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려주는 동시이야기

봄날 아침

권영상 2013. 10. 28. 15:37

 

 

봄날 아침

최일환

 

 

간밤에 내린 봄비 중에

가장 고운 것만 골라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참새들은 가장 고운 빗방울을 골라

피아노 치듯 쫑쫑 쪼아댑니다.

 

아, 연초록 연초록 작은 입술이

나뭇가지 가지마다 벌어지고

즐거운 노래가 툭툭 튕겨 나옵니다.

 

 

이 좋은 봄날 아침

기쁜 일만 팔짝팔짝

뛰어다닙니다.

고운 노래만 훠르르 훨

날아다닙니다.

 

 

 

1월 1일의 아침은 여느 날과 다른 새 아침입니다. 동쪽에서 뜨는 해도 당연히 새로 뜨는 해지요. 새로 뜨는 해엔 사람을 능가하는 어떤 힘이 있지, 싶습니다.

“해 뜨기 전에 얼른 일어나라.”

1월 1일의 아침이 되면 아버지는 나를 일찍 깨우시지요. 함께 갈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집을 나섭니다. 요기 사랑채 밖 과수원을 지나면 철둑길이 있습니다. 거기에 올라서면 동해가 판하게 보입니다. 우리가 거기 올라서면 시뻘건 해도 때를 맞추어 푸른 바다를 치밀어 오릅니다.

 

 

“자, 봐라. 저게 새로 뜨는 새 해다. 해와 마주 서 보자.”

아버지는 어린 나를 이제 막 떠오르는 해와 마주 세웁니다. 그때 아버지 얼굴에 번쩍이던 햇빛을 나는 기억합니다. 아버지가 보셨다면 내 얼굴도 아버지 얼굴처럼 번쩍였을 겁니다.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는 아버지가 내게 해 주신 일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일이 그 일입니다. 1월 1일, 떠오르는 해 앞에 나를 반듯하게 세우는 일입니다. 왜 그러셨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요즘도 지칠 때면 길을 가다가도 해와 마주 섭니다. 그러면 몸이 타오를 듯 뜨거워지지요. 아버지는 1월 1일의 해 속에 아버지가 가르쳐주시지 못하는 큰 힘이 있다고 믿으신 모양입니다.

( 소년 2014년 1월호 글 권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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