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삼촌이 주고 간 자전거
권 영 상
한 떼의 아이들이 슈퍼마켓 쪽을 향해 자전거를 타고 달립니다. 자전거의 은빛 바퀴살이 눈부십니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그 은빛 자전거를 아까부터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툭 하면 요즘 이 놀이터 벤치에 나옵니다. 할아버지의 머리칼은 하얗습니다. 이마엔 굵은 주름살이 곱게 졌습니다. 눈은 움푹 파였지만 눈빛만은 맑습니다. 그 맑은 눈빛 안으로 할아버지의 자전거 한 대가 추억처럼 나타납니다.
우내가 11살 때입니다.
어느 이른 여름날이었습니다.
외롭고 심심한 우내에게 느닷없이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외삼촌이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일 주일 뒤면 외삼촌은 군에 간댔습니다. 그러니 이젠 자전거가 필요 없겠지요.
외삼촌은 안방에 들어가 엄마가 내놓은 차 한잔을 마시고는 일어섰습니다. 신발끈을 묶고 마당에 나선 외삼촌이 한 발로 자전거를 툭 건드리며 우내를 건너다 봅니다.
“외삼촌이 우내한테 주는 선물이다.”
그러고는 우내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집을 나갔습니다.
자전거를 보고 있던 우내는 숨막힐 듯이 기뻤습니다. 그간 자전거를 갖고 싶었습니다. 머리칼을 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아이들이 너무나 부러웠거든요. 이렇다할 친구도 없는 우내에게 있어 자전거는 정말 너무나 큰 선물이었습니다.
우내의 마음을 끈 것은 자전거의 눈부신 바퀴살이었습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자전거 바퀴살, 그 원형의 바퀴살을 굴리며 길거리를 달리는 아이들이 우내는 늘 부러웠지요.
우내는 마당귀에 세워놓은 자전거를 만져봤습니다. 만지기만 해도 훌쩍 날아가 버릴 듯이 가벼워 보였습니다. 클랙션을 눌렀습니다. 꾸욱꾸욱, 클랙션 소리가 놀랄 정도로 컸습니다. 이번에는 두 손으로 핸들을 잡았습니다. 훌륭한 비행기 조종사가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우내는 자전거의 굄대를 발로 제꼈습니다. 자전거가 달아날 듯 움찔, 했습니다. 우내는 핸들을 잡고 조심조심 한 바퀴 마당을 돌아봤습니다. 그 때 아버지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외삼촌이 준다던 우내 선물이구나!”
아버지는 벌써 이 사실을 다 아시는 모양이었습니다.
우내는 아버지 앞으로 자전거를 굴려 갔습니다. 마음처럼 잘 굴려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 손으로 외삼촌의 자전거를 자연스럽게 잡았습니다. 그러더니 널름 올라 타셨습니다. 우내를 유혹하듯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마당을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나중엔 핸들을 한손으로 잡고 곡예사처럼 마당을 휙휙 돌았습니다.
“저도 얼른 배우고 싶어요!”
우내는 아버지 뒤를 쫓으며 달렸습니다.
“그래, 아빠가 잘 가르쳐 줄 테니까.”
아버지는 우내를 태우고 학교 운동장으로 갔습니다. 마침 방학이라 운동장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자전거에서 내린 아버지가 우내에게 핸들을 내밀었습니다.
“자. 한번 잡아 봐라. ”
우내는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천천히 걸어나갔습니다. 좀더 빨리 걸어도 보고, 뛰어도 봤습니다.
“아빠, 잡아 주세요! 한번 타 볼래요.”
우내가 자신있는 투로 말했습니다.
“그러려무나.”
아버지는 뒤에서 자전거를 잡았습니다. 우내는 간신히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세상이 우내의 키만큼 낮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핸들을 좌우로 돌려 봐라.”
우내는 안심하고 핸들을 이쪽 저쪽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핸들을 바로 잡는 순간, 아버지는 앞쪽을 향해 천천히 자전거를 미셨습니다. 아버지가 뒤에서 밀어주시는 데도 우내의 몸은 자꾸만 어느 한쪽으로 기울고, 그때마다 핸들도 그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몸이 기우는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틀어라. 균형이 필요하단다.”
아버지는 그러시며 ‘핸들을 오른쪽으로!’, ‘핸들을 왼쪽으로!’ 연실 재촉했습니다.
