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상처없는 나뭇잎은 없다

권영상 2013. 6. 16. 17:30

 

상처없는 나뭇잎은 없다

권영상

 

 

 

 

 

마을 앞 동네 산을 내려오다 상수리나무 밑에 발길을 멈추었다. 유독 거기만 노란 상수리나뭇잎이 소복히 쌓였다. 예쁜 잎 하나를 주웠다. 연둣빛이 은은히 배어있다. 참 곱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책갈피에 꽂아두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생각이 거기에 닿자, 더 예쁜 잎을 줍고 싶은 욕심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나는 집어들었던 잎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빛 고운 녀석을 주워 들었다. 그러나 빛은 고운데 벌레 긁힌 자국이 있다. 이번에는 모양이 온전한 잎을 찾아들었다. 그도 들고 보니 형태는 온전하나 작은 검정 점들이 눈에 거슬렸다. 다시 내려놓고 빛깔도 곱고 형태도 온전한 놈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꼭 마음에 드는 잎은 없다.

 

상수리나무를 보니 잎을 다 떨구었다. 그러나 어떤 가지 끝엔 아직 남은 잎들이 있다. 차고 을씨년스런 바람에 몸부림치고 있다. 그래, 봄에 태어나 여지껏 바람 많은 산에 산 나뭇잎치고 어떻게 온전한 잎이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쉼없이 바람과 싸우고, 벌레들에 갉히고, 몰려드는 질병을 피할 나뭇잎이 있을 수 없겠다.

 

 


 

어떤 이들은 나무야말로 행복한 존재이며 그 나무들이 모여사는 숲을 가장 아름답고 평화롭고 고통없는 성스런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숲이라고 생로병사가 없을 수 없다. 나무들도 서로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이웃나무들과 생존경쟁을 해야한다. 거기에서 지는 나무는 그늘 속에 묻혀 마침내 죽고 만다. 나무들도 때로는 사람들마냥 잔인하다. 그들도 이웃 영역을 침입해 남의 몫의 햇빛을 빼앗기 일쑤이며, 남의 땅으로 뿌리를 벋어 영양을 훔쳐 나르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그뿐 아니다. 장마비와 태풍에 쓰러지려는 제 몸을 나무들은 지키며 살아야 한다. 장마가 끝난 뒤 산에 올라보면 산은 참혹하다. 비탈에 선 나무들이 대개 비와 바람에 못 이겨 골짜기를 향해 쓰러져 있다. 그들은 중둥이가 꺾이거나 아니면 다시는 살아날 수 없도록 아예 뿌리째 뽑혀 있다. 장마가 계속되는 수십 일 동안 나무는 하루도 모진 바람과 비와 싸우지 않은 날이 없다.

 

 

나무의 일생이 그렇고 보면 나뭇잎인들 하루도 편히 쉴 날 없고, 잠들 날 없다. 그런 운명으로 태어난 것이 나뭇잎들이다. 그러니 낙엽을 주우며 상처 하나 없기를 바라는 내가 너무 잔인할 뿐이다. 이 험난한 세상을 건너며 바람과 비와 질병을 피해 살아온 나뭇잎이 어디 있겠는가. 있다면 오히려 그가 밉겠다. 문 밖을 나서기만 하면 우리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은 유혹적이고 때로는 잔혹하다. 그런 바람 한 점 맞지 않고 살아왔다면 그건 나뭇잎의 도리를 다 한 게 아니다.

 

 

 

산을 다 내려왔을 때다. 길을 건너가는 검정풍뎅이가 있다. 그도 어떤 일생을 살았는지 한쪽 날개가 부러져 있다. 부러진 날개를 끌며 길을 건너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수고스럽다. 나는 검정풍뎅이가 길을 다 건너갈 때까지 그의 길을 지켜주었다. 그러는 사이, 흙 묻고 바람에 한쪽 모서리가 닳은 팥배나뭇잎 한 장을 주워 웃옷 주머니에 소중히 넣었다. 그걸 어느 책갈피에 넣어두었다가 그 언젠가 어떤 일로 그 책을 다시 만난다면 나는 그 잎을 손에 들고 한참을 들여다 보게 되겠다. 살아온 길이 이토록 험난했구나! 하고. 그럴 때의 그 팥배나뭇잎의 일생이 내 눈에 얼마나 숭고해 보이겠는가.

 

(교차로신문 2008년 11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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