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
아저씨는 아예 비좁은 가게 안에 치오의 집을 하나 마련해 주었습니다.
천장의 손바닥만한 페인트통 뚜껑 위가 치오의 집입니다.
한 지붕 두 가족이 된 셈입니다.
그렇지만 함께 사는 한 식구입니다. 아저씨는 치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치오는 아저씨의 심심찮은 말벗이 돼 주는 그런 한 식구입니다.
석유 곤로로 쥐라기 아저씨가 저녁을 짓습니다.
치오는 아저씨의 어깨 위에 와 앉습니다. 치오는 아저씨의 예쁜 아기입니다. 아저씨는 가족이라곤 없습니다. 나이가 많은데도 왜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시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이 동네에 와 구두닦이를 하면서부터 결혼하기를 미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뿐입니다.
어떻든 아저씨는 이 가게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삽니다.
아저씨라고 해서 왜 추위와 더위를 못 느끼겠어요? 그러나 아저씨는 다른 곳으로 옯기지도 않고 여기서만 오랫동안을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아저씨의 공룡기질일지도 모릅니다.
식사를 마치면 치오를 바라보는 것이 아저씨이 가장 큰 재미입니다. 치오가 가끔씩 맑은 소리로 울음을 들려 주면 아저씨는 그것으로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씻깁니다. 긴 겨울 밤을 아저씨와 함께 잇어 주는 치오야말로 아저씨의 친구이며 소중한 자식입니다.
아저씨가 길을 걸으면 치오는 아저씨의 손바닥 위에서 함께 걷습니다.
심심하면 저쯤 푸른 하늘을 날아올랐다가도 다시 돌아와 삣삣, 물방울처럼 투명한 울음소릴 들려 줍니다. 힘들게 보내던 겨울이 다 지나가는 어느 날입니다.
그 날도 오후 늦게쯤 되어서입니다.
“이보시게, 선생.”
하는 목소리가 가게 문 앞에서 들립니다. 기다리던 그 하얀 고무신을 신으신 발이 멈추었습니다. 눈이 마구 녹는 가게 앞에 멈춘 발은 보기에도 많이 가벼워 보입니다. 회색 바지가 이른 봄바람에 가볍게 나부낍니다. 할아버지의 나이가 세월의 힘에 맥없이 흔들리듯 그렇게 나부낍니다.
쥐라기 아저씨는 허리를 굽히며 나가 공손히 인사를 드립니다.
“겨울을 잘 나셨습니까?”
할아버지는 회색 목도리에 낡은 중절 모자를 쓰셨습니다.
모자 밑에 그늘진 얼굴이 그전보다 더 힘없어 보입니다. 들고 계신 예의 그 보따리를 건네십니다. 보따리를 풀어내고 구두를 손에 쥡니다.
“통일이 된대두 의주까진 신고 갈 만하겠지?”
목소리만은 카랑카랑합니다.
“아무려면 거기까지만 가겠습니까? 이렇게 튼튼한 구둔데 말입니다.”
구두는 낡기는 했지만 탄탄합니다.
앞으로 100년 뒤라도 의주까지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구두입니다.
구두를 탁 감싸 쥔 아저씨의 손에 구두의 그런 힘이 느껴집니다. 수십 년이 넘도록 구두를 잡아 본 손입니다. 아저씨의 손은 그 어떤 구두도 잡으면 잡는 순간, 구두의 수명을 알아 낼 수 있습니다. 남자용이든 여자용이든, 낡은 것에서도 탄탄하게 숨쉬는 구두의 수명을 잴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로 보기 드물게 좋은 구두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할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 하는 괜한 말이 아닙니다. 구두의 뼈대와 가죽이 이루어 내는 힘이 짚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길도 끝내는 걸어가 그 목적지에 닿을 수 있는 힘을 구두의 든든한 얼개가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쥐라기 아저씨는 구두약을 흠뻑 먹입니다. 그리고 난 뒤 빛을 만듭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에 부딪쳤는지 할아버지 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한 가지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할아버지는 감으셨던 눈을 뜨고 아저씨를 보십니다.
“꼭 이 구두를 신고 고향으로 가시겠다는 이유가 뭔지요?”
