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씨앗에 눈을 돌릴 때다
권영상
눈 내린 길을 걸어 우면산에 오른다. 춥다. 오늘 최저 기온이 영하 18도라 한다. 허벅지와 사타구니로 내리치는 바람이 싸늘하다. 이럴 때 산에 기대어 사는 짐승들은 무얼 먹을까,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양지쪽 마른 풀섶에서 뭐가 부스럭거린다. 오목눈이새들이다. 종지만한 녀석들이 마른 풀씨를 쪼아먹고 있다. 팥배나무 아래 벤치엔 빨간 팥배열매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나무 우듬지에 새가 앉았다. 개똥지바퀴다. 가지 끝에 남은 팥배열매를 딴다. 이런 때를 위해 팥배나무는 많은 열매를 열어 삼동을 난다. 새들은 저걸 먹고, 먹여준 나무에게 보답을 한다. 멀리로 날아가 적당한데에다 똥을 싸 팥배나무의 유전자를 퍼뜨린다. 그래서 숲은 늙은 나무 쓰러진 자리에 새로이 어린 나무가 자라 생태의 조절이 된다. 벤치에 앉아 그걸 생각하려니, 그 이치에 벗어나는 삶을 사는게 우리 도시인인 듯하다. 도시인들은 콩을 먹든 옥수수를 먹든 먹고 말면 그만이다. 소비적이다. 먹은 것을 살려주는 보은이 없다.
서울에 살면서 차로 30분 거리에 주말농장을 한다. 어느 여름 고향 형수님께서 갓 따내신 토종옥수수 한 상자를 택배로 보내주셨다. 그걸 나누어 먹으면서 나는 옥수수 두 통을 따로 두었다. 왠지 고향의 것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예전의 아버지처럼 옥수수를 서로 묶어 베란다 벽에 걸어두었다. 종자씨를 받을 생각이었다. 그 씨를 받아 다음 해 주말농장에 심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주말농장이라 해봐야 5평 안팎의 손바닥만한 땅이지만 나는 그 이듬해 잘 마른 옥수수 두 통에서 튼실한 옥수수 씨앗 스무 알을 골라 심었다. 고추 포기 선 가장자리에 빙 둘러가며 심었다. 여름장마가 질 때 차를 몰고 밭에 갔다. 옥수수 잎에 뚝뚝 듣는 음악같은 빗소리를 들으며 딱딱, 옥수수를 젖혀 땄다. 몇 통 안 되는 옥수수지만 그걸 따 안고 돌아오는 마음이 뿌듯했다. 그런 기쁨을 얻은 건 형수님께서 보내주신 옥수수 덕택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우리 땅에서 나는 토종 씨앗에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양양군 달래골에 손윗동서가 귀촌해 사시고 있다. 검정콩 수확은 좀 하신 모양이었다. 콩 두 말을 부탁했더니 며칠 뒤 택배가 왔다. 그때에도 나는 아내가 콩자루의 콩을 떠 밥에 안치기 전에 콩씨를 할 양으로 두어 움큼을 빈 커피병에 담아 씨앗함에 넣었다. 씨앗함엔 고향에서 구해온 강낭콩씨며 쥐눈이콩이 있고, 목화며 단호박씨가 들어있다. 수세미, 홍화, 맨드라미, 쑥부쟁이, 팔손이꽃씨도 들어있다.
우리 땅에 나는 곡물만도 5천여 종이 넘는단다. 그런데 그것들도 외국종묘회사들이 육종한 씨앗에 휘둘려 대부분 외면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은 외면받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공헌할지 모른다. 우리가 수입해 먹는 밀에도 우리 앉은뱅이 밀의 유전자가 들어있다고 한다. 우리 씨앗에 눈을 돌릴 때다.
(교차로신문 2013년 1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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