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사치스런 사랑 풍경

권영상 2013. 10. 17. 10:31

사치스런 사랑 풍경

권영상

 

 

 

 

 

 

전철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맞은 편에 앉은 남녀의 사랑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가 몸을 틀어 옆에 앉은 남자의 가슴에 안겨 잠을 자고 있다. 좁은 자리다 보니 안긴 여자나 안고 있는 남자나 그 자세가 매우 어색하다. 여자를 어색하게 안은 남자는 부동의 자세다. 머리카락이 노랗다. 초록색 티셔츠에 반바지다.
그 품에 안겨 잠을 자는 건지 자는 척하는 건지 모를 여자는 얼굴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옷차림이다. 고등학교 교복이다. 흰 하복 블라우스에 회색치마다. 그러고 보면 사복을 입은 초록티셔츠도 남자 고등학생쯤 되겠다. 어색하게 안고 안겨 있는 그들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또 이제 막 사랑을 알아가는 어린 청춘들 같아 재미있기도 하다.

 


 

얼마 뒤 내 눈길이 다시 그들에게로 갔다.

초록티셔츠의 품에 안겼던 흰 블라우스가 깨어났다. 흰 블라우스는 안긴 채로 초록티셔츠의 턱을 어루만진다. 그러더니 코를 만지고, 귀를 꼬집더니 소리내어 깔깔깔 웃는다. 그걸 내려다보는 초록티셔츠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연실 흰 블라우스의 머리칼을 쓸어주거나 귀밑머리를 들어올려 귓등으로 넘겨준다. 초록티셔츠는 흰 블라우스가 행여 불편해할까봐 그러는지 여전히 부동의 자세로 앉은 채 손만 움직인다. 이번엔 흰 블라우스의 팔을 어루만진다. 블라우스는 그런 초록티셔츠가 마음에 드는지 그의 입술에 자신의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초록티셔츠가 그 손가락을 문다.

 

 

“이 후레자슥 놈들!”

경로석에서 천둥같은 소리가 날아왔다. 전철에 탄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말은 안 하지만 두 남녀의 맞은편에 앉은 우리들, 나처럼 눈을 똑똑히 뜨고 보지 않은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물론 이 광경과 무관히 가는 이들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놀라야할 그들만은 달랐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안겨 있는 그대로, 손가락을 입에 문 그대로, 그들의 사랑 행각을 꿋꿋이 진행해 가고 있었다. 흰 블라우스는 아까보다 더 바짝 초록티셔츠의 가슴에 달라붙어 그의 목을 감싸안는다. 그들의 포즈는 너무도 당당했다.

 

 

 

 

거의 영화에서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 수준이었다. 자신들 앞에 앉은 우리를 마치 관객 취급하는 듯 했다. 이 모습 어때? 멋있지 않어? 부럽지는 않고? 섹시해 보이지 않어? 뭐 그런 투로 더 적극적인 애정행각을 해보였다.
“저러니까 선생 말인들 듣겠어.”
좀전의 노인이 혀를 찼다.

체념이라도 했는지 목소리가 아까보다 한결 가라앉았다. 나도 그렇고, 거기 앉아있던 어른들, 서 있던 몇 몇 어른들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누구도 노인의 말에 호응하거나 가세하지도 못했다.

 

 

 

한참만에 두 학생이 일어났다.

전철이 서면 얼른 내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출입문에 기대더니 초록티셔츠가 흰 블라우스의 이마위에 턱을 얹더니 마주 껴안았다.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사람 같았다. 이번에는 앉아하는 연기 대신 서서 하는 연기를 보여줄 것 같은 태세다. 아니면 이 칸에 탄 사람들에게 어떤 시위를 하는 것도 같았다. 처음엔 그들의 사랑 모습이 풋풋하고 어설프지만 아름답게 보였는데 갈수록 내 생각도 바뀌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 그들이 내렸다. 나도 싱거워졌고, 전철 안도 갑자기 싱거워졌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 갓 들어온, 충주가 고향인 미혼의 여자 사서가 있다. 전철에서 보는 요즘 남녀들의 사랑 풍경을 이야기했더니 그도 놀랐다면서 치를 떨었다.
“서울 애들 너무 지나치다고 다들 그래요.”
그러면서 “사치를 부리는 것 같아요, 사랑 사치!” 했다.

하긴 그들도 고급 아파트에, 고급 외제 승용차에, 고가의 골프 회원권으로 사치를 과시하는 어른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어른들과 달리 얼굴이 곱상한 파트너를 고급외제 승용차쯤으로 여기고 과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어른들이 그러하듯 자신들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는 눈들이 전혀 부끄럽지가 않다. 오히려 당당하고 자랑스러울 뿐이다.

 

과시욕에 가득찬 우리 사회의 병적 증후를 이렇게 보는 듯해 씁쓸했다. 사랑도 사치행각쯤으로 여긴다면 사랑을 능가하는 획기적 사치품이 나오면 이런 사랑풍경도 사라질 테지, 하며 웃어본다.

 

(교차로신문 2012년 6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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