쥐라기 아저씨는 그게 궁금했습니다. 월남할 때 신으셨다고 그걸 신고 고향으로 가셔야 할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비밀을 꺼내듯이 할아버지가 천천히 입을 여십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그 구두는 내 아버님이 지으신 거라네. 내 아버님은 의주에 서도 잘 알려진 구두 짓는 기술자셨네. ”
할아버지가 다시 깊게 눈을 감으십니다.
“가진 건 없으셨지만 구두 만드는 일에만은 온 힘을 쏟으셨다네. 한 켤레의 구두를 만드시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으실 만큼.”
“훌륭한 분이셨구만요, 참 훌륭한.”
“그러셨네. 그러나 그 시절 나는 그런 아버지의 구두를 신으면서도 아버지의 솜씨를 칭찬해 드린 적이 없었네. 언제 통일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 구두를 신고 돌아가 아버님께 보여 드리겠네. 그리고 아버님의 솜씨를 밤이 다 가도록 칭찬해 드리고 싶다네.”
눈 앞에 고향을 보시듯 목소리가 더욱 카랑카랑해집니다.
“그리고 온 몸을 다해 구두를 닦는 선생의 모습에서 나의 아버님을 느낄 때가 있었네.”
다 닦은 아저씨가 구두를 보자기에 얌전히 쌉니다. 그러는 아저씨의 손이 떨립니다. 구두 보따리를 받으시며 할아버지가 손을 내미십니다. 50월짜리 반짝이는 동전입니다.
“자, 그럼. 선생, 잘 있게.”
그렇게 떠나 가시고 난 뒷날부터입니다.
들리던 소문대로 이 마을 집들이 너무 낡아서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됐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마을 집들이 헐리면 이 마을은 아파트촌이 될 거라는 이야기도 나돌았습니다.
그 소문은 사실이 되어 마을은 정말 부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도시에서도 개발되지 않고 남아 있는 곳은 오직 이 곳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담하고 깨끗한 아파트촌이 될 거라며 사람들의 마음은 부풀 대로 부풀었습니다. 그러더니 넉 달도 못 넘기고 여름으로 들어서는 어느 날, 집들은 헐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쥐라기 아저씨의 이 구두닦이 가게도 없어져야겠지요. 그 일 떄문에 동회에서는 몇 번이나 떠나 줄 것을 알려 왔습니다.
쥐라기 아저씨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가게를 옮긴다는 거야 어려울 거 없습니다. 그렇지만 30년이 넘도록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살아온 이 가게를 없애야 한다는 게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넉 달이 다 되도록 할아버지의 발길은 끊겼습니다 여태껏 이런 일이 없었는데......
여느 떄 같으면 오실 댸가 넘었는데도 할아버지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내일이면 철거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벌써 트럭들이 산더미 같은 흙을 실어 나르느라 길거리는 밤이어도 소란합니다.
아저씨는 밤이 늦도록 가게에 불을 켰습니다.
참새 치오가 잠을 자지 못합니다.
하룻밤이 다 가도록 할아버지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짐을 쌌지만 떠날 수가 없습니다. 할아버지의 외로움을 지켜 드리기 위해 견디어 왔던 시간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것 같았습니다. 아저씨는 치오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말했습니다.
“너도 네 사는 곳으로 가거라. 내게 더 이상 갇혀 살지 말고. 네가 꿈꾸는 네 부모의 품으로 가거라.”
아저씨는 슬픈 마음으로 치오를 날렸습니다.
몇 번이고 되돌아오던 치오에게도 푸른 하늘에 대한 꿈이 살아난 모양입니다. 치오는 먼 하늘로 날아가 끝내 하늘 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아저씨도 떠났습니다. 조그마한 짐차를 타고 떠났습니다.
가면서도 한없이 뒤를 돌아다봅니다. 트럭들이 날리는 먼지 바람 속에서 할아버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 옵니다.
"아버님의 구두 짓는 솜씨를 밤이 다 가도록 칭찬해 드리고 싶네."
쥐라기 아저씨의 눈에 핑그르르, 먼지에 젖은 눈물이 고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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