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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물려준 가위

권영상 2014. 8. 14. 11:36

아버지가 물려준 가위 

권영상

 

 



월요일 오후입니다.
이발소의 월요일은 한가합니다.
모두들 쉬는 날인 일요일에 이발을 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좀 쉬어야겠다.”
오후의 햇살이 이발소 안으로 듬뿍 들어옵니다.
가위며 빗 청소를 마친 종길이 아저씨는 창 아래에 놓인 긴 나무 의자에 앉습니다.
가을 오후의 햇살에 온몸이 나른합니다.
눈을 감습니다.
목덜미서부터 호밀밭의 바람처럼 소르르 잠이 몰려옵니다.
꼬댁꼬댁 졸음에 빠질 때입니다.
이발소 문이 따르르 열립니다.
버릇처럼 종길이 아저씨가 벌떡 일어납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언제나 그렇듯 깍듯이 인사를 하고는 빨간 줄무늬 타올을 집어듭니다.
이발소에 들어선 사람은 머리에 빵모자를 쓴 마흔 살쯤의 건장한 남자 분입니다.
남자 분은 좀은 어색한 몸짓으로 머리에 쓴 빵모자를 자꾸 만지작거립니다. 초록색 털실로 짠 빵모자입니다. 아직 빵모자를 쓰기엔 따근한 이른 가을날입니다. 또 빵모자를 쓸 만큼 남자분은 허약한 몸도 아닙니다.
남자분은 앉을 생각도 없이 우물쭈물 합니다.
“혹시 길을 잃으셨나요?”
그제야 종길이 아저씨가 남자분을 의아하게 바라봅니다.
“그게 아니라, 머리를 좀.”
남자분이 머쓱하니 웃습니다.
“그럼, 여기 앉으시지요.”
종길이 아저씨가 타올을 든 손으로 가운데 의자를 권합니다.
남자분이 몸을 비틀며 윗도리를 벗습니다.
재빨리 종길이 아저씨가 윗도리를 받아 옷장에 겁니다.

 

 

이제는 머리에 쓴 빵모자를 벗을 차례입니다.
그러나 남자분은 몇 번이나 빵모자를 벗을 듯이 손을 올리더니 그냥 내립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는 하, 이거, 하 이거 그러기도 합니다.
“왜 그러시지요? 혹시 흉터라도?”
가끔씩 못 보일 흉터 때문에 머뭇대는 분들이 있으니까요.
그중에는 주먹잡이들도 있고, 술주정뱅이들도 있습니다.
“아니, 저, 그게 아니고....”
남자분이 빵모자를 쓴 채 그냥 의자에 앉습니다.
“걱정마세요. 제가 알아서 잘 해드리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혹 못된 사고라도 친 사람이라면 경찰에 신고를 해야합니다.
그 말에 남자분은 빵모자를 벗으려고 힘들게 손을 올립니다.
손을 본 종길이 아저씨가 섬찟 놀랍니다.
보통 험한 주먹이 아닙니다.
손등엔 상처자국도 나 있습니다.
거기다가 손가락 뼈마디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굵고 거칩니다.

 

 

 

종길이 아저씨는 남자분이 빵모자를 벗을 때까지 쿵쿵쿵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기다립니다. 거울로 남자분의 표정을 얼핏얼핏 봅니다. 남자분의 얼굴이 붉어집니다. 남자분도 붉은 얼굴로 종길이 아저씨 눈치를 슬금슬금 봅니다.
“세상에 감출 수 있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말에 종길이 아저씨가 깜짝 놀랍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말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종길이 아저씨는 두려운 마음을 애써 감춥니다.
“걱정마십시오.”
그리고는 쓱 웃어보입니다.
종길이 아저씨의 웃음에 마음이 놓이는지 그제야 남자분이 빵모자를 벗습니다.
“아니, 머리가?”
드러난 머리를 멍하니 바라봅니다. 남자분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빨개집니다.
얼굴이 빨개진 남자분이 말마저 더듬습니다.
“어, 어제 술 취해가지고 들어왔는데... 딸애가 가,가위로.”
가위로 머리칼을 자른 가윗 자국이 한 두군데가 아닙니다. 머릿속이 드러나도록 성큼성큼 잘려 있습니다.
“대관절 따님이 몇 살이신데 이렇게.”
아저씨의 딱 벌어진 입을 보고 남자분이 쓱 웃습니다.
“네 살, 네 살입니다.”
그제야 종길이 아저씨는 휴, 한숨을 내쉽니다.
“아, 그랬었군요. 가위질을 배운 따님이 아빠 이발을 해주려다가 그만.....”
“술을 너무 먹어 그것도 모르고 잤댔습니다.”
남자분은 덩치와 달리 매우 수줍어합니다.
“걱정마시지요. 제가 따님보다 더 잘 해드릴지는 모르지만.”
그 말에 남자분이 허리를 우뚝 세우며 묻습니다.
“보시기에 제 딸애가 가위질 솜씨는 있어보이나요?”
“그렇다마다요. 실수는 많았지만 가위는 제대로 잡았습니다.”
조금은 과장된 말이지만 종길이 아저씨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종길이 아저씨의 콧등이 갑자기 시큰합니다. 눈물 한 방울이 쭈르르 흘러나옵니다.
“우시는가 보군요?”
조용히 앉아 거울을 들여다 보던 남자분이 뚱그레 눈을 뜹니다.
“아, 네. 주책없이 눈물이 좀 많아서.”
고개를 돌리며 가위를 집던 종길이 아저씨가 몰래 눈물을 닦습니다.

