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선물도 좀 하니?
권영상
몇 해 전 일이다.
“애한테 전화 좀 해 봐요.”
자정이 가까워오는데도 딸아이로부터 연락이 없다. 방학에 집에 온 딸아이는 며칠 귀가 시간이 늦다. 아내는 성화를 냈지만 나는 좀 기다려 보자고 달랬다.
자정이 넘자, 아내는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견디기 힘든지 묻지도 않은 말을 꺼냈다. 딸아이가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갔다는 거다. ‘남자 친구’라는 말에 그만 가슴이 덜컹했다. 딸아이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심장이 뛰었다. 사귄지 두 달이 넘는다고 했다. 이제 대학 2학년인 녀석이 남자 친구를 만나다니. 나는 떨리는 가슴으로 딸아이에게 전화를 넣었다. 한참만에 딸아이가 전화를 받았다.
“네 옆에 있는 남자 친구 바꿔라!”
나는 바싹 마른 목소리로 을러메었다.
할 말을 저에게 해달라고 딸아이가 사정을 했다. 한동안의 실랑이 끝에 딸아이의 휴대폰에서 낯선, 조금은 굵은 사내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감정을 억제한 뒤에 나즉히, 그러나 매우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애 보내라! 30분 안에.”
흥분을 참지 못하고 탁, 전화를 끊었다. 딸아이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갑작스럽게 세상이 끝나는 것 같았다. 캄캄했다. 딸아이를 위해 바쳤던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고뇌와 수많은 수고가 단 한 순간에 헛된 일이 되고마는 느낌이었다. 그래, 배신이었다. 딸아이는 단 한방으로 아버지인 내게 배신의 펀치를 날린 거였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다. 몇 번이나 냉장고 속의 찬물을 삼키고, 몇 번이나 방안을 서성거렸다. 집에 들어오면 종아리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을 때 딸아이가 돌아왔다. 돌아온 딸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갑자기 딸아이가 안스러웠다. 일순간 너무 심하지 않았나 하는 자책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건 어리석은 나의 생각이었다.
“내일 입대한단 말이야. 가면 얼마나 고생하겠어.”
딸아이는 울면서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책하던 내 마음이 곤두박질치듯 또 한번 무너졌다. 늦게 들어온 것이 미안해 우는 게 아니라 남자친구가 힘들어할 것 때문에 운다는 거였다.
다음 날부터 딸아이와 나 사이엔 대화가 없었다. 그렇게 두 달을 있다가 딸아이는 방학을 마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갔다. 나는 딸을 가진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위로를 받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나의 행동을 한심스러워 했다. 오히려 딸아이를 두둔했다. 그게 배신이 아니라 부모곁을 떠나려는 딸자식의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냐고. 나는 결혼식장에서 딸자식을 시집 보내고 울었다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을 가진 아버지들은 누구나 한번은 배신감을 느낀대.”
내 말을 듣던 친구가 웃으며 나를 위로했다. 다시 방학이 되어 돌아온 딸아이가 요즘도 제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다. 그때마다 나는 딸아이에게 가끔 묻는다.
“선물도 좀 하니? 맛있는 것도 좀 사고?”
(교차로신문 2008년 6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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