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고속도로 휴게소를 지나치며

권영상 2013. 10. 22. 10:07

 

고속도로 휴게소를 지나치며

권영상

 

 

 

 

 

 

고향에 혼사가 있어 토요일 아침 일찍 내려갔다. 대학 친구가 아들을 장가보내는 날이다. 혼사는 점심시간에 알맞게 오후 1시에 있었다.
“서울엔 일요일인 내일 올라가고 오늘은 우리 집에 가 술 한 잔하자.”
혼사를 마친 친구가 내 손을 잡았다.
“얼른 올라가야지. 지금 가면 고속도로도 안 막힐 때야.”
나는 고속도로 핑계를 대며 손을 뺐다. 고향에 갈 때마다 수없이 이 핑계를 대며 서울로 돌아왔다. 주말이면 고속도로 정체가 심각하긴 하다. 괴롭다못해 짜증난다. 그건 분명하다. 그러나 다음 날이 여유가 있는 일요일인데도 나는 늘 고속도로 타령이다.


 

 

점심을 먹고나자, 뜻한 대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들어섰다. 대관령을 넘으며 못이기는 척하고 하루 머물렀다 내일 올 걸 하는 생각을 했다. 내려갈 때마다 혼자 하는 말이 있다.

“강릉 가면 좀 쉬었다 와야지.”

그 말이다. 소나무 숲을 좀 거닐고, 고향 친구들과 사는 이야기도 좀 하고, 술도 편안히 앉아 한잔 하고 올 생각을 한다. 그러고도 내려가면 늘 허겁지겁 되돌아선다. 고향 바다조차 못 들여다 보고 그냥 온다. 청록빛에 가까운 강릉의 봄바다. 지척에 그 바다를 두고 그냥 돌아오는 내가 때론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급기야 횡성휴게소 표지판이 나타났다. 쉬고 싶다. 커피도 한잔 마시고, 또 별 인사도 못 드리고 온 형수님한테 전화도 좀 드려야지 싶었다. 아내한테도 전화를 좀 해봐야겠고. 그런 생각을 하며 가는 내 눈에 횡성휴게소 진입로가 나왔다.
‘잘 달리고 있는데 다음 휴게소까지 가 볼까.’

속도가 한창 붙은 차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질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냥 휴게소를 지나쳤다. 사막을 여행할 때는 오아시스마다 쉬어가는 게 좋다는 말이 있다. 아침에 서울에서 떠나와 예식만 보고 되집어 올라가는 길이니 나의 내면 어느 구석은 지금 피로하다. 그런 의미에서도 마른 몸을 좀 적셔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자동차 정체를 핑계로 지나쳐가는 데는 사실 다른 뜻이 있다. 쉬어서는 안 된다는, 시간낭비라는 나쁜 생각. 내 몸에는 나를 혹사시키는 그 누군가가 있다. 그는 들꽃도 좀 보고, 별도 좀 보고, 논둑길도 좀 걷고 싶어하는 나의 생각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원주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강릉에서 원주까지 한 시간 반. 막힘없이 잘 달려왔다. 원주를 지나면 중앙고속도로와 합류하게 되어 그때부터 막힌다. 그런데 원주를 지나도 막히지 않는다.
액셀레이터를 밟는다. 차가 120킬로로 달린다. 나는 다음 휴게소를 벼르며 달렸다. 좀 일찍 출발해서인지 문막휴게소가 가까워 오는데도 그리 밀리지 않는다. 나처럼 횡성휴게소를 지나쳐온 사람들 때문인지 문막휴게소로 들어가는 입구에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걸 보자 내 생각이 또 바뀌었다.

 

 

 

“쉬려면 덕평휴게소가 좋지.”

나는 그렇게 나를 속이며 문막휴게소를 보기좋게 지나쳤다. 내가 다시 덕평휴게소쯤에 갔을 때다. ‘얼른 집에 가서 편하게 쉬자.’ 그 생각이 또 나를 길 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막았다. 나는 기어이 휴게소 한 번 들르지 않고 주파하여 3시간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내가 하는 일이란 다 이렇다.
달리는 일에만 집착한다. 고속도로를 잠시 비키면 시골길을 산책하거나 하룻밤 쉬고 돌아오는 여유를 부려볼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마다한다. 나는 나의 인생을 질주하듯 아슬아슬 달려왔다. 그래서 삶의 깊은 맛을 아직 잘 모른다.

 

(교차로신문 2012년 7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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