 

 

 

지금부터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
농사일을 하시는 아버지는 늘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마저 몸져 누우셨으니 아버지는 정말이지 힘들었습니다.
농사 일 하시랴 어머니 병간호 하시랴, 우리들 돌보시랴 잠시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지요. 아버지는 틈틈이 동네 사람들 머리도 깎아주셨습니다.


아이들은 늘 아버지가 바쁠 때면 찾아왔습니다.
“종길이 아버지, 머리 깎아주세요.”
아이들은 마치 아버지를 부리듯이 말했습니다.
“그래. 어서 오너라.”
아버지는 바쁜 일을 하시다가도 아이들을 보면 얼른 일손을 놓습니다..
그리고는 종길이를 부릅니다.
“의자를 잘 닦아 내다놓아라.”
방안에 엎드려 공부를 하던 종길이는 성가십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둔탁한 듯하면서도 낮은 목소리는 거역할 수 없습니다.
종길이는 뒷마루에 있는 이발 의자를 닦아 마당에 내놓습니다.
“기계와 빗도 준비를 해야지.”
찾아온 사람을 기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아버지는 흙묻은 손을 씻으며 일일이 심부름을 시킵니다.
종길이는 심부름을 시키는 아버지가 싫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아버지는 종길이를 타이릅니다.
“이 아버지가 필요해서 찾아왔는데 기다리게 해서야 되겠느냐?”
종길이는 입을 내물고 머리깎는 기계와 빗을 내놓습니다. 아버지는 젖은 손을 닦고 흰 앞가리개를 훌훌 텁니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은 아이의 앞섶에다 반듯하게 가려줍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묻습니다.

 

 


“어떤 머리로 깎아주랴?”
그러면 아이들은 대부분 그럽니다.
“그냥 머리로요.”
열이면 열 대개의 아이들은 ‘그냥 머리로요’, 그렇게 대답합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아버지는 한번도 거른 적 없이 같은 말로 꼭 묻습니다.
“어떤 머리로 깎아주랴?”
“그냥 머리로요.”
아버지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시고는 말합니다.
“그래. 그냥 머리가 좋다.”
그런 연후에야 머리를 깎으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누구도 아버지가 깎아주시는 ‘그냥 머리’에 불만을 갖는 아이들은 없었습니다. 실은 아버지가 깎을 수 있는 머리는 ‘그냥 머리’ 하나뿐입니다.
아버지는 누군가가 인정해주는 이발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운 솜씨로 짬짬히 깎아 주는 그런 이발사입니다. 말이 그렇지 이발사도 아닙니다. 그냥 ‘종길이 아버지’입니다. 아이들이 긴머리를 하고와서 ‘종길이 아버지’하면 그게 이발사라는 뜻입니다.
“자, 머리를 숙여라.”
아버지는 이발기계를 드시고 아이들의 머리를 왼손으로 지긋이 누릅니다.

