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보신탕과 보리밭과 대양의 애틋함

권영상 2013. 6. 11. 20:39

 

 

 

 

보신탕과 보리밭과 대양의 애틋함

  • 권영상
  •  

     

     

     

    삼복이고 보니 ‘보신탕’이란 말이 또 슬며시 떠오른다. 식품으로 인정할 것이냐 아니냐를 떠나 그에 얽힌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어느 항구도시에 머물던 때다. 번잡한 직장 가까이에 하숙을 정해놓고 살았다. 항구도시는 특유의 번잡함이 있다.

     

     


    출퇴근이 좀 멀더라도 한적한 곳이 그리웠다. 그런 기회는 이내 찾아왔다. 바다와 인접한 어달산이 바로 그곳이었다. 우연히 그 산을 찾았을 때가 사월의 안개속이었다. 사월의 어달산 중턱에서 만난 바다에 대한 추억은 남달랐다. 발끝이 안 보일 만큼 뽀얗던 안개가 갑자기 걷혔다. 그때 성큼 드러난 바다는 화면이 확 바뀐 대형 스크린 그 자체였다. 스크린 안엔 시야가 눈부시게 트인 대양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그 대형 바다의 스크린 속으로 떨어질 것 같이 산은 가팔랐다. 다시 돌아서서 산을 올랐다. 이번엔 산비탈 위로 보리밭의 보리물결이 넘실대고 있었다.

     

     


     ‘이런데다 집을 짓고 잠깐이라도 살면 좋겠다.’
    나는 중얼거리며 산비탈길을 올랐다. 근데 너무도 뜻밖이었다. 한 고비의 언덕을 올라서자, 거기에 네 채의 민가가 나타났다. 거기에서 만난 분에게 나는 인사삼아 하숙할 만한 집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 분은 흔쾌히 그 집을 내게 알선했다. 네 채의 집 중 가장 외딴 집이었다. 그 집 마당에서도 바다는 한 눈에 꽉 차도록 들어왔다. 나는 그 집에 머물기로 했다.

     


    거기 머물면서 삼일만에 알아낸 것이 있다. 그 댁 주인이 시내에서 보신탕 업을 한다는 거였다. 첫날부터 식탁 위에 오른 국물맛이 조금은 의심스러웠다. 그 음식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던 나로서는 의심스러울 밖에 없었다. 주인과의 눈길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나는 은근히 그 음식의 정체를 물었다. 주인 남자는 여태 몰랐냐는 식으로, 아니 당신이 한국의 사내가 맞느냐는 투로 대답을 해주었다. 그게 보신탕이라고.

     

     


    갑자기 그간에 먹었던 그 친숙한 느낌의 음식이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꽤 오랫동안 고민에 빠졌다. 이 댁을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 나는 문을 열고 앉아 시야 가득 펼쳐지는 보리밭과 바다의 실루엣을 바라봤다. 나는 눈을 감고 떠나야지 했다. 매일같이 식탁위에 오르는 보신탕이 마음에 걸렸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 산언덕에서 직장까지는 걸어서 1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무엇보다 산언덕을 오르내리는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자고나면 또 생각이 바뀌었다. 바다가 눈앞에 밟혔다. 고민은 이틀로도 부족했고, 사흘로도 부족했다. 그러면서 한달이 지났다. 내 결단을 방해하는 것이 또 있었다. 눈을 뜨면 귓전에 쏟아져 들어오는 종달새 울음이었다. 그리고 방안 가득 밀어닥치는 바다 운무와 이 외딴 마을 사람들의 따듯한 마음이었다.


     


    “선생님, 출근 안 하셔유?”
    이 댁에 나를 소개해 준 아저씨는 아침이면 찾아와 인사를 했다. 나는 한달이 넘도록 고민한 끝에 보신탕에 대한 내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내게는 의뭉한 음식이지만 우리 착한 주인에게 그것은 생계와 직결되는 매우 소중한 ‘상품’이었다. 나는 그 댁에서 무려 일년 반을 더 머물렀다. 익숙해져가는 보신탕 때문이라기 보다 어달산의 눈부신 사월과 바다를 향한 나의 애틋함 때문이었다.

    (교차로신문 2008년 7월 24일자)

     


    '오동나무 연재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와 딸  (0) 2013.06.12
    아내의 프라이드  (0) 2013.06.12
    신문지를 깔고 먹는 짜장면   (0) 2013.06.11
    가끔 선물도 좀 하니?  (0) 2013.06.11
    2인분치의 곰국  (0) 2013.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