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엄성기
먹구름 천둥 싣고
마구 달려오더니
소나기가
시원스럽다.
누나는
빨래 거두어들이기
한창인데
싸악
구름 걷히고
해가 반짝 났다.
싱싱한
맑은 잎에선
푸른 빗방울이
또옥
똑.
소나기가 주고 간
무지개가
고웁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입니다.
들판 끝 검정구름 한 장이 이쪽으로 마구 달려옵니다. 장거리를 뛰는 마라톤 선수들처럼 먼지를 일으키며 옵니다. 구름장인가 했는데 아니네요. 마라톤 선수인가 했는데 아니네요. 허리를 바짝 펴고 꼿꼿이 달려오는 소낙비입니다.
“과과과과과과과과…….”
어디선가 숨넘어갈 듯 청개구리가 웁니다.
그 소리에 길 가던 아저씨 한 분이 맥고모자를 눌러쓰고 뛰네요. 도랑둑에서 놀던 아이들이 신발짝으로 머리를 가리고 달아나네요. 뉘 집 개인지 꽁지를 말아올리고 냅다 뜁니다. 흙냄새를 풍기며 달려오던 소나기가 이내 코앞 무논에 텀벙텀벙 들어섭니다.
나는 머리에 토란잎을 꺾어 쓰고 납죽 주저앉았지요. 소나기가 짓궂은 주먹잡이처럼 토란잎을 두드리며 내 머리 위로 달려갑니다. 나는 질끈 눈을 감습니다.
“무지개다!”
이윽고 누가 소리치네요. 슬그머니 일어서 봅니다. 언제 비 왔냐는 듯 하늘이 멀개졌습니다. 저것 보아요. 동쪽 하늘에 활처럼 커다란 무지개가 찍혔어요.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 무지개가.
나는 토란잎을 내던지고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보송보송한 길을 다시 갑니다.
(소년 2013년 9월호 글 권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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