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켄베리아, 그리고 히아신스의 사치
권영상
지지난 해에 조그마한 부켄베리아 화분을 하나 샀다. 여러 해 전, 인도 자이살메르 고성에서 본 빛나는 기억 때문이었다. 몸이 너무 지쳐서 쉬러가자며 한 달 동안 인도에 갔었다. 그때 나는 진한 분홍의 부켄베리아꽃에 반했다. 아열대의 오렌지색 햇빛과 적색 사암의 고성과 진분홍 부켄베리아가 너무도 잘 어울렸다. 단지 그런 기억 말고도 꽃빛이 자극적이었다. 사람을 설레게 하는 듯, 누군가를 좀 그립게 하는 듯, 지친 내 몸을 살려 올렸다.
그 오래된 기억이 부켄베리아 화분을 집어 들게 했다. 사가지고 온 부켄베리아는 생각처럼 잘 자라주지 않았다. 자라기는커녕 몇 송이 붙어있던 꽃이 지면서 그만 진딧물에 시달렸다. 진딧물을 잡아주다가 몇 잎 남은 잎마저 떨어지자, 나는 거기에 분꽃을 심었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분꽃도 늦가을 눈이 내릴 쯤 피는 일을 멈추었다. 그때까지도 부켄베리아는 죽은 듯 분꽃 곁에 기대어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지난 해 봄이었다. 부켄베리아 화분을 손이 가지 않는 베란다 창밖에 내놓았다. 그러고는 그와의 인연을 끊을 수 없어 때마다 물을 주었는데, 유월 그쯤 부터다. 새 순이 네 개나 솟아났다. 더 이상 생장력이 없는 본디 가지를 송두리째 포기하고, 뿌리 근처에서 아예 새 순이 돋았다. 이게 사람을 놀라게 했다. 생명의 물길을 찾아내기 어렵지 한번 그 물꼬를 트자, 새 순은 미친 듯이 커 올랐다. 한 달 새에 1미터는 컸다. 가을이 왔을 때는 거의 2미터나 장성하게 치솟았다.
“이 녀석이 콩나무가 되려나?”
나는 물을 줄 때마다 고개를 빼고 위층을 올려다봤다.
위층 집에도 베란다 창턱이 있다. 부켄베리아는 거기가 제 인생의 목표인양 하루가 다르게 쑥쑥 키를 뽑아 올렸다. 빨리 큰다고 줄기가 허약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몇 년간 성장하지 못하여 억눌렀던 힘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원고 청탁이 있어 간단히 짐을 챙겨 안성에 내려갔다. 나는 거기 텃밭에 심어놓은 쉰 포기 배추를 돌보고, 상추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원고를 쓰며 열흘을 지내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물바가지에 가득히 물을 떠 베란다 창문을 여는데, 부켄베리아 우듬지가 붉었다. 그 사이 꽃이 피고 있었다. 세상에! 그렇게 꽃을 보고 싶어 했는데 이태만에 내 소원을 들어주다니! 네 개의 가지 끝마다 쪼끄만한 저들의 붉은 세상을 열고 있었다. 치솟던 가지는 이미 위층 창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화분을 내려 볕이 좋은 쪽 베란다에 내려놓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부켄베리아는 물 부족을 겪으면 꽃을 피운댔다. 그러니까 내가 열흘 동안 안성에 내려가 있는 사이 부켄베리아는 갈증을 못 이기고 꽃을 터트린 거다.
한번 꽃이 피기 시작하자, 부켄베리아는 쉬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송이씩 피워 가지 끝에 함뿍함뿍 꽃다발을 만들었다. 진분홍의 탐스러운 부켄베리아.
놀라운 건 부켄베리아 꽃이 가시 끝에서 핀다는 사실이다. 부켄베리아는 가지에 굵은 가시가 어긋어긋 돋아나 있다. 그 가시 뾰족한 끝에서 움이 돋아 세 개의 꽃자루가 나오고 그 꽃자루 끝에서 꽃이 핀다. 타인의 손을 찌르는 뾰족한 가시가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는 이 오묘한 역설.
부켄베리아가 왜 마음을 설레게 하는 꽃인지 나는 그때에야 알았다. 내게 있어 가시는 자신을 방어하는 가시일 뿐이다. 장미 가시가 그렇고, 아카시 가시가 그렇다. 분노에 떨 때 우리의 심장에서 돋던 가시도 자신을 방어하거나 남을 공격하는 가시일 뿐이다. 그런데 그 날카로운 가시의 정점에서 부켄베리아는 마침내 곱디고운 꽃을 피워낸다. 증오를 사랑으로 바꾸어내는 부켄베리아의 숭고한 이념에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울눈이 펑펑 내릴 때에도 부켄베리아는 창밖의 겨울과 달리 부지런히 꽃을 피웠다. 키가 커 천장에 닿는 가지에게는 좋은 소식이 있었다. 삽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좋은 소식은 물 관리만 잘 하면 한 해에도 두어 번씩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행복을 부켄베리아가 내게 안겨주시다니. 이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그러나 부켄베리아 꽃도 툭툭 지기 시작했다.
자고 나면 분홍 꽃은 베란다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부추가 크는 부추상자 위에도, 난초화분 위에도 툭툭 떨어졌다. 낙화가 아까워 하얀 물 대접에 꽃잎을 띄우면 대접에 꽃물이 들것 같이 꽃빛이 곱다. 우리가 꽃이라고 부르는 부켄베리아 꽃은 실은 꽃이 아니다. 화포花苞다. 그러니까 꽃을 받쳐주는 녹색 꽃받침인데, 이게 석 장의 변형된 꽃 모양을 하고 있다. 꽃은 그 화포 안에 크림 빛의 작은 귀이개 모양을 하고 있다.
부켄베리아가 다 떨어질 무렵이었다.
어두운 베란다 그늘에 두었던 히아신스가 푸른빛을 찾아 물고 나왔다. 나는 히아신스 화분에 물 한 컵을 주어 햇빛 잘 드는 수돗가에 두었다.
지난 해, 딸아이가 다니는 회사에 들렀다가 양재동 꽃시장에서 사온 거다. 종일토록 겨울햇살을 머금더니 탐스런 꽃대를 밀어 올렸다. 지금 꽃향기를 한창 풀어내고 있다. 아무리 향기 욕심이 많다해도 히아신스 화분을 통째 들어 올려 코에 대면 기절할지 모른다. 향기가 그만큼 진하다. 조용히 화분을 향해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손끝으로 꽃향기를 흔들어만 주어도 암향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베란다로 나가는 문을 연다. 밤새 고여 있던 히아신스 꽃향기가 은은히 내 코를 스친다. 내가 살아있다는 기쁨을 선물처럼 매일 안겨준다. 한 순간이나마 산다는 일에 행복을 느낀다.
눅눅한 정신을 맑히고 싶을 때나, 글이라도 한줄 써야지 싶을 때 히아신스 꽃향기에 잠시 젖어보면 좋다. 커피 한잔으로 정신을 내는 것도 좋지만 히아신스 향기로 후각의 사치를 느껴보는 것도 좋다. 인생이 그렇듯 문장도 스토리보다 문체가 적당히 사치스러울 때 비로소 세상에 남는다.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에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0) | 2014.03.04 |
---|---|
작은 행복 (0) | 2014.02.27 |
전설적인 강릉의 2월 눈 (0) | 2014.02.22 |
찜질방, 외박을 자극하다 (0) | 2014.02.11 |
아득히 지워져가는 사랑 (0) | 2014.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