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나는 이렇게 되살아 난다

권영상 2013. 11. 14. 19:38

 

 

나는 이렇게 되살아 난다
권영상

 

 

 

 

지지난 주 토요일, 주말농장에 배추와 무를 심었다. 배추와 무는 모종을 했고, 달랑무와 갓은 씨앗을 넣었다. 그러고도 남은 자리에 지난 주 토요일, 가을 상추 모종을 구해다 심고, 쪽파 스무 개를 심었다.

3평 밖에 안 되는 밭이지만 마음쓰는 건 3천평 농사를 짓는 이와 다를 게 없다. 장마지면 장마 걱정, 가물면 가뭄 걱정을 똑 같이 한다.

오늘은 김장밭 김을 매주러 갔다. 그 사이 배추잎이 애기손바닥만큼씩 컸다. 겨우 일 주일만에 한번씩 찾아주는데도 이렇게 잘 커준다. 대견하다. 배추벌레를 잡아주고, 호미로 김을 매어주고서야 일어섰다.

 

 

 

 

지난 주엔 상추와 쪽파를 심은 뒤 농장 주변 농가 울타리에서 피는 가을꽃을 휴대폰으로 찍었다. 하얀 취나물꽃이 야단스레 피었다. 옥잠도 피고, 채송화도 피었다. 빨강 노랑 하양 채송화가 눈을 어리도록 예뻤다. 줄무늬 메꽃이며 개망초도 빛깔이 산뜻했다. 뭐니뭐니 해도 도랑가에 핀 고만두꽃과 여뀌가 고향 친구를 만나듯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도랑에 놓인 나무다리를 건너면 해바라기가 고추밭머리에 시인처럼 서 있었다. 이들이 바로 우리 농가의 빈뜰이나 묵정밭을 향기롭게 가꾸는 꽃들이다.

반가운 마음에 작은 꽃이든 큰 꽃이든 일일이 다 찍어주었다. 하늘만 높고 파랗다고 가을이 아니다. 야산이나 들판에 숱한 세월을 이름없이 피고 지는 이 들꽃이 있기 때문에 또 가을이 되는 거다.

 

 

 

오늘도 나는 차를 몰아 주말농장을 빠져나왔다. 옛골을 거쳐 서울비행장에서 좌회전을 한다. 들꽃 한 송이 볼 수 없는 서울살이가 서러워 주말농장을 한지 7년째다. 말이 농사지 배추 16포기 무 12개 모종한 것이 전부다. 그러면서도 이 일을 해마다 하는 건 이유가 있다. 이렇게라도 도심을 벗어나오지 않으면 몇 달이 가도 흙 한 번 디뎌보지 못한다. 그 말고도 더 있다. 농장 주변의 농가 마을로 지나가는 사계를 보는 기쁨이 있다. 감자씨를 넣고, 파씨를 뿌리고, 메밀꽃이 피고, 보리장나무에 보리장열매 붉게 열리는 거라도 억지로 보며 살자는 뜻이 있다.

세곡동 네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양재역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헌인릉이 나온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는 여기 헌인릉 무료 주차장에 들러 FM을 편하게 듣는다. 씻김굿이거나 서도민요, 진도아리랑도 가슴 저리게 듣고, 수제천도 듣는다.

그러다간 차에서 나와 헌인릉 참나무 군락 곁의 잘 깔린 보도블럭에 눕는다. 오랜 장마 뒤라 방바닥보다 더 깨끗하다. 인적 드문 작살나무 그늘에 벌렁 누우면 가을하늘이 다 내 거다. 하늘이 커도 커도 저렇게 크고, 파래도 파래도 저렇게 파랄까.

 

 

 

 

그 하늘 동편에 뭉게뭉게 뭉게구름이 부풀어 오른다. 껑충 뛰어올라 덥썩 안기고 싶을 만큼 푸근하다. 뭉게구름을 맥없이 바라보다가도 그늘이 싫으면 뒹굴뒹굴 굴러서 따끈한 햇빛 속으로 나온다. 아무도 그런 날 나무랄 이 없다. 나는 맨땅이 좋아 맨땅에 뒹굴뒹굴 굴러본다. 내가 좋은지 개미들이 내 주변으로 기어든다. 그들과 어울려 뒹굴거리다 일어난다. 싫어도 집에 가야한다. 나는 남편이고 아버지다. 차에 올라 마지못해 시동을 건다.

 

 

집으로 오는 길에 관악산 쪽 하늘을 본다. 하얀 테이프를 세로로 툭툭 잘라붙인 듯 구름이 층층이 떠 있다. 어느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닮았다. 악셀레이터를 힘껏 밟는다. 한 주일 동안을 죽었던 내가 이렇게 되살아 돌아온다.

 (2012년 9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