 

기계를 가볍게 목덜미에 댑니다.
꾹 눌러도 안 됩니다. 가볍게 대고는 고른 속도로 밀어올립니다. 아버지의 새끼 손가락 한 마디씩 빙 밀어올립니다. 뒷머리를 깎고나면 바른쪽 귓등이며 관자놀이 쪽을 깎습니다. 오른쪽이 다 되면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왼쪽 머리를 깎씁니다.
그리고는 비누붓을 드십니다.
굵은 비누붓을 들어 비누곽의 비누를 문지릅니다. 비누를 문지르면 북적북적 비누거품이 생깁니다. 비누거품이 제대로 일면 비누붓은 비누거품을 품어 부풀대로 부풀어 오릅니다.
“자, 어디 보자.”
아버지는 비누붓을 들어 머리에 골고루 바릅니다. 마치 흰 함박눈을 맞은 듯이 머리가 비누거품으로 하애지면 붓을 비누곽에 내립니다. 쪽 고르게 빗질을 한 뒤 이번에는 가위를 드시고 가위질을 하십니다.
농사일을 하시는 아버지 손은 험하고 무딥니다. 그런 아버지의 손도 가위질을 하실 때보면 부드럽기만 합니다. 아버지가 가위질을 하실 때면 햇빛에 가위가 반짝입니다. 빗위에 들쭉날쭉 나온 머리칼을 쪽 고르게 가위질 하시는 모습은 부럽기까지 합니다.
“나도 커서 이발사가 될 거야.”
종길이는 가끔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댔습니다.

 

 

할아버지들도 가끔가끔 오십니다.
이발소가 윗마을에 있기는 하지만 그곳까지는 멉니다.
바쁜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그 먼곳에 가는 일은 힘듭니다.
그래서 보리밭에 뒷거름을 주다가도 어른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아버지한테 달려옵니다.
“종길이 아버지, 머리 좀.”
그러는 아저씨들 뒤에 서면 뒷거름 냄새가 지독하게 납니다.
그 냄새가 싫지도 않으셨던지 아버지는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이발을 하십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아버지한테 머리를 깎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아버지에게 이발한 값을 준 사람은 못 보았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섣달 그믐날이 되면 사람들은 쌀과 보리를 가져왔습니다.
“그게 뭐지요?“
종길이의 물음에 아버지는 으쓱하며 대답합니다.
“머리를 깎아준 비용이란다.”
아버지는 돈을 모으기 위해 쉴 틈없이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병을 고칠 병원비를 대기란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더욱 아버지를 힘들게 하신 것은 가끔씩 지서에 불려가는 일입니다.
이발비를 받고 이발을 하는 게 법에 걸린다는 이유였습니다.
“윗마을 이발소에서 또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윗마을 이발소의 주인은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자기 이발소로 올 사람들을 아버지한테 빼앗긴다는 것 때문입니다.
지서에 불려가시면 아버지는 거기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야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잠을 못 자 부석부석한 얼굴로 말이지요.
“어떻든지 이용사 자격증을 따야하는데.....”
그러나 아버지는 글을 읽지 못하십니다.
글을 못 읽으시는 아버지는 자격증을 따지 못하는게 못내 안타까웠습니다.

형이 중학교에 진학해 아버지가 읍내로 떠나보낸 날입니다.
종길이는 읍내로 떠나간 형이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그런 마음을 아시는 아버지가 방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홀짝이는 종길이 곁에 다가왔습니다. 아버지가 종길이 곁에 쿵 앉으셨습니다.
종길이의 팔꿈치에 아버지의 가슴이 닿습니다.
쿵쿵쿵, 아버지의 가슴이 뛰는 소리가 팔꿈치를 타고 온몸으로 건너옵니다.
“종길아.”
한참만에 아버지가 종길이의 등에 험한 손을 얹습니다.
아버지의 손이 가볍게 떨립니다.
훌쩍이던 종길이도 울음을 멈춥니다.
“학교에 가고 싶은 네 마음을 안다.”
한참만에야 아버지가 입을 여셨습니다.
“우리 종길이 몇 학년 때에 학교를 그만 두었지?”
아버지가 좀은 떨리는 목소리로 뭍었습니다.
“4학년 때요.”

 

 


그러고 보면 4학년 가을부터 종길이는 학교 공부를 그만 두었습니다.
“엄마 병이 나으면 언젠가는 보내주마.”
그러시며 아버지는 종길이 곁을 물러나 앉았습니다.
바깥을 내다보는지 암말 없으시던 아버지가 입을 여셨습니다.
“형은 형이니까 공부를 해야잖겠느냐?”
종길이는 아직 어리지만 아버지의 그 말을 압니다.
종길이가 아는 모든 집들의 형들은 모두 읍내 중학교를 다닙니다. 그리고 종길이가 아는 모든 형들의 동생들은 학교에 다니지 못합니다.
“너는 동생이니까.”
아버지가 그 말을 하실 때입니다.
눈물이 또 한차례 울컥 쏟아져 나왔습니다.
종길이도 종길이가 아는 모든 형들의 동생들처럼 학교에 가지 못해야 합니다.
“형은 형이니까 학교에 다녀야하지 않겠니?”
아버지가 또 한번 그 말을 하십니다.
그러는 아버지 목소리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형이라도 공부를 시켜 가난을 벗어던지고 싶은 게 아버지 마음입니다.
“너도 알다시피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거라곤 아무 것도 없다.”
아버지가 열심히 농사를 지었지만 그건 아버지 땅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이웃에서 빌려 짓는 땅이었습니다.
“다만 있는 거라곤.”
아버지는 거기에서 한참동안 말을 끊었습니다.

