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가장 못하겠어
권영상
화장실 샤워기가 샌다.
샤워기를 들어 올리면 물의 양이 적어져서 내뿜는 힘이 약하다. 그런 샤워기를 보면서도 고칠 생각을 미처 못했다.
“샤워기 안 고칠 거야?”
결국 아내가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그제야 나는 샤워기를 사러 철물가게에 갔다. 샤워기를 하나 샀다. 손에 들고 보니 걱정이 또 하나 있다. 낡은 샤워기를 교체하려면 접속 부위의 너트를 돌릴 스패너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 걱정하는 나를 보고, 손으로 그냥 돌리면 된다고 철물가게 주인이 일러주었다.
집에 와 손으로 암만 너트를 돌려봤지만 꿈쩍도 안 했다. 할 수 없이 사 온 샤워기를 욕조 안에 넣어두고 말았다. 근데 이튿날 퇴근을 하여 화장실에 들어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욕조에 넣어둔 샤워기가 교체되어 샤워기 꼭지에 매달려 있다. 아내의 손이 간 모양이었다.
“아니, 스패너도 없이 어떻게 너트를 돌렸지?”
내 말에 아내는 대수롭지 않은 말로 ‘뭐 스패너까지.’ 했다. 괜히 나는 머쓱해졌다. 내 손에도 안 돌아가던 너트를 아내는 무슨 힘으로 돌려 갈아 끼웠을까.
“더 이상 가장 노릇 못하겠어.”
시비도 아닌, 불평도 아닌, 그렇다고 농담도 아닌 말을 중얼거리며 나는 내 방에 가 앉았다. 아내는 더 이상 가타부타 대답이 없다. 대꾸없는 빈방에 혼자 앉아 있자니 더욱 민망했다. 말이 가장이지 글 씁네하고 가장 노릇 못한 지 오래 됐다. 그때가 언제일까. 어쩌면 딸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부터인 듯 하다.
어느 날, 아내는 아이가 갈 유치원을 혼자 정하고 집에 돌아왔다.
“당신이 알면 머리 아플 것 같아서 혼자 정했어.”
아내는 그 후부터 딸아이 공부 뒷바라지를 혼자하기 시작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딸아이의 친구관계는 물론 학교 숙제를 살폈고, 딸아이의 스트레스며 적성도 세심한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갔다. 아이가 중학교며 고등학교에 진학하기까지 나는 딸아이의 일을 아내만큼 모르고 지냈다. 그 무렵부터다.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면 나는 보험회사 보다 먼저 아내를 불렀고, 은행대출이며 적금 문제도 아내가 나서서 도맡아 했다. 뭔 일을 해도 나보다 아내는 빈틈없었고 똑 부러지게 마무리를 잘 했다. 아내와 나 사이의 역할은 그런 식으로 하여 여기까지 왔다. 이 정도면 이제 아내에게 가장을 물려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온라인 통장으로 내 월급이 들어가는 걸 모르던 딸아이가 언젠가 하던 말이 떠오른다.
“아빠는 돈도 못 벌어오고, 나 유치원도 안 데려다주고, 그러면서 큰소리만 치지!”
그때부터 나는 집안일에서 빠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허울만 좋은 가장이었다. 백화점에 따라가 내 옷 한 벌 고를 때도, 이사를 갈 건지 말 건지를 정할 때도, 외식 한번 할 일 역시 아내의 결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가장이 아니다. 그냥 아내가 챙겨주는 한 사람의 식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장을 내놓는다고 해 이제 내게 달라질 건 없다.
(교차로신문 2012년 10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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