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아빠를 이렇게 닮았지?
권영상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먼데 나가 공부를 하는 아이가 요새 들어 부쩍 전화를 한다. 요즘 현대 미술가 앙드레 마송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그의 미술 성향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한다. 그러며 하는 말이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욕구가 심심찮게 일어난단다. 어제는 강의를 듣고 오는 길에 캔버스 하나를 사들고 왔다는 거다. 이젤도 없고 유화 물감 하나 없는데 왠지 그것에 손이 가더라며.
나는 무심코 아빠도 한 때 그랬었다고 했다. 주말이면 무료함과 격정을 이겨내지 못해 그림을 배웠고, 그것들의 잔해가 뒷베란다 세탁기 곁에 아직도 쌓여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때는 그러지 않고 못 배길 뜨거운 것들이 가슴 한복판에 있었다고.
“아빠, 그 때가 몇 살 때인지 말해줘 봐.”
딸아이가 이내 물었다. 나는 그 무렵의 내 나이를 말했다.
“아니, 어쩜 나이까지 그렇게 똑 같이 아빠를 닮는 거지?”
딸아이가 놀랍다는 듯이 내 말을 받았다. 나를 닮았다는 걸 전혀 싫어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듣고 보니 나도 그리 싫지 않다. 성질 급한 나를 닮아 좋을 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나를 닮았다니 달콤하다.
나이 어렸을 때 딸아이는 아빠 닮았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누가 아빠 닮았다면 오히려 엄마 닮았는데, 했다. 손가락 마디가 굵직굵직한 거며, 볼품없이 큰 코, 큰 발과 검정 머리칼....., 누가 보기에도 딸아이는 나를 닮았다. 그런데도 날 닮았다는 말을 싫어했다. 그뿐이 아니다. 실제로 나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술에 취해 길거리 벤치에 누운 나를 데려온 적도 있고, 택시비를 들고나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딸아이에게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아픈 데를 다독여주거나 이해해 주기보다 내 생각을 설득하는 쪽이었다. 그런데 20대 중반을 들어서면서부터 딸아이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아빠 좋아하는 순대국, 나 그거 되게 싫어했는데 그게 왜 좋아지려고 하지? 생각해 보니까 수박, 씨까지 먹는 습관도 똑 같더라고!”
저번 날 전화에도 그쪽 한국음식점에 다녀왔다며 그런 말을 했다.
아버지를 좀 알려고 하던 서른 중반에 나는 아버지를 잃었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선택을 하려할 때면 먼저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나였으면 어떻게 선택하셨을까 하는. 그런데 요즘은 나도 모르게 아버지 하시던 말투가 내 입에서 나온다. 즐겨 부르시던 벼베기 소리며, 즐겨 하시던 머리 스타일까지 닮아가는 나를 본다.
“순대국 좋아하시는 것까지 아버지를 이렇게 닮아 가네요.”
아버지 살아계신다면 나도 아버지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을 거다.
어쩜 이렇게 똑 같이 아빠를 닮아 가냐는 딸아이의 말이 내심 듣기 좋다. 자신이 낳은 자식이 부모를 닮아간다는 데 싫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아버지도 가끔 살아생전에, 아버지를 닮아가는 나를 보고 좋아하셨겠지, 그런 생각을 해본다.
(교차로신문 2012년 12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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