 

 

종길이는 눈물을 참으며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있는 거라곤...”
아버지가 끙, 한숨을 내쉽니다.
“가위와 빗뿐이다.”
그러시고는 성냥을 긋습니다. 담배를 피시는 모양입니다. 담배 연기가 후욱 풍깁니다. 담배 연기가 사라지고 난 뒤에야 아버지가 일어나십니다.
“그 가위와 빗을 너에게 주마.”
아버지의 말에 종길이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깟 가위와 빗을!
“그걸 팔면 학교에 갈 수나 있나요?”
코를 훌쩍이던 종길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눈물이 범벅입니다.
종길이의 눈물을 아버지가 억센 손으로 닦아주십니다.
“학교야 못 다니겠지만.”
“그렇다면 그런 걸 왜 주신다는 거지요?”
“아버지가 네게 줄 수 있는 전 재산이다. 그걸로 나중에.”
아버지가 말을 멈춥니다.
종길이는 그 뒤에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압니다.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훌륭한 이발사가 되라는 말입니다.
“싫어요. 이발사는 안 될래요.”
종길이는 그렇게 툭 말해버렸습니다.
그건 진짜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 종길이 입에선 그런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아버지는 꾹 입을 다물고 일어서셨습니다.
그 후로 아버지는 더 이상 가위와 빗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고 난 뒤입니다.
종길이 마음도 많이 변했습니다.
종길이는 틈나는 대로 아버지로부터 가위잡는 법을 배웠습니다. 비누붓으로 머리에 붓질을 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빗질하는 법과 빗으로 머리를 들어올리고 가위질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이발을 할 수 있는 기술을 많이 배웠습니다. 아버지가 이발을 하시는 모습도 꼼꼼히 보아두었습니다.
그러나 입과 눈으로만 기술을 배우면 뭣하나요.
직접 이발 기계로 이발을 해 보아야 하는 거잖아요.
끙끙 참던 어느 날, 종길이는 드디어 아버지에게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읍내 미용학원에 다니겠어요.”
그 말을 듣던 아버지가 눈을 감았습니다.
머리를 벽에 대시고 무언가를 생각하던 아버지가 다시 눈을 떴습니다.
“이번에도 안 되나요?”
종길이는 울컥 화를 냈습니다.
아버지는 다시 눈을 감습니다.
“아직 이르다. 나이가 차거든.”
아버지의 목소리가 사뭇 낮았습니다.
“그런 말로 저의 앞길을 막지 마세요. 저도 저의 갈길을 가야겠어요.”
“이발사가 되는 것도 나이가 차야되는 법이다.”
이발사가 되려면 일정한 나이가 되어야 한다는 걸 종길이도 압니다
“이 일도 동생이니까 안 된다는 건가요?”
종길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쳤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안 하십니다.
“형이 내년에 고등학교에 가야할 테니까 너는 참아라. 그 말을 하시려는 거죠?”
종길이는 더는 참지 못하고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그러는 종길이 눈에 눈물이 마구 흘러내립니다.
“며칠만 기다려 다오.”
아버지는 그 말을 하고는 종길이의 양어깨를 꽉 잡으셨습니다.
“그런 말 이제 안 믿어요.”
종길이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바깥으로 나간 종길이는 마을을 몇바퀴나 달렸습니다.
밤이 이슥해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입니다.
“가위와 빗을 내 오너라.”
아침식사가 끝난 뒤입니다.
누가 또 이발을 하러 온 모양입니다.
지금 그런 심부름을 할 마음이 아닙니다.
마당을 깨끗이 쓰시고 난 아버지가 다시 한번 부릅니다.
“기계와 비누붓도.”
조금은 둔탁하나 낮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종길이를 일어서게 했습니다.
꼼짝 않던 종길이가 이발 기구를 들고 마당에 나섰습니다.
아버지는 깨끗하게 쓸어놓으신 마당에 이발의자를 똑바로 앉혀놓았습니다.
근데 어디에도 이발을 하러 온 사람은 없습니다.
두러번거리는 종길이를 보고 아버지가 짐짓 웃어 보이십니다.
“빗과 가위를 내려놓아라.”
종길이는 의자 곁 받침대에 가위와 빗, 이발기계와 비누붓과 비누곽을 내려놓습니다.
아버지가 윗도리를 벗습니다.
벗어서는 마루 위에 가즈런히 올려놓습니다.
“아버지가 하시려고요?”
종길이는 의아한 얼굴로 묻습니다.
“여기가 읍내 미용학원이라 생각하고.”
아버지는 그러시며 의자에 똑바로 앉으십니다.
“읍내 미용학원이라니요?”
종길이는 놀란 얼굴로 아버지를 쳐다봤습니다.
“네가 아는 기술로 아버지 머리를 연습삼아 깎아보렴.”
아버지는 앞가리개 천으로 앞을 가리고는 목 뒤로 손을 돌려 손수 끈을 묶습니다.
“아니, 아버지 머리를 어떻게!”
“괜찮다.”
아버지는 눈을 감았습니다.
종길이는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가만히 섰습니다.
“자, 얼른 기계를 들어라.”
눈을 감으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날아왔습니다.
종길이는 몇 번이나 숨을 골랐습니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기계를 들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기계로 밑머리를 밀어나갔습니다.
비누붓으로 거품을 내어 아버지의 머리칼을 적시고, 가위와 빗을 들어 머리칼을 잘라나갔습니다. 너무나 숨막히고 너무도 가슴이 떨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동안 아버지는 미용학원의 연습 모델처럼 조용히 앉아 계셨습니다.
오랫동안의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됐느냐?”
그제야 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
아버지가 일어나셨습니다.
거울을 들고 머리의 앞과 뒤를 보십니다.
“가윗자국이 이렇게 눈에 보여서야.”
거울 속에 드러난 가윗자국을 가리키십니다.
가윗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장난질을 쳐놓은 것처럼 볼썽사납습니다.
“열심히 하느라 했는데...”
종길이는 안절부절못합니다.
“다시 깎아드리겠어요.”
그랬지만 아버지는 무슨 생각에선지 들고 계시던 거울을 놓았습니다.
“됐다.”
머리를 감고 나신 아버지는 그 길로 빵모자를 구해 쓰셨습니다.
“다시 깎아드리겠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여전히 빵모자를 고집했습니다.
그때가 여름이었는데도 아버지는 빵모자를 벗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종길이는 자신의 성급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왜 아버지가 땀을 흘려가면서도 빵모자를 쓰셨는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종길이는 그 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이발 기술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끝내 이발기술을 익혀 떳떳이 이발소를 차렸습니다.
이발소를 차렸을 때는 아버지도 형도 그리고 병석에서 일어나신 엄마도 오셔서 축하해 주셨습니다.

