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목월의 ‘십구 문 반’ 인생
권영상
요 며칠 전 일입니다. 늦은 밤부터 딸아이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엄살이 심한 나와 달리 아파도 아픈 척 하지 않는 아이인데 누워 있는 걸 보니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열이 심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11시에 저녁 운동을 하러 나갈 아이가 꿈쩍을 않고 끙끙대기만 했지요.
“어디 많이 아픈 모양이구나!”
나는 그렇게 한번 물어보고는 제 방에서 나와 거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할 일이 있었지만 아픈 아이를 두고 모르는 체 내 방에 들어와 일을 한다는 게 도리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비상약을 뒤지던 아내가 병원에 가 보자고 일어섰습니다. 한 길에 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두 시간 만에 돌아왔습니다.
이슥한 밤, 택시를 타고 돌아오려니 목월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자식이 아파봐야 아침이 고마운 줄 안다는.
참 맞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응급실의 흰 불빛 아래에서 이것저것 검사를 받는 딸아이를 보며 얼른 아침이 오기를 고대했습니다. 아침이 오면 우리는 컴컴한 밤의 한숨에서 벗어날 수 있을테까요.
목월은 자식에게 공책 사줄 돈이 없어 글씨를 쓰다 남은 종이로 공책을 만들어주며 그 위에 굵은 눈물 한 방울을 떨구어 내릴 줄 아는 시인이었습니다. 시를 써서 간략히 먹고 사느라 자식에게 용돈을 줄 수는 없어도,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어줄 줄 아는 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구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1964년에 나온 시집 <청담>에 실린 시 ‘가정’입니다.
‘아홉 켤레의 신발’은 ‘내’가 먹여 살려야 하는 나의 식솔들입니다. ‘나’는 아버지가 아닌 고단한 ‘십구 문반의 신발’로 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때마다 나는 한 가정의 가장이기 이전에 밥을 벌어오는, 굴욕도 치욕도 느끼지 못하는 존재임을 서럽게 고백합니다. 아버지라고 이름하는 어설픈 존재가 '나'입니다.
1960년대를 산 이 땅의 아버지들은 터무니없이 많은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제 몸을 세상의 험한 파도 위에 던졌습니다. 그러느라 ‘나’를 잃어버린 사십 대의 사내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아버지, 돈을 벌어 오시느라 얼마나 수고하셨어요?”
가끔 목월의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오면 손자들에게 그렇게 인사를 시켰다는 글을 <내 생애 가장 따뜻했던 날들>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을 읽을 때는 그 인사가 좀 지나치지 않을까 했는데 자식은 아버지의 그런 노고를 또 알아야할 것도 같습니다.
이 시가 단지 가정을 위해 굴욕을 견디며 사는 한 가장의 쓸쓸한 삶을 이야기하는 듯해도, 그건 아닙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굴욕조차 감당할 수 있다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그 까닭은 곤궁할수록 그의 시가 닿는 곳이 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용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 때, 아버지가 시를 써서 사는데 어떻게 용돈 받을 생각을 하느냐고 목월의 아내는 자식들을 달랩니다. 그럴 때 목월은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니며 ‘나이 먹은 이의 구두는 잘 닳지 않는다’고 자신을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이처럼 가족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제가 보는 목월 시의 아픔이 아닐까 싶습니다.
관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형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스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시 ‘하관下棺’입니다.
목월의 초기시가 주로 우리 전통시의 간략성에 가 있다면, 시집 <난 기타>, <청담> 등은 그 앞의 시, <청록집>과 시집 <산도화>와는 엄연히 구분됩니다. 앞의 시들이 시어의 간략성을 추구했다면 1959년을 전후이 시집들은 그 경향에서 애써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주로 사람 사는 세상의 소박한 일상 쪽으로 시가 이동하고 있습니다. 시의 형식도 자유로워졌고, 눈에 띄게 분량도 늘어났습니다.
정갈한 운율의 맛은 사라졌지만 대신 웅숭깊은 맛이 살아납니다. 시가 퍽 따스해졌습니다. 좀 친절해졌고, 뭐니뭐니 해도 시가 이야기(서사성)를 품고 있습니다. 초기시가 잘 깎고 다듬은 시어와 전통 운율을 가졌다면 이쪽으로 와선 그걸 버리고 소박한 이야기로 감동을 이끌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의 나고, 늙고, 죽고, 이별하는 일상을 산문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승화시킨 거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삶의 때 묻은 일상언어로 격의 없이 독자들 속에 푹신하게 들어섭니다.
왜 이 즈음의 시가 초기 시와 달리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을까요?
그야 말할 것도 없이 초기 시에서 탈피하려는 자기변모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또 하나, 목월의 넉 달간의 일탈이 빚어낸 결과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목월에겐 잠시 동안의 ‘외도’가 있었습니다. 한 젊은 문학소녀와의 사랑, 그리고 제주도라는 먼 공간으로의 도피. 그것을 통해서 겪었을 사랑과 이별의 고비가 시를 산문화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해 봅니다. 사랑이란 것, 그리고 이별이란 것, 그게 또 얼마나 시인에게 가혹한 일인가요? 그리고 그 속에는 또 얼마나 많은, 말 못할 서러움과 눈물과 고독을 응어리지게 하는 건가요?
그런 고통의 시기를 건너고 나온 시집이 <난, 기타>와 <청담>입니다.
위의 시 ‘하관’은 사람이 건널 수 있는 세상과 건널 수 없는 세상의 거리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람이 건널 수 없는 세상이 어찌 저승만이겠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도 건널 수는 없는 다리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그 다리 앞에서 망설이다가 망설이다가 쓸쓸히 되돌아서곤 합니다.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 날은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귀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워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1964에 출판된 시집 <청담 晴曇>에 실린 시 ‘나무’입니다.
좀 보십시오. 이쯤에 와서는 시가 완벽하게 산문으로 변해있습니다.
그처럼 ‘아홉 켤레의 신발’을 보살피던 아버지도 벌써 한 그루의 늙은 나무로 변해 있습니다.
나무는 수도승이기도 하고, 과객이기도 하고, 파수병이기도 하고, 묵중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합니다. 나무는 바람 많은 세상을 살아오느라 모두 고독하고 외로운 것들이 되어 있습니다.
그 나무가 서울과 먼 들판에서 저 혼자 사는 나무인 줄 알았는데, 내가 서울로 돌아왔을 때 그것이 내 마음 안에 질기도록 뿌리내리고 있음을 목월은 발견합니다. 그것이란 묵중하고, 침울하고, 고독한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 세상에 나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바람과 맞서 싸우는 동안 사람은 말할 수 없이 무거운 존재가 되고, 쓸쓸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가 목월이며 동시에 사랑을 하고, 이별해도 여전히 쓸쓸한 우리 사람들입니다.
한 때 가정을 사랑하고, 한 여인을 사랑하고, 돌아와 성경을 사랑하던 목월은 갔습니다. 그리고 세월도 가고, 우리들 인생도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서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기울며는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우리라.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김성태가 작곡하고 박목월이 쓴 ‘이별의 노래’입니다.
너도 가고 나도 가야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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