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네미 인물 참 좋구만
권영상
서울역 지하전철에서 내리면 마을버스를 타러 가야한다. 십여 분 거리다. 아침 출근길이 도통 바쁘다. 찾아간 느티나무 교목 밑에 학교로 가는 마을버스가 와 있다. 버스에 올랐다. 첫 출발지라 타는 이가 많아야 너댓 명이다. 버스가 출발해 두 번째 정류장에서 섰을 때다.
50대 후반의 퍼머머리를 한 아주머니가 올랐다. 다리가 아픈지 무릎을 잡고 올라와서는 바로 내 앞 의자에 ‘에쿠’ 하며 앉았다. 거기서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세 번째 정류장에서 버스는 또 멈추었다. 중학생 하나가 올라오더니 출입문 바로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 뒤를 이어 또 한 명의 키 작은 여자분이 올랐다.
“아니, 어딜 가려고 이 차에 올랐어?”
내 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그 여자분을 보고 소리쳤다.
방금 올라온 여자분이 이쪽을 보며 버스기사 뒷자리에 앉았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 같았다.
“우우우리 아들, 학교 데데데려다 주주러요. 그그근데 어어디를?”
여자분이 출입문 곁에 앉은 중학생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돌아다보는 자그만한 얼굴이 주름투성이다. 얼핏 보기에도 힘들게 세상을 사는 분 같았다. 말도 어눌하고, 좀 부실해 보였다.
“나야 일하러 가지. 근데 뭣 하러 중학생을 데려다 준대!”
아주머니가 건너편에 앉은 남자 중학생의 뒷모습을 보며 물었다. 나도 그분의 시선을 따라 그 학생을 보았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복이 아니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는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나도 웬만큼은 안다. 근데 아니다. 우리 학교까지는 여기서 불과 두 정류장이다. 그 두 정류장을 가자고 마을버스를 탈 리는 없다.
“아아아직 하하학교에 혼자 모모모못 가요. 우우우리 애 호혼자 머머먼데 떠떠떨어져서”
키 작은 여자분이 몸을 돌려 아주머니를 보았다. 그러면서 부끄러운 듯 수줍게 웃었다.
먼데 중학교라면 이 마을버스로 여섯 정류장을 더 가면 있다. 그 거리를 이 바쁜 시간에 엄마가 데려다 주다니! 지금이 5월 중순이니 중학교에 입학 한지도 벌써 석 달 째다. 암만 봐도 어딘가 좀 부실해 보이는 듯 했다. 학생은 자꾸 창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몸을 움추렸다.
“아들네미 인물이 참 좋구만!”
아주머니가 뜻밖에도 그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어딘지 좀 부실해 보이는구나, 그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였으니까. 근데 그런 때에 한 아주머니의 그 말은 내 뒷통수를 꿍, 치고도 남음이 있었다. 나보다 앞자리에 앉았으니 필경 나보다 그 학생을 더 잘 보았을 텐데도 아주머니는 그런 말을 불쑥 했다.
그 말을 들은 여자분의 얼굴에 자랑스러워하는 웃음빛이 피어올랐다. 창만 바라보던 학생도 이쪽, 즈이 엄마쪽으로 몇 번이나 얼굴을 돌렸다. 부끄러워하던 마음이 조금씩 풀려나는 모양이었다.
다시 보니 얼굴이 큼직하고 선해 보였다. 이제 두 정류장을 더 가면 나는 내린다. 그 두 정류장을 가는 동안 학생은 엄마에게 뭐라 말도 걸고, 손짓도 하고 그랬다.
나는 교문 앞에서 내렸다.
내리고도 떠나가는 마을버스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 아이는 오늘 그 낯모를 아주머니에게서 들은 ‘인물이 참 좋구만!’이라는 말을 평생 간직하며 살 지도 모른다. 삶이 힘들고 자신이 없을 때마다 자신의 존귀함을 지탱해가는 말로 삼을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이 아니다.
어떤 자리에서건 남에게 힘이 되는 노릇을 할 줄 아는 이가 어른이다. 남의 인생을 위해줄 줄 아는 그 아주머니의 나이가 부러웠다.
(교차로신문 2012년 5월 17일자)
'오동나무 연재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에 이런 분도 다 계십니다 (0) | 2013.10.17 |
---|---|
출근 안 하는 날 (0) | 2013.10.14 |
인생 (0) | 2013.10.07 |
유혹하는 사랑의 향기 (0) | 2013.10.07 |
소나무를 훔친 전과자 (0) | 2013.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