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아내의 프라이드

권영상 2013. 6. 12. 20:38

 

 

 

 

아내의 프라이드

권영상

 

 

 

 

아내는 운전석의 문을 열지 못해 조수석으로 타넘어 차에서 내렸다.

문을 여닫는 잠금 꼭지가 헐거워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차 좀 바꾸시지?”
내 말에 아내는 20년을 채우고 바꿀 거란다.
벌써 오래전부터 들어온 말이다.
차를 산지 8년쯤 될 때 이제 좀 바꾸지? 그랬다. 그 때 아내는 10년은 타고 바꿀거라 했다. 그러던 게 11년, 12년 하다가 올해로 20년을 탔다.

 

 

 

아내가 모는 프라이드 90년 산은 우리가 살림살이를 갖추면서 마련한 차다. 그 무렵 아내는 집에서 먼 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출퇴근하려면 전철과 버스를 하루에 여섯 번이나 갈아타는 거리였다. 직장마저 가파른 산 중턱에 있어 젊은 남자도 오르내리기 힘들었다.
아내의 차는 그 험한 길을 투정없이 거뜬히 오르내렸다. 그뿐 아니라 그 차로 딸아이의 저녁공부 시간도 맞추어 내었다.
“낡고 작은 차면 뭐 어떻니? 얼른 타렴.”
아내가 차 문을 열면 딸아이는 차에 오르면서도 싫어했다.
“아이들 보기 창피하단 말야.”
머리가 조금씩 굵어지면서 딸아이는 엄마 차를 부끄러워했다.

아내의 차를 얻어타고 고향집에 갈 때면 부끄럽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나이에 맞는 좀 괜찮은 차로 바꾸자.”
그러면 아내는 확신에 찬 소리로 대꾸했다.
“나는 아직 내 삶에 자신감이 있으니 차 바꾸라 하지 말아요.”
정말이지 아내는 오래된 프라이드로 호텔 음식점이든 백화점이든 동창회든 잘도 다녔다.
나나 딸아이는 비교적 주변을 의식하는 편인데 아내는 그렇지 않다. 소신대로 산다. 자신의 삶에 당당한 편이다.

 

 

 

올 9월이면, 딸아이는 유학을 떠난지 3년이 된다.

인문계 학교를 다녔던 딸아이는 아내의 90년형 프라이드로 유학 준비를 했다.
“애도 대학 갔으니 이제 좀 바꾸면 안 될까? 당신이 위험할까봐 그래.”
내 말에 아내는 선선히 그러겠단다.
차도 바꾸고, 중단했던 그림도 다시 시작하겠단다. 아내가 그림, 그림, 했으니 다시 그림을 시작하리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건 몰라도 차를 바꾸겠다는 말은 믿어지지 않는다. 손잡이가 빠지고 유리문이 오르내리지 않아도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끄러워 않는다기보다 오히려 고쳐쓰는 걸 즐겨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옳겠다.

 

 

 

 

“앞으로 5년을 더 타도 문제없습니다.”
아내를 따라 정비소에 갔을 때다. 아내 차를 주로 정비해 주는 노련한 기사가 그렇게 말했다.
“틀림없지요?”
아내가 다짐을 받듯이 되물었다.
물론이지요! 하는 정비사의 말이 과장은 아닌듯하다.

 

(교차로신문 2008년 8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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