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참시인 중의 시인 성명진 시인에게

권영상 2015. 1. 2. 15:52

참시인 중의 시인 성명진 시인에게

권영상

 

 

 

 

안녕하세요?

성명진 시인, 나는 당신을 한번도 본 적이 없지요. 키는 큰지, 고욤나무꽃은 좋아하는지, 장수풍뎅이는 사랑하는지, 우산이끼, 논배미, 뜰방, 개똥지바퀴, 콩자반, 또는 수염고래라는 말은 좋아하는지 나는 잘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당신을 알지요. 당신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염소 한 마리를 이끌고 왔습니다. 고작 염소 한 마리를 이끌고 왔으면서도 그 염소를 황소인 양 바라보며 살아왔지요. 아니 그런 욕심으로 살았던 거지요. 걸음걸이가 소처럼 으젓하길 바랐고, 울음소리마저 으렁으렁 우렁차길 바랐지요. 30킬로그램의 염소가 아니라 120킬로그램의 황소이기를 바라며 살아왔던 거지요.

 

 

 

그런데 어느 날 어느 때부터 당신은 당신이 보고 있는 황소가 황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가 달고 있는 수염은 초라하고, 그의 울음소리는 궁색하고, 그의 머리에 난 작달막한 두 뿔은 너무나 볼품없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끌고 나온 염소는 황소가 아니라 볼품없는 염소임을 발견합니다.

염소는 제 천성대로 종종 고집을 부려댑니다. 종종 제 인생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제 어떡하나요? 그 염소가 당신인 것을.

 

 

 

성명진 시인, 나도 한 때는 ‘당신의 황소’였습니다.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기를 원했고, 더 높은 곳을 쳐다보며 살았고, 더 많은 조명을 원했습니다. 그 때문에 때로는 가면을 쓰기도 하고, 가면 뒤에 숨어 울거나, 때로 그런 나 때문에 외로워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당신의 황소일지도 모릅니다.

 

 

복지관 앞

앙상한 그,

무얼 얻으려 서 있나 했는데

아니었어요

 

오히려

환한 밥덩이 몇을

가만히 내놓는 것이었어요.

 

 

당신의 시 ‘목련꽃’입니다. 배부른 내가 이처럼 깨끗한 시를 읽는다는 것이 쑥스러워졌습니다. 겸연쩍다든가 아니면 부끄럽든가 또는 서럽기조차 했습니다. ‘밥덩이 몇을’ 들고 선 목련꽃 보기에 나란 너무나 보잘 것 없고, 너무나 영혼이 빈곤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육신만 비대해진 짐승처럼. 복지관 앞에서 배 고픈 그 누군가를 기다릴 줄 아는 목련의 ‘밥덩이’를 배우고 싶습니다.

당신은 쑥스러워할 줄도 알고 순종할 줄도 아는, 보기드문 시인입니다. 참시인다운 시인 중의 시인입니다. 그 까닭은 당신이 말한 ‘상에 워낙 조촐한 밥이 차려지는데다/ 착한 이가 그 밥을 먹기에/ 그대로 순종’하는 너무도 착한 천성 때문입니다.

 

 

 

당신은 밥상입니다. 당신은 조촐한 것을 좋아하며, 심장 하나 받쳐들 손만 있으면 족하다고 했지요. 부디 당신의 두 손이 시의 밥그릇이 되길 바라며, 그 안이 순정한 당신의 시들로 가득 차기를 염원합니다.

아직 한번도 본 적 없는 당신이 겨울내내 나를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찬바람이 몰아칠수록 당신의 시 곁으로 다가가는 나를 봅니다. 4월 어느 날, 풀이 돋는 방죽에 앉아 당신의 진심어린 ‘염소’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당신의 지난 날의 ‘황소’와 이야기한대도 괜찮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우리는 여태껏 우리 자신을 속이며 여기까지 왔던 겁니다. 새로 봄풀이 돋는 4월에 당신에게 나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군요.

 

 

 

그럼, 우리들의 4월을 기다리겠습니다.

이만 총총.

을미년 새해에 권영상 보냅니다.

 

(2015년 한국동시문학회 회보 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