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세상을 어린애 같이 살다니

권영상 2013. 6. 12. 20:56

 

 

세상을 어린애 같이 살다니

권영상

 

 

 

 

 

아내보다 내가 먼저 출근 한다. 문을 나설라치면 아내가 쫓아나온다.

“지갑 넣었어요? 열쇠며 휴대폰도?”

아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묻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여름쯤이다.

아직 방학에 들어가기 이른 무더운 토요일이었다. 무더운데도 불구하고 탁구 몇 게임을 하고 퇴근을 했다. 운동 끝이라 온몸에 땀이 흐르고 몸이 달아올랐다. 더구나 바깥은 한창 폭염 중이었다.
버스를 탈까 하다 언덕길을 걸어 내려가기로 했다. 근무지인 학교에서 서울역까지 버스를 타면 세 정거장, 걸으면 30분 거리다. 뜨거운 볕을 받으며 전철역에 다다랐다.

검표기 앞에서 나는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허전했다. 그제야 지갑을 학교에 놓고 왔다는게 생각났다. 운동복 없이 탁구를 치느라 성가신 지갑을 책상 속에 넣어뒀었는데 그냥 오고 말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머니며 가방을 뒤졌다. 십 원짜리 하나 없었다. 낭패였다.

오가는 사람들을 둘러봤지만 아는 이가 있을리 만무했다.

 

 

 

지갑을 가지러 되돌아 가려니 아찔했다. 폭염길에 나서는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내 눈 앞에 지하철 서점이 보였다. 나는 글쟁이니까, 내가 쓴 책도 저 안에 몇권 있을 테니까, 그리고 마침 내 가방 속엔 학교도서실의 도장 찍힌 책도 있었으니까 그걸 내밀면 승차비쯤은 쉽게 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가방속의 책을 꺼내들고 순진한 마음으로 서점을 향해 갔다. 카운터에 서 있는 두 명의 점원 앞에 들고간 책을 내보이며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이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데 지갑을 놓고 왔다. 승차비를 좀 빌려달라, 내일 꼭 돌려드리겠다.

내 부탁에 남자 점원이 주머니를 뒤지더니 200원을 내놨다.

나는 그 곁의 여자 점원을 바라봤다. 그녀는 아예 고개를 돌렸다. 내가 학교에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했지만 어설프게 사람 속이지 말라는 표정이었다.

 


“무임승차권이나 얻어보세요.”
내가 딱해 보였던지 남자 점원이 턱으로 매표소를 가리켰다. 그 무렵부터 내 순진한 마음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게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더위에 학교로 되돌아가기도 싫었다. 바보 같은 짓을 하고도 모자라 나는 기어이 표를 사려는 긴 행렬 뒤에 가 섰다. 오랜 시간 뒤에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필요 이상으로 허리를 굽혀 창에 내놓은 구멍에 대고 말했다.
“무임승차권 하나 주실 수 없나요?”
내 목소리는 개미소리만 했고, 떨렸고, 비굴했다.
“없습니다.”

 

창구 안의 남자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의 말이 표가 떨어졌다는 건지, 그런 제도가 없어졌다는 건지 나는 알아듣지 못하고 물러났다.

세상이 적적했다. 적적 정도가 아니다. 고적감이 몰려 왔다. 주머니에 천 원이 없으면 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세상에 내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세상을 순진하게 대하며 사는 내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나는 전철역을 나와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갑을 찾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직장에서 돌아온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놨다.
“이 나이 되도록 세상을 어린애 같이 살다니!”
아내가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그때부터다. 집을 나설 때마다 아내는 달려와 주문처럼 왼다. “지갑 넣었어요? 열쇠며 휴대폰도?

(교차로신문 2008년 9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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