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잘 먹는 열 가지 방법
권영상
지난 봄, 직장의 행사가 있어 송추 계곡에 갔었다. 점심이 끝나고 팀을 엮어 족구를 했다. 내가 속한 팀에는 젊은 후배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고령자’란 이유로 나를 코트에 밀어넣었다. 그래도 넣어주는 것이 좋았다.
나는 옛날의 우쭐대던 그 기분으로 내게 맡겨진 포지션에 가 섰다. 네트 앞이다. 한창 게임이 무르익을 때다. 우리 코트로 넘어온 공을 팀 동료가 받아 차기 좋게 내 앞에 떨구어 주었다. 나는 멋지게 날아올라 오버헤드로 공을 찼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나는 헛발질을 했고, 공중에 날아오른 상태로 땅바닥에 쾅 떨어졌다. 한순간 정신이 아득했다. 사람들이 달려와 나를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괜찮냐고.
다행히 별 이상은 없었지만 그 즉시 나는 교체되었고 게임은 잠시 후 끝났다.
집에 돌아온 사흘째부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다리에 통증도 왔다. 병원을 찾았다.
“퇴행성 척추관 협착증입니다.”
엑스레이를 찍어낸 의사가 그랬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생전 듣도보도 못한 병에 시달렸다. 날이 갈수록 허리와 다리 통증이 심해 50미터도 못 걸을 신세가 되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나는 나이 먹어가는 법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젊었다고만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돌아보면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안내가 없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나는 협착증이 안겨주는 고통을 꾸준한 운동으로 극복해 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나이를 잘 먹는 열 가지 방법’을 만들어 책상 앞에 붙였다.
첫째, 무리한 액션을 삼가자.
나이란 자신도 모르게 먹어간다. 그 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늙어간다는 뜻이다. 늙어간다는 걸 인정할 때 가벼운 계단도 욕심부리지 않고 한 칸씩 오르게 된다.
둘째, 말수를 줄이자.
말이 많다고 느껴질 때 그것이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증거임을 알아야 한다. 나이먹은 자는 스스로 저의 말속에 지혜가 숨어있다고 자부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아무도 나이 먹은 자의 말은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말을 많이 하기보다 남의 말을 많이 들어줄 때 그만큼 대접 받는다.
셋째, 책을 많이 읽자.
나이 먹은 자가 지혜롭다는 것은 농경시대에나 쓰이던 낡은 말이다. 머리가 텅 비면 그 안에 고집만 들어찬다. 나이먹은 이가 등나무 벤치에 앉아 책 읽는 모습은 온 마을을 감동시키고도 남는다.
넷째, 아집을 버리자.
80 인생을 살아왔다 해도 기껏 한두 개의 직장에서 두어 가지 일을 한 게 전부다. 그러고도 마치 자신이 세상을 다 안다고 믿을 때 아집의 수렁에 빠진다. 자기만의 짧은 잣대로 세상을 재려하지 말라. 고집쟁이 노인이라는 말을 듣기 쉽다.
다섯째, 마음을 열자.
얄팍한 ‘개똥철학’에 매달리지 말고 남의 주장을 새롭고 신선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나의 것보다 남의 것이 항상 더 새롭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다.
여섯째, 스피치를 멋있게 하자.
같은 말도 멋있는 수사를 동원하면 말하는 이까지 멋있게 보인다. 더구나 인생을 고상하게 살아온 듯 보여 존경해마지 않게 된다.
일곱째, 눈에 거슬린다고 보는 대로 나무라지 말자.
버릇없고 예의 없다고 젊은이들에게 벌컥벌컥 화내선 안 된다. 우리도 젊었을 땐 그들처럼 버릇없었다.
여덟째, 여행을 많이 하자.
도보 여행이든 자전거 여행이든 여행은 낭만적이다. 세상을 조망하려 하지말고 내가 직접 열차 티켓을 사들고 열차의 식당칸에 앉아보자. 멋있는 추억은 멋있는 영화만큼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아홉째, 남에게 나누어 주자.
소중한 것일지라도 때를 보아 나를 기억할만한 주위 사람에게 나의 것을 넘겨주자. 결국 나의 것이 되지 못한다.
열째, 몸에 알맞은 운동을 하자.
몸은 운동을 하는 만큼 지금의 상태를 유지시켜준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 건강이야말로 내가 마지막까지 지켜야할 가장 절실한 나의 재산이다.
(교차로신문 2012년 12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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