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누님이 보낸 택배

권영상 2013. 8. 15. 06:44

 

누님이 보낸 택배

권영상

 

 

 

 

추석이 가까워 오는 날이었다. 누님이 집으로 택배를 보내왔다. 누님은 속초에 계신다. 매형이 공직에 계시다 퇴직을 하신지 10여년이 넘는다. 생질들은 모두 출가해 자식들을 두었다. 그런 누님이 나이 많은 동생에게 택배를 보내왔다. 나는 택배 상자에 붙은 누님의 이름을 여러 차례 확인하고 전화번호도 확인했다. 누님, 누님했지 이름을 불러본지 오래 된 그 어린 시절의 누님의 이름이 거기에 적혀 있었다. 글을 쓸 일이 별로 없는 탓에 누님의 글씨는 써 본지 오래된 글씨체였다. 이미 일흔이 가까운 누님의 이름을 입속으로 한번 불러보자니 까닭모를 육친의 정이 울컥 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조심스럽게 누님의 손길이 다치지 않도록 가위로 택배상자를 열었다. 햇고추를 따서 만든 고춧가루 한 봉지와 참기름 한 병, 북어 열 마리, 잘 말린 미역 한 묶음이 나왔다. 이 많은 것을 누님이 보내셨다. 누님 계신 동해안 속초의 바다 향기가 은은히 배어나왔다. 누님은 힘이 좋아 큰농사를 짓는 분도 아니고 바다를 가까이 하는 분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는 데가 바다 가까운 곳이라고 북어며, 미역, 때로는 반쯤 말린 이면수며 명란, 오징어를 보내오곤 했다.

 

 

가까운 날에 추석이 다가오고 있음을 누님은 느꼈다. 그 느낌이란 뭘까.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셨다는 것, 추석을 쇠러 내가 고향에 내려간다 해도 여느 해처럼 어머니의 손길을 느낄 수 없을 거라는 점. 그 탓에 아마도 내가 세상살이의 허전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그 쓸쓸함을, 누님은 어쩌면 그걸 미리 생각했을지 모른다.

 

 

 

종가에 시집을 갔으니 명절 준비를 하면서 그 사이에 잠깐잠깐 나를 생각했겠지. 그 생각을 하며 아내와 나는 상자 속에 채곡채곡 담긴 것들을 마치 소중한 보석을 대하듯 하나하나 방바닥에 꺼내놓았다. 누님이 이것들을 구해 이 상자 안에 하나하나 넣기까지 걸린 시간과 마음을 짐작해 본다. 퇴직하신지 오래된 뒤라 덥석덥석 물건을 사서 보낼 만큼 여유가 넉넉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또 일었다.

 

 

전날, 전화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너를 잊지 않고 있다는 누나 마음의 표시다.”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은 살아볼수록 요원히 떠오르는 것이 형제간의 그리움인 것 같다는 말로 들렸다. 그런 누님 마음의 표시가 이렇게 많고 컸다. 누님이 살고 있는 속초에는 누님의 텃밭이 하나 있다. 울담장 안에 있는 거니까 그게 그리 크지도 않다. 4월에 듣기로 거기에 고춧모종 좀 하고, 시에서 분양하는 주말농장에 재미삼아 고춧모를 심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 지금 보낸 이 고춧가루는 텃밭이나 주말농장에서 그간에 딴 붉은 햇고추로 만든 것이다. 그것을 이렇게 앉아 받는다는 게 미안하다.

 

 

아내는 펼쳐놓은 물건들을 내려다보며 누님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어머니 계실 때 명절에 가면 어머니는 어머니 손으로 주실 수 있는 것들을 챙겨주셨다. 올벼를 베어 찧은 햅쌀, 강낭콩, 참기름, 감자, 말려둔 쑥이며 익모초 등 어머니는 깨끗한 가을볕에 공들여 말린 햇것들을 조금씩 만들어 주셨다.
누님과 통화를 마친 아내가 수화기를 놓으며 말했다.
“부끄러운 것들만 보내 미안하다며 오히려 형님이 애를 태우시네.”
아내와 나는 방바닥에 벌여놓은 것들을 챙겼다. 그러면서 뭘로 갚아드려야 하냐며 걱정 아닌 걱정이었다.

 

 

 

벌써 지난 추석 무렵의 일이다. 누님은 그 후로도 이것저것을 택배로 보내신다. 부모님 안 계시는 이 지상에서 누님은 어머니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싶다.

(교차로신문 2011년 5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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