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나는 아직도 해피엔딩이 좋다

권영상 2013. 8. 22. 09:45

 

 

나는 아직도 해피엔딩이 좋다

권영상

 

 

 

 

텔레비전 프로 중에 ‘인간극장’이 있다. 인간극장이 무슨 요일에 나오는지, 어떤 채널에서 나오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주말 오후인가에 재방송이 있다는 건 안다. 대략 3부작이거나 길면 5부작들이다. 5부라면 방영시간만도 세 시간은 넘는다. 토요일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인간극장'을 만나면 그걸 다 본다. 재미있다.

 

저번엔 ‘감나무골 7남매’가 나왔다. 고흥, 어느 시골집 젊은 부부가 7남매를 낳아 기르는 이야기다. 제일 맏이와 막내가 15살과 4살짜리 딸이다. 그리고 그 사이의 ‘아이들’ 다섯 모두 아들이다. 중풍으로 고생하는 늙은 시아버지까지 있다. 아버지가 독자라 외로워하시는 걸 보고 서슴없이 일곱을 낳았단다. 소도 기르고, 당나귀도 기르고, 감나무도 키우며 그 많은 가정 일을 힘들여 꾸려간다. 요즘처럼 자식 키우기 어려운 때에 아들딸 일곱을 낳아 키운다? 처음엔 참 어처구니 없는 부부구나 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을 키워내는 걸 보자, 나는 그들이 부러워졌다. 아이들이 연년생이라 사랑이 부족해 병치레가 잦다. 때로는 크레파스를 집어먹어 병원에 가고, 방과후 공부를 빼먹고 온 아들에게 회초리를 대기도 한다. 사람 많은 백화점에선 똑똑하지 못한 자식을 잃어버려 소동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아이들 키우는 일이 아니냐는 젊은 아버지의 말이 요즘 보기 힘든 아버지다운 말로 들린다. 
“오늘도 제발 좋은 소리만 듣기를!”
우루루 학교로 달려나가는 아이들을 향해 아기를 등에 업은 엄마는 기도한다. 그 모습이 고달파 보이기는 해도 믿음직스럽고 멋있어 보인다.

 

 

지금은 말썽을 부려도 올바른 아이들로 커갈 것을 믿기에 나마저 희망에 부푼다. 그 잘 날 것도 없는 인물들에, 똑별날 것도 없는 밋밋한 사건들인데도 그렇다. 그것은 ‘인간극장’이 행복하게 끝날 것이라는 뻔한 결말을 알기 때문이다.

아내도 나처럼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텔레비전이라면 뉴스도 안 보지만 ‘인간극장’ 5부작은 볼 때면  볼 때마다 다 본다.

언젠가는 빈병을 모아 팔아 생계를 잇는 삼척의 한 젊은 부부가 나왔었다. 남편은 호남이 고향인데 아내의 고향에 와 힘들게 사는 이야기였다. 그런 심심한 이야기임에도 5부까지 볼 수 있었던 건 억척같은 여자와 그의 일을 즐겁게 따라하는 남편 때문이다.

그들은 바닷가를 데이트 하다가도 모래속에 묻힌 병을 보면 꺼내어 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카메라가 따라가는 데도 그들은 그들의 삶에 너무나 솔직하다. 병석에 누운 아버지의 병수발도 행복해하고, 남편이 함께 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한다. 남들 보다 덜 갖고도 부부는 행복하다. 그런 이야기라면 그 결말도 뻔하다. 행복이다.

 

인간극장에는 심각한 질병에 걸렸거나 심각한 극빈의 삶도 나온다. 그래도 종국엔 병원에 데려가 질병의 완쾌를 돕고, 극빈한 삶의 위기에서 건져준다는 걸 나는 안다. 그런 탓에 결말에 대한 두려움에 떨 이유가 없다. 지금은 힘들어도 5부가 끝날 때쯤이면 그 수렁에서 헤어나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안방 드라마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정이 파탄나는 부도덕한 드라마여서가 아니라 비극적으로 끝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내 문화 감각은 아직도 어머니 무릎을 베고 듣던 ‘....그래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옛날 이야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나의 인생이 좀 힘들다 해도 나는 내 인생의 결말이 행복하리라 믿는다. 지금 겪고 있는 이 난관들이 행복한 결말을 향해 가는 고난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처구니 없는 궤변같아도 나는 오랫동안 이런 해피엔딩을 믿어왔다. 그래서 나는 좀 힘들어도 지금 행복할 수 있다. 

(교차로신문 2011년 6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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