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내 인생의 간이역

권영상 2014. 8. 8. 12:59

내 인생의 간이역

권영상

 

 

 

 

급행열차가 출현하면서 간이역이라는 말이 생겼겠다. 역마다 다 서는 완행열차에 비하면 급행열차는 큼직한 역에만 정거한다. 그 외의 작은 역은 그냥 스쳐 지나간다. 그때마다 간이역은 머쓱해 보였다. 어쩌면 그 무렵부터 나의 인생도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속도를 내는 법을 급행열차를 통해 배웠다. 승객이 많은 역만 서고, 한두 명의 승객이 기다리는 간이역은 모르는 체 지나치는 것이 급행열차의 속도다.

 

 

 

나이 스물, 속도를 알아가는 내 눈에 간이역이 보일 리 없었다. 서울로 터전을 옮겨앉은 나는 도시의 번화함에 내 몸의 리듬을 서둘러 맞추어 나갔다. 내 몸은 어린 날에 경험하지 못했던 빠른 속도감에 적응하느라 만신창이가 됐다. 한 주일치 시간을 하루에 몰아쓰듯 빠듯하게, 허겁지겁 살았다. 내가 가고 있는 길 바깥에서 누가 내게 도움을 청하는 손을 흔들면 나는 말했다. 지금 나 바뻐, 보다시피 시간에 쫓기고 있다구, 정말 숨 쉴 짬도 없네! 그렇게 엄살을 떨며 금방 잡힐 것 같은 욕망을 향해 질주했다. 마치 급행열차가 간이역에서 기다리는 승객들을 외면하듯 나도 그들을 외면했다. 그러느라 나는 멀리 왔지만 나는 속도에 중독된 사람처럼 빠른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이만큼 살아오는 어느 순간,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마치 그 옛날의 급행열차를 닮아있었다. 만약 어디선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나와 다른 이름의 급행열차와 마주친다면...... 그 생각에 이르면 소름이 끼친다. 사고가 난다면 큰 사고가 날 테고, 나만을 위해 질주해온 나의 것들이 한순간에 날아갈 것이다.

 

 

그럴 때마다 생각없이 지나쳐온 내 마음의 간이역을 생각해 본다. 사람에겐 누구나 마음 안에 몇 개인가의 간이역이 있다. 타고 내리는 사람 없는, 바쁘게 나아가는 내게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어찌보면 있으나 마나해 보이는 간이역이 있다. 근데 그 있으나마한 간이역이 때로는 앞만 보고 달리는 나의 뒷허리춤을 잡아당기곤 했다. 온종일 천일국이며 다알리아가 피고, 해바라기들이 한가하게 피는, 그리고 열차 신호기가 우두커니 서 있는 그 간이역을 떠올리면 간이역이 내게 말하곤 했다. ‘내가 너무 외로울 것 같지 않니?’라고.

 

 

 

 

지난 금요일, 나는 차를 몰아 8월 내 마음의 간이역을 향해 달렸다. 중앙고속도로에서 제천으로 방향을 틀어 38번 국도를 타고 가 함백에서 멈추었다. 거기가 나의 첫 발령지였다. 당시 함백은 꽤나 큰 석탄광업소가 있었고, 광업소 교대 시간을 알리는 시보는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보다 더 컸다. 무연탄을 실어나르는 함백역은 석탄더미로 둘러싸여 있었고, 바람이라도 불면 석탄가루가 이불자락처럼 날려 온 마을을 캄캄하게 뒤덮었다.

 

 

 

그곳에서 나는 1년을 근무하고 떠났다. 아무 아름다울 것도, 정들 것도 없는 그곳이 왜 나를 불러냈을까. 나는 폐광이 되어 사람 그림자라곤 없는 마을을 지나 이제 5학급뿐인 초등학교 마당에 들어섰다. 교실 안에서 리코더 소리가 났다. 몇 아이들이 방학숙제라며 고개를 주억거리며 연습을 한다. 나는 창가에 서서 그 옛날의 풍금소리처럼 리코더 소리를 듣다가 발길을 돌렸다. 작은 교사며 운동장이며 국기봉에 매달린 국기가 참 외로워 보였다. 아니, 외로운 건 나였다.

 

 

 

좀 늦긴 했지만 이쯤에서 나는 내 인생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 예전 내게 도움을 청하던 이들도, 나와 호형호제 하던 동료들도 없다. 휴대폰에 적혀있는 이 수많은 전화번호들도 이제는 쉽게 불러낼 이들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제야 알겠다. 여기까지 나를 불러낸 나의 간이역은 내게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싶었던 거다.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 남는 것은 나혼자뿐이라는 것. 한 때 지칠 줄 모르게 번화하던 이 광산촌도 지금은 폐광이 되어 빈집들과 녹슨 철길이 뿜어내는 고적함에 휩싸여 있다. 그때의 시커먼 석탄물이 아닌 맑은 개울물에서 나는 오히려 더 큰 외로움을 느낀다.

인적없는 플라타너스 그늘에 앉아 외로이 우는 매미소리를 듣다가 일어섰다.

 

 

 

하룻밤 자고 오리라 하고 왔는데 나는 그 곳을 그냥 떠나왔다. 너무 외로워서 장맛비에 웃자란 풀처럼 금방 쓰러질 것 같았다.

이 외로움을 어디에 쓸 것인가.

나는 내 몸 가득히 차오른 외로움의 쓸모에 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