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아내에게 진작 좀 잘 할 걸

권영상 2013. 10. 3. 11:02

아내에게 진작 좀 잘 할 걸

권영상

 

 

 

 

 

아내와 30년을 살았습니다. 벌써 그렇게 됐습니다. 처음 아내는 소녀같이 예뻤지요. 살 빛깔은 하얗고, 눈은 크고 쌍까풀이 졌지요. 키는 좀 작았지만 저는 키 큰 여자보다 작은 여자가 좋았답니다. 아내는 꿈도 크고 음식솜씨도 좋고 통기타도 잘 쳤습니다. 대학 시절 아내는 돈을 아끼려고 자취도 하고, 아이들 개인지도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는 술이나 먹고, 허허거리며 놀기나 좋아했지요. 대학을 마치자, 아내는 발령을 받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무렵 결혼을 하자며 아내에게 매달렸지요. 대답을 선뜻 못하는 아내를 꼬드기고 꼬드겨 간신히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세곡동에 눈꼽만한 신혼방을 얻어 소꿉놀이 살림을 시작했지요. 아내는 딸아이를 낳고, 직장에 나가고, 아이 공부를 돌보았습니다. 물론 저도 직장에 나가 밥벌이를 했고 글까지 쓴답시고 집안일을 등한히 하였습니다.


 

 

그러느라 싸움도 많이 했네요. 왜냐 하면 말이지요. 아내는 도회지에서 태어났고, 저는 시골 농가에서 태어났지요. 아내는 좀 개방된 집안에서 컸고, 저는 골통 보수 집안에서 자랐지요. 아내는 아홉 남매의 여섯째라 깐깐했고, 저는 육남매의 철없는 막내라 현실감이 전무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너무도 당연히 싸우며 살았지요. 잘 싸우기 위해 주로 당신은 왜 그래? 당신 부모님은 또 왜 그러시고? 당신 집안은 또 왜 그 모양이야? 이런 방식으로 분노를 자극했지요. 부부싸움도 싸움이니까 싸움을 해도 저는 꼭 이기려고만 했지요.
그러는 중에도 아내는 그림 전시회를 여러 차례 하였고, 저는 꽤 많은 책을 냈고, 그 사이 집을 갖게 되었고, 딸아이의 대학도 끝났고, 벌써 은퇴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생도 치열한 부부싸움 덕분에 시간가는 줄 몰랐군요.


 

 

그런데 싸움을 많이 해 그런지 작년 여름 이후부터 자꾸 몸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우선, 어금니에 끼워넣고 살아온 틀니가 털썩, 빠졌습니다. 제가 그러고 나니 아내의 치아도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나자, 이번에는 아내가 교통사고를 쿵, 하고 당했습니다. 허리를 다쳤습니다. 이번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제게 허리디스크가 에쿠나, 하고 찾아왔습니다. 참 야속한 일입니다. 벌써 석 달째 오른쪽 다리에 통증과 저림현상이 오고 있습니다. 제가 그 일에 시달리고 있을 때 이번에는 아내의 오른쪽 안구에 덜컥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물의 부분 부분이 뻥뻥 뚫려 보이는 결막황반 현상이라 합니다. 사흘 전에 대학병원에 가 주사시술을 받고 왔습니다.

 

 

 

“무릎 좀 주물러줘!”

아내가 무릎이 시린 모양입니다. 아내는 세탁과 식사를 도맡아했지요. 딸아이 공부를 시키느라 여러 개의 통장을 돌려막으며 살아 왔으니 무릎이 아프고 시린 건 당연할 테지요.
‘젊었을 때 좀 잘 해 줄 걸!’
싸울 때 좀 져주고, 힘들여 집안 일 할 때 좀 도와주고, 좀 사근사근하고, 좀 부드럽고, 좀 말랑말랑했더라면 아내는 옛날의 그 소녀같은 모습을 유지했을 텐데 말이지요.

 

 

 

온라인 커뮤티니 게시판에서 ‘남녀가 가장 많이 후회하는 일’을 읽었습니다. 5.60대 남자들은 주로 ‘젊었을 때 아내에게 잘 해 줄 걸’이라는 대답을 했고, 여자들은 ‘지금의 남편과 괜히 결혼했다’였습니다.

꼬드겨서 결혼해 놓고 고생만 시켰습니다.

“당신하고 결혼한 게 최대의 실수였어!”

언젠가 아내가 싸움 끝에 그 말을 했지요. 그때 제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여자들도 그런 후회를 한다니 염치없긴 하지만 조금 안정이 되네요.

(교차로신문 2012년 3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