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옷을 입는 기쁨
권영상
수업을 마치고 야유회를 가는 토요일이었다.
20대처럼 눈에 띄는 옷을 입고 출근한 이가 있었다. 청바지에 분홍빛 셔츠와 초록색 조끼를 입고 왔다. 너무 나이에 맞지 않는, 뭐랄까? 아이들 말로 하자만 ‘갑툭튀’ 같은 옷차림이다. 희끗희끗한 반 백의 머리칼에 분홍색 셔츠라니!
“한 이십 년은 젊어 보여.”
그래도 나는 그의, 분홍 셔츠 위에 입은 초록색 조끼를 어루만지며 한 마디해 주었다.
계면쩍은 웃음을 보이던 그가 “아들 옷이야.” 그랬다.
“아들이 군에 가 있는데, 그 녀석이 입다 둔 옷을 입고 왔어.”
순간 그의 얼굴이 분홍 셔츠 빛으로 물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아들이 작년 겨울에 군에 입대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음대에 다니다 입대했는데 연천 어디쯤에서 근무를 한다고 했다.
“뭐 어때! 자식 옷인데, 하고 입었는데 좀 요란하지?”
그가 두 손으로 마치 자식의 등허리를 쓰다듬듯 제 옷의 앞섶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자식의 옷을 입은 그의 옷차림이 달리 보였다.
“그러고 보니 명품 중의 명품이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나는 그렇게 웃어주며 돌아섰다.
오늘 아침, 그러니까 그는 군에 간 아들의 옷을 입고 출근을 했던 거다. 나는 자식의 옷을 입고 사람들을 헤치며 출근한 그의 자부심을 떠올렸다. 그 나이에 좀 안 맞는 옷일지라도 그는 그 옷에서 뿌듯한 아버지를 느꼈을 거다.
아버지에게 장성한 자식이란 얼마나 뿌듯한 존재인가. 자신의 청춘과 자신의 열정을 다 바쳐 키워낸 결실이 자식이 아닌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분신이 아들이다. 조선조의 어머니들은 외간 남자들 앞에서도 부끄럽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히 가슴을 내놓고 자식에게 젖을 먹였다. ‘나는 아들을 낳은 여자’라는 위세가 있었다. 유교 사회인 조선에서 아들이란 어머니의 자부심이며 존재 이유다. 분홍셔츠에 초록 조끼를 입고 출근한 동료의 마음 한 모퉁이에도 부끄러움 대신 그런 자부심이 있었을 것 같았다.
나도 가끔은 딸아이의 티셔츠를 입는다.
멀리 유학 중인 딸을 느낄 수 있는 건 그가 두고 간, 이제는 못 입는, 한물간 옷이다. 언젠가 아내가 딸아이 옷장을 정리하며 내놓은 옷에서 나는 티셔츠 몇 장을 골라 들었다.
“사내애 옷이라면 몰라도 딸애 옷을 입으려고?”
내 손을 막던 아내가 ‘좋으면 입어 보든지. 아깝긴 하네.’ 그러며 몇 장 더 내놓았다. 좀 작기는 해도 집에서 입거나 막일을 할 때면 지금도 입는다.
흔하고 흔한 게 옷인데 색상도 안 맞고, 배꼽이 나올 정도로 달랑한 딸아이 옷이 뭐 좋을 게 있겠는가. 그런데도 자식의 옷을 입는다는 게 흐뭇하다. 그건 아버지인 내가 입을 만큼 자식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자식의 옷을 입을 때마다 자식에게 나를 의탁해도 되겠다는 뿌듯함이 인다. 마치 집 한 채를 얻은 것 같이, 마치 열 마지기 땅을 얻은 것 같이 든든해진다. 그것은 나만의 과장이 아니다.
예전, 고향의 아버지도 내가 벗어놓은 점퍼를 슬쩍 입어 보시며 “딱 맞구나.” 하시던 기억이 난다. 내 덩치가 커 아버지 몸에 헐렁했는데도 아버지는 그러셨다. 자식이 그만큼 커준데 대한 만족감의 표현이셨을 테다. 세상에는 좋은 옷도 많다. 그러나 자식이 물려준 옷만한 옷이 또 있을까. 색상과 크기가 전혀 맞지 않아도 그 옷이 명품 중의 명품이지 싶다.
(교차로신문 2011년 6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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