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떨리던 손
권영상
고향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의 구순 생신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이다. 어머니를 찾아 뵙고 다음 날 작별을 할 때였다. 노쇠하신 어머니와 집 대문 밖에서 작별을 했다. 몸이 불편하신지라 그만큼 걸어나오시는 것만도 어머니에게는 큰일이었다. 그렇게 어머니와 작별을 하고 5분여의 길을 걸어나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뒤였다.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가 두 팔을 허우적대며 나를 향해 걸어오고 계셨다. 막내인 나와의 작별이 너무 아쉬워 오셨다는 거였다. 지팡이를 짚고 오신 어머니가 한숨을 막 몰아쉴 때였다.
그 무렵 나를 태워갈 버스가 저쪽 철길 너머에서 오고 있었다. 그 때였다. 어머니는 마치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 손으로 당신의 치마를 걷어올리셨다. 나는 순간, 어머니의 그 동작이 무얼 의미하는지를 알았다.
“그러지 마시게. 어머니가 뭐가 있으시다고.”
나는 손사래를 저으며 두어 걸음 물러섰다. 정류장에서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리 쪽을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치마를 들추셔서는 속고쟁이 주머니를 더듬으셨다. 그런데 다급하신 탓인지 어머니가 주머니를 찾지 못하시는 거였다.
버스는 이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어머니를 만류했지만 그 손을 거두지 않으셨다.
근데 그 때는 왜 그러셨을까. 어머니는 수없이 많은 날들을 그 고쟁이 주머니에 손을 넣으셨을 텐데… 우리 남매를 키우기 위해 냉이를 캐어 내다파실 때에도, 동삼절 배추포기를 머리에 이고 읍내에 내가실 때에도 어머니는 고쟁이 주머니에 물건 파신 돈을 소중히 넣고 돌아오셨다. 수도 없이 손을 넣던 그 주머니를 어머니의 늙으신 손은 왜 찾지 못하시는 걸까.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아들에게 ‘차비’를 주고 싶어 여기까지 걸어오셔놓고, 그 주머니를 찾지 못하고 계시는 거였다.
“주머니가 대체 어디에 가 있누!”
어머니는 멈추어선 버스 탓인지 더욱 당황하셨다. 버스를 기다리던 이들이 다 올라타고 나만 어머니의 ‘작별 인사’ 때문에 버스를 잡고 있었다. 우리가 차에 오르지 못하자, 승객 몇이 이쪽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어머니는 간신히 주머니를 찾으셨고, 그 안에서 꼬깃꼬깃한 돈 만원을 꺼내어 내 손에 쥐어주셨다.
“어머니, 고맙네. 잘 계시게.”
나는 고쟁이의 주머니를 간신히 찾아낸, 어머니의 늙으신 손을 잡았다. 오랫동안 병환으로 지친 어머니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을 힘없이 놓고 버스에 올랐다. 이윽고 버스가 출발했다. 나는 차창 밖으로 어머니를 내다봤다. 허리를 구부린 채 지팡이를 짚은 어머니가 내 쪽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서 계셨다.
‘어머니!’
속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 한 움큼이 울컥 솟았다. 나는 내 손에 잡힌 만원을 꼭 쥐었다. 고쟁이의 주머니조차 찾아내지 못할만큼 나이드신 어머니의 파르르 떨리던 손의 느낌이 싸아, 하게 전해 왔다.
요즘도 가끔 길을 가다보면 만난다. 나이 지긋한 아들에게 줄 요량으로 치마 끝을 걷어올려 돈을 꺼내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을 보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그러나 그토록 ‘차비’를 쥐어주고 싶어하시던 고향 어머니도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음이 더욱 나를 안타깝게 한다.
(교차로신문 2008년 10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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