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를 훔친 전과자
권영상
내가 16살 때 일이다.
봄밤이었다. 아버지방에 군불을 넣고 온 둘째형이 나를 불렀다.
“이거 먹고 나랑 어디 좀 가자.”
형은 군불에 구운 달걀 두 개를 내밀었다.
신문을 적셔 달걀을 감싼 뒤 불속에 묻으면 맛있는 삶은 달걀이 된다.
“두 개 다?”
달걀이 귀하던 시절 내 앞에 내민 두 개의 달걀에 나는 적이 놀랐다.
형은 “응.” 했다.
나는 달걀을 받아 깨뜨렸다. 방금 구워온 거라 달걀에서 하얀 김이 설핏 올랐다. 영문도 모른 채 달걀을 입에 넣었다. 흰 자위를 깨문 이빨 끝에 단단한 노란 자위가 걸렸다. 그때의 그 담백한 달콤함이란! 내가 하나를 다 먹을 때쯤 형은 어쩌자고 남은 달걀 하나를 도로 형의 주머니에 넣었다.
“같이 가주면 이걸 마저 줄 테다.”
“어딜 갈 건데?”
나는 달걀 노른자위의 목 메이도록 달콤한 맛을 떠올리며 물었다.
“소나무 한 대를 베러.”
그 말에 나는 멈칫했다.
소나무를 벤다는 건 도둑질 중에서도 큰 도둑질이다. 그건 개나 돼지, 닭을 훔치는 일보다 더 나쁜 일이었다. 남의 집 소를 도둑질하는 것만큼의 중죄였다. 더구나 우리가 훔친다는 소나무는 서로 빤히 알고사는 댓골집 소나무다.
“형, 돌았어?”
내 말에 형이 타이르듯 나직하니 말했다.
그때 우리 집엔 암탉들이 키워낸 병아리 스무 마리가 있었다. 그게 벌써 중병아리가 되었다. 형은 그들을 키울 넓은 닭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서까래 감이야 이런 저런 나무로 하면 되지만 대들보가 문제였다.
산이라고 없는 평지에 살고 보면 대들보감이 있을 리 없었다. 있다면 그것은 오직 댓골집 솔밭밖에 없었다. 거기엔 7,80년생 소나무도 많았고, 10년 20년생 어린 소나무도 많았다. 형은 그 어린 나무 중에 한 대를 베어올 생각이었다. 스물두세 살 된 형에겐 그런 대범함이 있었다.
나는 형의 주머니에 들어간 달걀을 포기할 수 없었다.
밤이 깊을 때를 기다려 나는 두툼히 옷을 입고, 톱을 움켜쥔 형의 뒤를 따랐다. 솔밭에 숨어든 형은 알맞은 소나무 밑둥이에 톱을 댔다. 형의 톱질소리가 내 가슴을 쿵쿵쿵 울렸다. 나는 망을 본답시고 두리번거렸지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들고 싶었다.
그 얼마 후, 소나무가 휘이익 소리를 내며 쾅, 쓰러졌다. 나는 두 눈을 감고 주저앉아 ‘하느님,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고 빌었다. 그러나 형은 그런 나와는 아랑곳없이 대들보감을 자르고, 우듬지는 끌어다 구렁에 버렸다. 형과 나는 나무둥치를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와 불을 켜고 보니 형은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그 이튿날, 아침을 먹고 마당에 나왔을 때다.
“너희 둘이 간밤에 남의 집 소나무를 벴지!”
순경이 자전거를 타고 들이닥쳤다.
아버지도 모르시는 일이었다. 신고가 들어왔다는 순경은 이런저런 조사를 한 후 가버렸다. 소나무 주인이 신고를 하였는지 아닌지, 콩밥을 먹이라 일렀는지 아닌지......
답답하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 둘째형은 그걸로 닭장을 지었고, 닭은 몰라보게 잘 컸다.
법 없이 살아갈 만큼 착한 형이 대관절 그때 어떤 배짱으로 소나무 베어올 생각을 했을까. 나는 지금도 식목일을 맞을 때면 마음의 빚에 떤다. 소나무를 훔친 전과자라는.
(교차로신문 2012년 4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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