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낡은 시계
권영상
창밖에 비가 내린다.
7월로 접어들었으니 장마철일지도 모르겠다. 2교시 수업 없는 시간. 창밖에서 비를 맞고 선 단풍나무를 무연히 바라보고 있을 때다. 이웃한 음악실에서 피아노 소리와 함께 아이들 노래가 들려온다.
“낡은 마루의 키다리 시계는
할아버지의 옛날 시계.
할아버지 태어나시던 아침에
우리 가족이 되었다네.”
음악실에서 복도로 흘러나온 노래가 빈 복도를 울리며 내 방까지 밀려온다. 헨리 클레이 워크가 만든 미국 동요다. 어딘가에 잠겨있던 먼 과거가 아련하게 깨어난다. 할아버지의 시계는 할아버지께서 태어나던 아침에 우리 집에 처음 왔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날부터 고장이 나 멈추고 말았다. 할아버지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한 보물처럼 아끼던 시계,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네. 그런 가사다.
아버지도 괘종시계를 좋아하셨다. 오직 묵묵히 일만 아시는 분이라 집안에 편리한 물건 하나 없었다. 그 흔한 자전거도, 손수레도 없었다. 먼데 있는 논엔 힘들어도 자전거 대신 걸어다니셨고, 손수레 대신 오래 써오시던 우차를 그대로 쓰셨다.
그런데 딱 하나 문명의 이기가 있었다면 괘종시계다.
괘종시계는 아버지가 거처하시는 사랑방에 걸려 있었다. 아버지의 제일 첫 일과는 시계추 아랫칸에 있는 키를 꺼내어 뚜르르뚜르르 시계 ‘밥’을 주시는 일이었다. 새벽 일을 나가실 때도 그 ‘밥’을 주고 가셨고, 몸져 누워계실 때도 일어나 손수 그 '밥'을 주셨다. 그 일은 아버지의 일이어서 우리들은 시계추를 한 번씩 건들어볼 뿐이었다. 행여 태엽을 감아놓으면 아버지는 “누가 시계를 건들었구나!” 하며 야단을 치셨다.
아버지가 주무시는 방은 외로운 사랑방이었다. 아버지는 거기에서 괘종시계와 함께 사셨다. 아버지에게 시계는 아버지의 아내이신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한창 나이셨을 때부터 10여 년이 넘도록 입원 생활을 하셨다. 그런 연유로 아버지는 긴긴 밤을 사랑방에서 시계와 단 둘이 외로이 사셨다.
추운 겨울밤이면 사랑방에서 시계 치는 소리가 울렸다. 딩, 딩, 딩...... 12번의 시계치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아버지가 거기 계심을 느꼈다. 아버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밤을 울리는 시계치는 소리로 아버지를 걱정했다. 춥지는 않으실까? 이불이 얇지는 않으실까? 그러며 다시 잠에 들곤 했다.
그런 다음날도 아침이면 아버지는 일과처럼 시계 밥을 주셨다. 다 풀린 시계의 태엽을 다시 감으면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쩌면 잦아드는 어머니의 목숨을 태엽을 다시 감듯 연장해달라고 기원하셨던 건 아닐까. 뚝딱뚝딱 시계가 가는 것, 그것은 병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골 사랑방에서 들을 수 있는 어머니의 심장소리라 여기셨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그러시면서 10여 년의 세월을 견디셨다.
“누가 또 시계를 건들었구나!”
우리가 태엽을 몰래 감을 때마다 야단치셨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기적적으로 어머니를 살리신 뒤 아버지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가시고 말았다. 사랑방에 걸려있던 괘종시계도 아버지와 함께 사라졌다.
“언제나 정다운 소리 들려주던
할아버지의 옛날 시계.
하지만 지금은 가질 않네.
이젠 더 이상 가질 않네.”
아이들의 합창소리가 먼 과거에 가 있는 나를 깨운다.
(교차로신문 2012년 7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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