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작은 행복

권영상 2014. 2. 27. 13:04

 

작은 행복

권영상

 

 

 

 

 

지난 보름날이다. 누님 집에 다니러갔다. 설 쇤지 오래 됐는데도 찾아뵙고 세배를 못 드렸다. 예전, 아버지 말씀으로 정월 보름까지 세배를 드려도 결례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같은 서울에 살아도 때맞추어 누님을 찾아뵙는 일이 어렵다. 전화로만 매형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드렸다.

얼른 저녁을 먹고 찾아뵙자며 아내와 함께 일어섰다.

집을 나서다가 다시 들어가 강릉에서 얻어온 목화 두 송이 중의 한 송이를 안주머니에 넣었다. 안성에 심어볼까 하고 얻어온 것인데 누님께도 한 송이 드리면 적당한 데다 심으실 것 같았다. 화분에 심어 옥상에 올려두어도 되고, 마당 빈자리에 심어도 될 테고.

나는 목화가 짓눌릴까봐 안전벨트를 늦추어 매었다. 그리고 남부순환로에 올라섰다.

 

 

 

누님 집엔 마침 두 살배기 누님의 손자 녀석도 와 있었다.

우리는 누님과 매형에게 늦었지만 세배를 드렸다. 아내가 조그마한 선물을 내놓았다. 누님도 시장에서 사두었다는 큼직한 털실장갑을 내놓았다. 그걸 받아들고 있는데 두 살배기 녀석이 내게 절을 했다. 아직도 머리칼이 보소소한 녀석이다. 내 앞에 털썩 주저앉듯 절을 하더니 하얀 침 한 줄을 흘리며 일어났다. 눈망울이 여간 똘망똘망하지 않다. 내가 침을 닦아주자, 그 녀석이 내게 두 손을 내밀었다.

 

 

 

“돈은 안 돼!”

애들 버릇 나쁘게 한다며 누님이 눈을 찔끔했다.

나도 세뱃돈이라며 지갑을 열어 쑥쑥 쉽게 내주긴 했지만 그게 옳은 일인지 의구심은 들었다. 그때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나는 얼른 안주머니에 넣어온 하얀 목화송이를 꺼내 그 두 살배기 녀석의 작고 예쁜 손에 가볍게 놓아주었다.

“세뱃값이다.”

그러며 그 녀석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녀석이 제 손위의 놓인 세배 값을 유심히 바라봤다. 구름같이 하얀 것. 이 구름 같은 것의 정체를 알아보려는지 손가락으로 고물고물 만져봤다. 그러는 그의 눈동자가 일순 커졌다. 녀석이 나를 한번 쳐다봤다. 그러더니 잇몸을 내놓고 활짝 웃으며 와락 목화송이를 제 품에 끌어당겼다.

“이불 한 채 받았구나!”

“절값 중의 귀한 절값이다!”

그제사 누님과 매형이 손자 녀석에게 한 마디씩 하셨다.

목화송이를 절값으로 받은 녀석은 그게 신기한 모양이다. 제 빨간 볼에 대어도 보고, 제 눈두덩이를 살살 간질러도 보았다. 그러더니 제 엄마 볼에 대어 보며 깔깔대며 웃었다.

내가 오라고 손뼉을 쳐서 손을 내밀자, 얼른 내게 다가와 안긴다. 그러는 그의 손에 목화솜이 꼭 쥐여져 있었다.

 

 

 

저녁을 먹고 갔는데도 누님이 차려주시는 저녁을 또 먹고 돌아왔다.

까치고개쯤 왔을 때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아내가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돈이 아니어서 울까 걱정했는데…….”

“그게 그렇게 신기했던가봐. 당신도 그 커다래지던 눈 봤어?”

아내가 두 손을 둥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내게 물었다.

“봤어.”

“애기가 그렇게 신기해하는 거 나도 처음 봤어.”

아내도 그때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세뱃돈으로 만원을 꺼내기도 그렇고, 5만원을 주기도 그렇고. 아마 주었다면 2.3만원은 주었겠다. 돈도 잘 모르는 그 녀석이 2,3만 원을 받았다면 그렇게 기뻐했을까.

 

 

 

책을 낼 때마다 늘 출판사 편집자들을 만나왔다. 계약서도 만들어야 하고, 원고 내용에 대한 의논도 해야 했다. 암만 이메일로 원고가 오간다 해도 만날 일은 만나야 한다. 그 동안 70여권의 책을 냈으니 편집자들도 많이 만났다. 나는 주로 수업이 끝난 오후 시간대에 학교에서 편하게 그들을 만나왔다. 만나서 볼일이 늦어지면 저녁을 대접하든가, 바쁜 일이 있으면 그냥 보내든가 했다.

교문까지 그들을 배웅할 적이면 나는 장난삼아 돈 천원을 드리곤 했다.

“가시다 아이스크림 사 드세요.”

근데, 그걸 받아들고 돌아간 편집자들은 꼭 답장을 해주었다. 너무 고마웠다고. 작가 분한테 받은 이 뜻밖의 돈 천 원, 오래 간직하겠다고. 그들은 내가 장난삼아 드리는 돈 천원에, 돈 천 원 이상의 고마움을 편지로 전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 썩 훗날, 편집자들이 많이 모이는 인사동이나 홍대역 근처 음식점에 가면 우연히 그들을 만나곤 했다. 그러면 그들은 그때 내게서 받은 돈 천원에 대해 어김없이 이야기했다. 그때, 그 돈 천원을 받을 때 한 순간이긴 했지만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해 기뻤다고.

책을 만드는 분들이라 그런지 돈 천 원에 대한 행복을 오래 간직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몇 만원씩 세뱃돈을 받아온 아이들은 커서 소박한 행복의 맛을 모른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인생을 불평불만만 해온 나는 혹시 작은 행복에 무감각하지 않았을까. 그런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다들 행복을 얻으려면 천천히 살거나 느리게 사는 법을 맛보라 한다. 그러나 행복은 천천히 살고 느리게 살고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그건 휴가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현실이란 느리고 천천히 살만한 곳이 아니다. 문제는 삶의 자세다. 작은 행복도 행복인 줄 아는 삶의 자세. 

작은 행복을 모르면 큰 행복이 내게 찾아와도 그게 넘치는 행복인 줄 모르기 쉽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불행하다고 불평하며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