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에서
이호우
진달래 사태진 골에
돌 돌 돌, 물 흐르는 소리.
제법 귀를 쫑긋
듣고 섰던 노루란 놈,
열쩍게 껑청 뛰달아
봄이 깜짝 놀란다.
진달래꽃은 철쭉꽃과 달리 먹을 수 있어 참꽃이라고도 부르지요. 봄이 오면 제일 처음 산기슭에는 참꽃이 피지요. 참꽃이 핀다해도 넉넉지 못한 산골집 아이들은 여전히 배가 고프지요. 배만 고픈가요. 땔나무가 떨어져 방도 얼음장처럼 차지요. 방이 추우면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갑니다. 어린 나도 아버지 일을 거들러 뒤따라갑니다.
아버지는 참꽃이 붉게 핀 골짜기에 지게를 벗어놓고 나무를 하고, 나는 참꽃을 따먹으러 참꽃을 따라 산속으로 숨어들지요. 그 얼마 뒤인가요. “영상아!” 산을 울리며 날아오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내 귀를 찡 울립니다.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 목소리에 그만 눈물이 핑 돕니다. 나는 참꽃 그늘에 서서 눈물을 참고 “여기 있어요!” 대답합니다.
참꽃 흐드러지게 핀 산엔 귀신이 있었거든요. 참꽃 귀신. 참꽃 귀신에 홀려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그때는 더러 있었지요. 배고픈 건 사람만이 아닙니다. 산중 노루도 배고프지요. 돌돌돌 풀려나는 산골물을 마신 노루란 놈 벌써 배부른 모양입니다. 산비탈 양지짝에 나와 껑청 껑청 다리에 힘을 올립니다. 성미가 급한 노루들 때문에 봄은 산골마을로 더욱 빨리 옵니다.
(소년 2014년 3월호 글, 권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