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사용 보고서
권영상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내 몸을 빌려 잘 사용하였습니다. 이렇게 내 몸을 빌려쓴 지 벌써 오래 되었습니다. 나는 해마다 몸을 빌리기 위해 새 계약서를 쓰고 지켜나갈 것을 맹세해 왔습니다. 아무래도 주인이 원하는 대로 몸을 깨끗하게 쓸 의무가 세입자인 내게는 당연히 있는 거지요. 집집마다 사정이 다 다르겠지만 제가 빌려쓰고 있는 몸은 연소관과 배관시설이 안 좋습니다. 내가 함부로 몸을 썼기 때문이지요. 그런 까닭에 몸의 주인으로부터 해마다 몇 가지 주문이 있어왔습니다.
그 주문의 첫째가 금연입니다.
그러니까 연소관에 문제가 있었던 거지요. 그 주문에 대한 응답으로 ‘담배를 끊겠습니다’고 서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이 쉬워 그렇지 40여 년간 애용해온 담배를 끊는 일은 무리였지요. 결국 목이 따끔따끔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성대결절로 수술까지 한지라 과감히 끊어달라는 몸 주인의 신신부탁을 거절할 수 없습니다.
거절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거절한다면 나는 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차하게 내게 맞는 몸을 렌트해야 합니다. 요즘 같이 백세 장수를 바라는 세상에 남의 몸 빌리는 일은 만만치 않습니다. 끝내 담배 피는 개수를 줄이겠다는 서약을 했지만 그마저도 초기 두어 달은 실행하는 척 하다가 또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입니다. 어찌보면 내 몸을 빌려 쓸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결단력도 부족하고, 그 결단을 실행해 나갈 추진력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간신히 여러 해를 살아내다가 지난해 9월 범국가적인 금연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분연히 금연한지 벌써 4개월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식사량을 줄여달라는 주문이었습니다.
배관시설이 노후되어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가스방출도 심했습니다. 위와 대장에 관련된 처방을 써봤지만 효험이 없었습니다. 과잉영양 섭취가 배관기능에 부담을 준 것입니다. 하루 세끼라는 고정관념에서 과감히 벗어남으로써 내가 빌려쓰는 몸의 건강성을 높일 의무를 다 했습니다. 나는 기꺼이 하루 세끼를 두 끼로 줄였습니다.
올 한 해 동안, 내 몸을 사용한 내역에서 가장 탁월했던 점이 있습니다. 내 몸에 휴식을 주기로 했다는 점입니다. 달리 말해 직장을 그만 두는 일이었지요. 나는 20대 후반부터 직장에 뛰어들어 나와 가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내 몸을 혹사해 왔습니다. 잘만 유지 보수하면 더 사용할 수 있다는 검진을 받았지만 나는 여기서 직장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빌려쓸 더 많은 시간을 위해 지친 몸을 쉬게 해주기로 했습니다. 외벽도 고치고, 엔진과 내부기관도 보강해야 합니다. 그 일을 결정하는데 크게 공헌한 것은 한발 양보해 준 욕심 덕분입니다. 욕심을 덜 수 있었던 건 조금 갖고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의 발로 때문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의 내 몸 사용을 나는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새해에도 욕심을 내지 않고 내 몸을 안전하게 사용하는데 만전을 기할 것입니다. 쉰다고 불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적게 먹는다고 가난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 오랫동안 행복하기 위해 지친 몸을 좀 쉬게 해주는 것입니다.
(교차로신문 2013년 1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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