자전거 타기 연습을 한 지 사흘쯤 되었습니다.
어쩐지 사흘이 되어도 우내의 자전거 솜씨는 늘지 않았습니다. 우내는 무슨 일에든 좀 서툴렀습니다. 망가진 서랍의 못을 박을 때도, 철사 하나를 자를 때도 서툴렀습니다. 그런 이유로 끝내는 아버지의 도움을 청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남들이 이틀이면 탄다는 자전거를 우내는 사흘이 되어도 못 탔습니다.
닷새째 되는 날,
아버지가 뒤에서 우내의 자전거를 붙잡으며 말했습니다.
“운동장의 먼 곳을 보아라. 먼 곳에다 네가 갈 목표물을 정했으면 힘껏 페달을 밟아라. 쓰러지는 걸 두려워 말고.”
우내는 운동장 끝에 선 버드나무를 똑바로 보았습니다.
“자, 목표물을 향해 힘껏 페달을 밟아라.”
우내가 페달을 밟자, 아버지는 약간의 힘을 주어 밀고는 슬며시 자전거를 놓았습니다.
그 순간, 우내는 자전거와 함께 옆으로 픽 고꾸라졌습니다.
“아빠가 갑자기 놓아서 그랬잖아요!”
우내는 투덜거리며 일어났습니다.
“네 뒤에 아빠가 있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리고 네 홀로 가는 법을 익혀라.”
아버지는 툭, 그렇게 말하고 무엇이 못마땅한지 팔짱을 끼고 섰습니다. 이제 우내는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붙잡아 달라는 말을 하기가 민망했습니다. 그러나 우내는 또 아버지 없이는 자전거 배울 길이 없었습니다.
“아빠, 가만 있지 말고 잡아 주세요.”
우내는 아버지의 도움을 다시 청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대답 대신 뚜걱뚜걱 운동장을 걸어 교문을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러실 수가!”
우내의 몸에 일종의 오기 같은 것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두고 보시라지.’
우내는 그날,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수없이 쓰러지고 또 일어서고 했습니다. 무릎이 벗겨지고, 정강이에 푸른 멍이 들도록 자전거와 싸웠습니다. 그래요. 싸웠어요. 싸웠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밉지만 우내는 아버지가 일러주신 대로 먼저 달려갈 방향의 목표물을 정했습니다. 그리고는 목표물을 향해 힘껏 페달을 밟았습니다.
고된 자전거 타기가 있고 난 다음날이었습니다.
잘 타지는 못하지만 이제 우내는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운동장의 한가운데를 이리저리 다녀봅니다. 서툴지만 달릴 수도 있고, 달리다가 브레이크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한쪽 다리로 땅바닥을 끌며 자전거를 멈추게 하는 법도 그런 대로 터득했습니다.
학교 담장의 그늘만을 골라 자전거를 몰아보았습니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빙글빙글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우내는 급기야 자전거를 몰고 교문을 나섰습니다. 복잡한 골목길을 달렸습니다. 좁은 시장길도 달렸습니다. 예전, 버스를 타러 다니던 목재소까지도 가 보았습니다.
그날, 늦은 오후쯤이었습니다.
공장 일을 마치고 오시던 아버지를 우체통 앞에서 만났습니다.
“저 이제 아빠 없이도 잘 타지요?.”
우내는 자랑스레 ‘끄으윽’ 브레이크 손잡이를 잡으며 아빠 앞에 섰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건 아빠가 네 뒤에서 너를 밀어 준다는 생각을 버리렴.”
아버지가 장난꾸러기처럼 앞서 후두두 달렸습니다. 그러나 우내는 아직 아버지만큼 빨리 달릴 수 없습니다.
“아빠! 빨리 뛰지 말아요!”
우내는 아버지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걱정 마라! 언젠가 아빠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테니까.”
저만큼 앞에 달려간 아버지가 우뚝 서서 우내를 돌아다 봅니다. 우내는 우뚝 서 있는 그 아버지를 자신이 가야 할 길의 목표로 삼아 힘껏 페달을 밟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내라는 한 소년은 먼길을 쓰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쓰러지려 할 때마다 우내는 자전거 타기를 가르쳐 주시던 아버지를 생각했지요. 벤치에 앉아있는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자전거 한 대가 조용히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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