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분치의 곰국
권영상
요사이 비가 흔하다. 너무 지나치다 싶다. 점심때까지 멀쩡했는데 퇴근하여 집 근방에 이르자 천둥까지 으르렁대며 비가 내리꽂혔다. 엘리베이터를 누르려고 손을 뻗을 때에야 아내가 아프다는 말이 떠올랐다. 유월에 때아닌 감기로 고생이다. 비만 아니어도 좀더 일찍 돌아올 수 있었는데, 하고 집에 들어섰다. 아닌 게 아니라 저녁준비를 하고 있을 아내가 누워있다.
이불을 쓰고 누운 아내가 곰국이 먹고 싶단다. 곰국을 먹지 않는 사람이 곰국타령이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혹시 배달이 되려나 하고 통화를 해봤지만 배달 안 한지 오래됐단다. 포장은 해 준단다. 포장이라, 나는 힘없이 식탁머리에 앉았다. 바깥을 내다봤다. 쉴새없이 천둥이 울고 번개가 번쩍거렸다. 나는 망설였다.
그때였다.
‘나가 보자!’
지금은 안 계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나는 일어나 우산을 받쳐들고 길거리로 나갔다. 플라타너스 가로수 위에서 바윗덩이를 내리 굴리듯 천둥이 울었다. 그럴 때마다 한바탕씩 요란하게 장대비가 퍼부었다.
예전, 오늘처럼 천둥이 요란하게 울던 날이었다.
지병으로 몸져누운 어머니가 우렁이국을 먹고 싶다했다. 우렁이국이라면 이른 봄에나 먹는 음식이다. 근런데 오늘처럼 비내리고 천둥치는 유월에 그걸 원하셨다. 우렁이를 잡는다 해도 이 비에 가득찬 무논을 뒤져야한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청에 머뭇거리셨다. 비를 맞으며 무논을 뒤질 일을 생각하신 거다. 문을 열고 한참이나 천둥치는 하늘을 내다보시던 아버지가 나를 부르며 일어나셨다.
“에미를 위한 일인데 그깟 천둥이 무섭겠냐.”
아버지는 그릇을 챙겨서는 비닐 우산을 들었다. 아버지와 나는 달빛처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먼 논벌을 향해 걸었다. 논은 빗물에 가득히 불어있었다. 우산을 내려놓은 아버지가 무논에 들어서셨다. 마지못해 나도 따라 들어섰다.
손을 뻗어 논바닥의 우렁이를 뒤지다 문득 아버지의 구부린 등허리를 봤다. 흥건히 젖은 등줄기에 사정없이 비가 꽂혔다. 아버지의 휜 등엔 어머니의 병환이라는 무거운 짐이 얹혀있었다.
아버지는 그 힘으로 사셨다. 짊어진 그 짐의 무게로 고단한 삶을 달갑게 받아들이며 사셨다면 사셨다. 하늘을 깨치듯 내리치는 천둥소리에 아버지는 그러셨다.
“암만 사람잡는 천둥이래도 우린 안 때린다.”
천둥이 무서워 길가의 전신주를 비켜 걷던 나는 우산을 곧추세웠다. 길거리엔 사람이라곤 없다. 이따금씩 도회의 건물들이 번갯불 빛에 섬뜩할 만큼 드러났다가 사라진다. 나는 우산 속에 웅크려 넣은 내 몸을 펴고 걸었다. 어머니는 10여년이 넘도록 병석에 누워있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 길고긴 어머니의 우환을 불평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어머니를 일으켜 세우시고는 마치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귀대병처럼 가벼이 먼 길을 가셨다.
포장해준 곰국 2인분치를 들고 돌아섰다.
잡은 우렁이를 들고 집을 향해 총총히 걷던 30여년 전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가 그리웠다. 집으로 돌아와 식탁 위에 2인분치의 곰국을 내놓았다. 내가 기특해 보였던지 아내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당신을 위한 일인데 그깟 천둥이 무섭겠어.”
아버지가 하시던 그 말이 불쑥 내 입에서 나왔다.
(교차로신문 2008년 6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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