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방솔나무에 대한 추억

권영상 2013. 6. 18. 14:41

 

 

방솔나무에 대한 추억

권영상

 

 

 

고향 뒤뜰 호숫가에 방솔나무가 있다.

서너 아름은 되는 소나무다. 동네 수많은 나무들 중 그만큼 큰 나무는 없다. 우리 또래 중엔 나무타기를 잘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름하여 다람쥐들이다. 다람쥐들은 이 세상 나무를 다 탔다고 뻥을 쳤지만 방솔나무만은 오르지 못했다. 너무 컸기 때문이다.

 

 


심심하면 우리들은 방솔나무 그늘에 가 놀았다. 그늘은 굉장히 넓었다. 얼마나 넓었던지 발걸음으로 그 둘레를 잴 수조차 없다. 발걸음 수가 너무 많아 자꾸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방솔나무 밑에서 위를 쳐다보면 가지와 가지 사이가 촘촘했다. 촘촘히 얽히고 설켜 있어 햇빛 한톨 샐 틈 없어 보였다. 그러니 어디에 가 누워도 햇빛에 눈부셔할 일이 없었다고 했다. 더구나 사통팔달인 독립수라 바람은 사방에서 솨솨 불어온댔다.

그 그늘에 팔을 베고 누울 때마다 욕심이 일었다. 방솔나무에 올라가 보고 싶다는. 방솔나무가 주는 그늘만으로도 시원하기는 충분했다. 더운 여름을 나는데 방솔나무 그늘만한 선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터무니 없는 욕심을 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어른들 중의 누군가가 거기에 그네를 매어 놓았다. 우리는 그네에 매달려 실컷 그네를 탔다. 그네만큼 재미있고 신나는 놀이는 없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지나자 시들해졌다. 아무리 뛰어도 그넷줄 안에서나 즐거운 거였다.

그럴 때였다.

다람쥐들 중의 누군가가 두 가닥의 그넷줄에 발을 디디고 위로 오를 수 있도록 나무도막을 묶기 시작했다. 그넷줄은 드디어 줄사다리가 됐다. 우리는 줄사다리를 타고 방솔나무에 올랐다. 길이란 처음 만들기 어렵지 한번 난 길은 오르기 쉬웠다.

어린 나도 그 줄사다리를 타고 방솔나무에 올랐다. 정말이지 거기엔 커다란 운동장이 있었다. 축구도 할 수 있을 만큼 촘촘한 나뭇가지 운동장이었다. 우리는 툭하면 거기서 손으로 공놀이를 했고 그러다 피곤하면 누워 잠을 잤다. 자다가 찬이슬에 깨어나 보면 밤은 이슥해져 있었다.

 

 


그때, 방솔나무 위에서 쳐다보던 별들은 우리를 매혹시켰다. 별은 목단꽃송이보다 더 컸다. 그런 수많은 꽃송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왜 그렇게도 눈부시고 아름답던지. 예쁘고 향기롭고 때로는 그윽했다. 우리는 날씨가 추워지는 늦가을까지 방솔나무 위에 올라가 별을 보았다.

그 후 상급학교에 가고 점점 바빠지는 일로 더는 방솔나무를 찾지 못한 채 나는 그만 어른이 되고 말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외롭거나, 인생에 지치면 그 우람한 방솔나무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 방솔나무를 한번 찾아가 보고 싶었다.

 

 


그후, 집에 일이 있어 고향에 들렀다. 들른 김에 방솔나무를 찾아갔다.

나는 간신히 호숫가 근처에서 그 옛날의 방솔나무를 찾아냈다. 흘러간 시간 탓인지 방솔나무가 왜소하기 짝이 없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내 마음에서 그토록 우람히 자리잡은 방솔나무가 왜 이렇게 볼품없이 작아졌을까. 나는 이 어처구니 없이 작아진 방솔나무를 올려다 보았다.

 

 

 

어쩌면 인생을 너무도 우습게 아는 세상에 편승하여 살아온 때문인 듯 하다. 그간 나는 호화 아파트, 골프 회원권, 외제 승용차에 20억 정도의 금융자산, 비싼 해외여행을 예사로 하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러니 내 유년의 방솔나무가 내 눈에 왜소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을 거다.

새해엔 허풍스런 인생이 아니라 이웃에게 그늘이 되어주고, 별이 되어주는 그런 방솔나무 같은 삶을 살고 싶다.

 

 (교차로신문 2009년 1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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