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권영상
인생 여행 중입니다.
인생이 이토록 긴 여행인 줄은 젊었을 땐 몰랐습니다. 그저 단순히 산을 오르거나 사막을 건너는 일쯤으로 알았습니다. 그랬기에 산과 사막에 대한 공부에 열중했지요. 이를테면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고 거기에 걸맞은 비용을 계산했댔지요.
인생이 뭔지도 모르면서 인생서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인생을 마치 고상한 패션쯤으로 생각했었지요. 그 어쭙지도 않은 인생에 대한 열풍이 한참 지나간 뒤입니다. 인생이 킬리만자로나 히말라야를 오르거나 사하라나 고비사막을 건너는 법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산과 사막은 이 지상에 있는한 명쾌한 길이 있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음을 깨달은 거지요. 아무리 좋은 지도가 있어도 그 길에 예기치 못한 변수가 수없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 길은 나를 살리기도 하고 뒤집어엎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날려버리기도 한다는 걸 알았지요. 그 무섭고 두려운 길을 나는 홀로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 무렵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잃어버린 나의 반쪽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나는 이 여행을 함께할 사랑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다들 기나긴 나의 인생 여행에 대한 제안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나의 항해능력을 크게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겐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추진력은 있으나 여행에 필요한 꼼꼼한 계획과 비용과 장비를 관리하는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그 무렵, 그 부족한 부분을 충분히 챙겨줄 내 반쪽의 동반자를 마침내 찾았습니다. 지금의 아내입니다. 나는 아내의 협력을 얻기 위해 무려 7년을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아내는 이 인생 여행에 동행할 뜻을 내비쳤습니다.
이 여행에는 후원자 있었습니다. 변함없이 지켜주신 부모님이시지요. 그분들은 자신이 가진 것의 가장 소중한 부분들을 우리를 위해 떼어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으로 출항할 배를 구했고, 장비와 식량과 물과 시련이 닥칠 때마다 읽을 책과 항로를 잃을 때를 대비하여 나침반을 준비했고, 우리의 운명에 관한 정보도 조사했습니다.
처음 우리는 이렇다할 해도도 없이 출항했습니다.
‘자식을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기 위하여’ 라는 좀은 진부한 꿈을 가지고 배를 띄웠지요. 그해가 1982년 11월. 우리는 겨울을 코앞에 두고 아득한 목적지를 향해 닻을 올렸습니다. 아직 인생을 살아본 경험보다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닥쳐올 추위도 풍랑도, 눈보라도 천둥과 번개도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우리 앞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망만이 가득했으니까요.
우리는 가혹한 세계를 모르는 나비처럼 당당했지요. 우정과 사랑과 신의와 높은 꿈과 아름다운 추억과 자유와 열정을 가득 싣고 떠났습니다. 초기 인생 여행은 매우 신비롭고, 아름답고 황홀했습니다. 항해 도중에 딸아이를 출산 했고, 먹고 입고 집 짓고 살기 위해 적금을 들고 깨고를 반복했지요.
그리고 불투명한 항로 문제로 셀 수 없이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웠지요. 우리 인생 여정의 8할이 먹고 입고 살고 싸우고였습니다. 몹시 중요한 일처럼 그 일을 지루하게 반복하였습니다. 너무나 아무것도 아닌 일에 인생을 걸다시피 하였지요.
앞서 간 이들의 말에 의하면 ‘그게 인생’이라 했고, 그 때문에 ‘사는 게 금방’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느라 사랑도 신의도 꿈도 추억도 우정도 버리고 살았습니다. 지금 내게 남은 것은 지친 영혼과 육신입니다. 잠깐! 내 손에서 뚝 떨어지는 그 무엇이 있군요. 집어들고 보니 구겨진 꿈이네요. 출항할 때와 달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의 상처투성이 꿈입니다.
거기엔 신의와 우정과 자유로움 대신 욕망과 집착만이 달라붙어 있습니다. 이제는 속도를 줄이고, 욕망을 지워내면서 첫 출항 시절의 부푼 꿈을 다시 생각해볼 때입니다.
(교차로신문 2012년 5월 3일자)
'오동나무 연재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근 안 하는 날 (0) | 2013.10.14 |
---|---|
아들네미 인물 참 좋구만 (0) | 2013.10.14 |
유혹하는 사랑의 향기 (0) | 2013.10.07 |
소나무를 훔친 전과자 (0) | 2013.10.03 |
아내에게 진작 좀 잘 할 걸 (0) | 2013.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