 

 

근데 그날, 아버지는 빵모자를 쓰고 오셨습니다.
“아버지, 무슨 일에든 서두르지 않겠습니다.”
종길이는 아버지의 손을 꾹 잡아드리며 말했습니다.
“자, 이걸 받아라.”
아버지가 잘 묶으신 상자를 내미셨습니다. 종길이는 긴장된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습니다. 낡고 오래된 가위와 빗이 나왔습니다.
그 옛날 아버지가 쓰셨던 날이 무딘 가위과 이가 몇 부러진 빗입니다.
“네게 주마.”
그건 언젠가 말한 아버지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종길이의 눈에 주먹같은 눈물이 고입니다.
그 시절 아버지에게 있어선 맏이가 아닌 아들은 혼자 살아갈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먹고 살 기술이. 아버지는 그 시절 종길이가 먹고 살 기술을 갖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기술 좋으십니다. 한 10년은 젊게 보이는 데요.”
남자분이 기분좋게 웃으며 일어납니다.
웃음 소리에 종길이 아저씨도 기분이 좋습니다.
“웬걸요. 다 댁의 따님 덕분이지요.”
종길이 아저씨도 따라 웃습니다.
남자분이 빵모자를 집어 들고는 가게를 나섭니다.
초록빛 빵모자가 눈에 띄게 빛납니다.
남자분을 보내고 난 뒤 종길이 아저씨가 다시 창가에 앉습니다.
“너는 맏이가 아니니까.”
그러는 아버지의 말씀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