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려주는 동시이야기

의자 7

권영상 2013. 4. 28. 06:59

 

 

 

 

 

의자 7

조 병 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지금도 시골집엔 책상이 하나 있지요. 작은 앉은뱅이책상입니다. 형이 다섯 살 되던 해에 아버지께서 동네 소목장이에게 부탁해 만들었다는 책상입니다. 형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그 책상은 형의 책상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치자, 이번엔 누나들이 그 책상을 물려받았습니다. 누나들이 또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입니다.

“막내에게 물려주렴.”

아버지 말씀에 따라 그 책상은 내게로 왔습니다.

형과 누나 둘을 거쳐 내게로 온 책상은 엎질러진 잉크투성이었지요. 그때는 잉크로 글씨를 쓰기도 했지요. 그런 까닭에 파랗고 빨간 잉크 자국과 먹물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지요. 그래도 잘 닦아놓아 코를 대면 들기름 냄새도 나고, 양초 냄새도 났지요. 나는 그 앉은뱅이책상 앞에 꿇어앉아 중학생이 될 때까지 공부를 하였지요.

그러나 막내인 나 이후로는 그 책상을 물려받을 어린아이가 없었습니다.

언젠가 시골집에 갔더니, 놀러온 이웃집 아기가 그 책상 앞에 앉아 글씨 공부하였습니다. 그때 책상은 얼마나 좋았을까요? 매일 매일 그 아기가 놀러오길 기다렸을 테지요. 그 아기를 위해 어머니는 책상 위를 또 깨끗이 비워두셨을 테고요. (소년 2013년 7월호 글, 권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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