여름호)

 

 

 

두 편 모두 관습적으로 기피하거나 금기시 해 오던 ‘똥’, ‘오줌’, ‘고추’를 시속에 끌어들이고 있다. 보다시피 유머를 지향하는 시는 짧다. 순간적인 감정 작용이기 웃음이기 때문이다. 「귀 기울이면」엔 반전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아프리카 코끼리’를 읽을 때 우리는 아프리카 코끼리의 거대한 몸집을 진지하게, 시각적으로 떠올린다. 그런데 그 다음 연에서 이 진지함과 시각성과는 전연 먼 ‘똥, 떨어지는 소리’라는 익살과 시각적 사태를 불쑥 들이민다. 순간 독자는 이미지의 충돌로 인하여 웃음을 분출한다. 그것이 ‘똥’ 떨어지는 소리이기에 웃음은 더 극대화 되며, 동시에 그 구절에 담긴 무수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한혜영의 「오래 참았다」는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는 산은 오줌이 마려워 ‘고추’를 꽉 잡고 겨울을 건너왔다는 해학적인 내용이다. 숨은 구조는 봄이 오고서야 얼음장이 풀렸다는 내용이다. 뻔한 자연 현상을 ‘오줌’과 ‘고추’를 동원해 길고긴 겨울 추위를 익살스럽게 노래하고 있다.

어떻게 잠자는 웃음에 불을 붙이느냐다. 금기시 되어오는 말을 사용하되 갈등과 긴장 관계를 앞부분에 장치한다면 웃음은 실패하지 않는다. 웃음은 웃음으로 한바탕 감정 해소를 하면 된다. 그 과정을 따져 들어간다면 결국 웃음은 살해당하고 만다.

 

 

 

2. 권위와 기존 질서에 돌 던지기

 

 

 

옛날 우리나라에는 번개가 많았다./ 그 때문에 가축이 죽고/ 농작물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고려 대장군 강감찬이/ 어느 날,/ 변소에 쭈그려 앉아 똥을 싸고 있었다.// 갑자기 번개가 무서운 기세로 치는가 싶더니/ 붉은 섬광이/ 번쩍!/ 이맛돌을 때리러 왔다.// 강감찬 장군이 재빨리 한 손으로 움켜쥐고/ 가운데를/ 뚝,/ 꺾어 버렸다.// 번개를 그때부터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자주 치지도 못하고,/ 아직도/ 그 꺾인 자리가 남아서 가운데가 구불어져 있다.

 

                                                 장철문의 「진짤까?」 전문 (《동시마중》2014년 7.8월호)

 

 

서대문에 살다가/ 종로로 이사 왔다./ 모든 게 낯설었다./ 운동장에서 오징어놀이를 하다가/ 나보다 한 뼘이나 큰/ 원만이랑 싸움이 붙었다./ 주먹은 내가 먼저 날렸는데/ 코피는 내가 먼저 터졌다./ 코를 풀다가/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니리발기띠깐나마당쭈발코딱지!// 원만이도/ 구경하는 아이들도/ 눈을 똥그랗게 뜨고서 나를 본다./ 아무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서대문과 종로는 무지 달랐다.

 

                                                      김환영의「달랐다」 전문 (《시와동화》2014년 여름호)

 

 

 

 

장철문은 강감찬 장군이 번개를 잡았다는 장군의 호쾌하거나 담대함을 ‘진짤까?'라는 반신반의의 위장 술책으로 슬쩍 유머를 던진다. 근데 시인은 그 용맹한 '고려 대장군 강감찬’ 장군을 하필이면 전쟁터가 아닌 변소에서 ‘똥을 싸고 있’게 만들었다. 이것이야말로 권위에 대한 공격이다. 우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웃음은 폭발하고도 남는다. 번개가 이마를 내리치자, 장군은 한 손으로 번개를 잡아 허리를 분질러 버린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손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 숨겨진 불편한 진실에 우리는 박장대소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웃음의 폭발 배경엔 또 하나의 계략이 있다. ‘쭈그려 앉아 똥을 싸고 있’는 순간에 번개가 내리친다는 매우 긴장된 상황을 축적하는 노고가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김환영의 「달랐다」도 역시 상황자체가 긴장 위에 놓여있다. 서대문 ‘주먹’과 종로 ‘주먹’이 대결하는 긴박한 상황이다. 특히 화자인 ‘나’는 공격을 하다가 오히려 공격을 당하여 코피가 터졌다. 이 위기를 해소해내는 화자의 남다른 재치를 보자. ‘니리발기띠깐나마당쭈발코딱지!’이다. 이 주문 같은, 욕설 아닌 욕설 같은 위장의 술수로 화자는 종로 애들을 단번에 제압한다. 이 시의 웃음은, ‘저 말이 무슨 뜻이래? 무슨 뜻이래?’ 그러며 서로 묻는 중에 그것이 아무 뜻도 없는 위장의 허사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폭발한다. 기존의 허수아비 같은 종로의 질서는 이 한 방으로 여지없이 무너졌다.

 

 

 

3. 흉내 내기, 그 깨끗한 웃음

 

 

 

선생님은 말하죠./ “넓은 마음을 가져야/ 멋진 친구가 되는 거예요.”// 친구들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자기 물건에 조금만 손을 대도/ 화내고 우는 일곱 살 지현이.// 어느 날 울먹이며 말했어요./ “선생님, 도우가요./ 나만 넓은 마음을 안 가졌대요./ 다른 친구들은/ 다섯 살 때부터 넓은 마음을/ 다 가졌다는데요./ 나는 이제 어떻게 해요?”

 

                                이민자의 「나는 이제 어떻게 해요」 전문 (《오늘의 동시문학1》2014년 여름호)

 

 

작은언니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허리를 두드려대/ 나 늙었나봐/ 중학생이 되고나니까/ 허리가 아파// 큰언니가 코웃음을 쳤어// 벌써 그런 소리가 나오냐/ 고등학교 들어가 봐/ 아침에 일어나려면 몸부터 달라// 언니들이 나를 부러운 듯 쳐다봐.

 

 

                                                     신지영의 「고얀 녀석들」 앞부분 (《동시마중》2014년 7.8월호)

 

 

 

위의 시 두 편 모두의 핵심 모티브나 중심 사건은 어른들의 말을 흉내 내는 데에 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요」에는 이제 초등학교 일 학년일 것 같은 일곱 살 지현이가 도우의 말을 빌려온 나만 ‘넓은 마음’을 안 가졌다는 모방어가 있다. 이 말은 언젠가 선생님이 쓰셨던, 어른들이나 쓰는 관념어다. 아이들로선 그런 경지에 이르긴 턱없다. 근데 나만 빼고 다들 다섯 살에 ‘넓은 마음’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 웃음을 유발하는 뇌관이다. 어린 독자들이라면 이 상황에서 너나없이 어쭈! 어쭈! 하며 한바탕 깨끗하게 웃어넘길 게 뻔하다. 웃으면서도 한순간 자성하게 되는 시다.

 

 

 

 

신지영의 「고얀 녀석들」도 모방언어를 배치하여 웃음을 겨냥하고 있다. 작은언니가 하는 말 ‘나 늙었나봐’, 큰언니가 하는 말 ‘아침에 일어나려면 몸부터 달라’가 모방언어이다. 모두 고단한 일에 시달린 뒤 푸념하듯 하는 어른들의 말이다. 모방어가 웃음을 유발하려면 동시대 사람들의 공감이 필수적이다. 큰언니의 말에 공감성이 약하다. 웃음은 순간성을 갖는다.

 

 

 

4. 웃음주기, 돌출 사건과 돌출 행동

 

 

 

하루해가 저물고 난 뒤에 손전등 켜놓고/ 아기 고양이 찾으려 뒤뜰에 나섰다가/ 쪼그리고 앉아 들마루 아래 비추는데/ 손전등 불빛 속에 무언가 성큼 뛰어들었다./ 화들짝 소스라쳐 놀라기도 전에/ 바지 속 맨 종아리 기어오르는 동물/ 나는 그만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서둘러 바지를 벗어던지고 보니/ 새앙쥐 한 마리 보르르 도망치고 있었다./ 어이쿠! 고추 물린 뻔했네!

 

                                                             김구연의 「새앙쥐」 전문 (《시와동화》2014년 여름호)

 

 

제아무리 키가 크다고는 하지만 해바라기도 어쩔 수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제 키보다 놓은 곳에/ 그 마음을 올려놓아야 한다.// 그 애가 사는 집 담벼락 위에 얹어놓은 내 마음처럼/ 해바라기도 밤새 머리를 하늘로 밀어 올리다가/ 꽁, 달에 머리를 찧은 게 틀림없다.// 달빛 아래, 제비꽃 몇 송이 키득키득 웃으며/ 올려다보는 해바라기 얼굴이/ 노랗게 익었다.

 

                                                               김륭의 「해바라기」 전문 (《시와동화》2014년 여름호)

 

 

 

김구연의 시는 두 개의 사건 구조를 갖는다. 앞부분은 들마루 밑에서 고양이를 찾는 일이고, 두 번째 사건은 난데없이 새앙쥐가 튀어나오는 돌출사건이다. 이 돌출 사건은 바지 속으로 뭔가가 기어오른다는 두려운 긴장감과 그 때문에 바지를 벗어던진다는 것. 그리고 한숨 쉬듯 내뱉는 말, ‘어이쿠! 고추 물릴 뻔 했네’다. 이 모든 장면이 선하게 그려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해소되는 긴장과 갈등. 시가 역동적이면서도 재미있다. 시인이 나이를 자꾸 먹으면 이런 익살스런 시 한편쯤은 써놓고 가야할 의무가 있는 게 아닐까.

 

 

 

김륭의 「해바라기」다. 읽어볼수록 좋다. 이렇게 막힘없이 실꾸리 풀듯 그럴 듯한 사설을 풀어놓을 줄 아는 시인의 상상이 아름답다.

해바라기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도 높은 곳에 마음을 올려놓으려고 키를 불쑥 세우다가 꽁, 머리를 달에 찧었다. 해바라기와 달의 관념의 거리를 소멸시킬 줄 아는 순수한 시인의 상상만이 가능한 돌출행동이다. 교장선생님이 교단에서 떨어졌을 때, 의자에 올라선 아버지가 자빠졌을 때, 시장님이 맨홀에 빠졌을 때, 키 큰 해바라기가 달에다 머리를 콩 찧었을 때, 그때 나의 슬프고도 아픈 일상이, 지루한 일상이, 죽은 듯 재미없는 세상이 웃음과 함께 파랗게 살아난다.

 

 

여기까지 와서 생각해도 그렇다. 시인의 내부엔 유머가 필요하다. 한 줄의 유머가 깃든 시를 쓴 사람이라면 그는 시인이다. 그에겐 답답한 현실과 맞장뜰 용기가 숨어 있으며, 진정으로 어린이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아동문학평론 2014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