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견우와 직녀, 그 속에 숨은 성 억압 이데올로기

권영상 2013. 3. 14. 16:52

 

견우와 직녀, 그 속에 숨은 성 억압 이데올로기

권영상

 

 

 

 

 

그때, 나와 아내는 견우와 직녀였다.

아내는 직장이 경기도에 있었고, 나는 강원도 묵호, 지금의 동해시에 있었다. 그렇게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결혼을 했다. 피 끓는 청춘이었으므로 그런 결혼이 가능했지 싶다. 그러나 그 후의 결혼생활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우리는 신혼집을 강남구의 맨 귀퉁이에 있는 세곡동에다 얻었다. 영동고속도로가 왕복 2차선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묵호에서 세곡동까지 가는데만 6시간이 걸렸다. 일 주일에 한 번씩 오르내리는 일은 힘들었다. 대개 이 주일 또는 직장에 급한 일이 생기면 한 달에 한 번씩 만났다. 오르내리는 내가  힘들까봐 때로는 아내가 묵호에 있는 내 하숙집으로 내려왔다.

 

그때 우리를 가로막는 것의 최대 장애물은 직장이었다. 누군가 직장을 버리면 우리는 쉽게 합류할 수 있었지만 그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런저런 이유로 우리는 3년을 헤어져 살았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던 때의 이른바 주말부부 이야기다. 그 무렵 우리는 합류하여 살지 못하였기에 늘 서로를 건너다 보며 애틋한 마음으로 지냈다.

 

  

 

서로를 바라보며 사는 이들 중에 그 옛날, 견우와 직녀가 있었다.

직녀는 누구의 딸이냐? 그건 잘 모르겠다. 옛날이야 난혼시대였으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를 모르는 자식이 한둘이 아니었다. 분명한 거는 직녀도 다리 밑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하늘을 다스리는 천제이며, 외할머니는 서왕모라 한다. 옛날이야기가 다 그렇듯 이 이야깃속 직녀도 시쳇말로 행세깨나 하는 가문의 태생이다. 할아버지가 하늘을 다스리는 황제다.

 

 

직녀의 직업은 무엇이냐? 다들 잘 알다시피 직물을 짜는 일이다. 직녀의 직물짜는 기술은 굉장히 뛰어났다. 옛날엔 하늘도 사람처럼 철철이 옷을 해 입었는데 그 옷을 직녀가 다섯 명의 선녀들을 데리고 짰다. 그러니 그녀의 직물기술은 뛰어나고 그가 짠 직물은 뭇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 점으로 보아 직녀는 꽤 괜찮은 직업을 가진 여성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콧대높은 커리어우먼이다. 직업여성답게 그녀는 부지런했다.

 

 

 

"파아란 은하를 사이에 두고 그 건너에 인간 세계가 있었다."

이 이야기 중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다시 읽어볼수록 아름답다. 선계와 인간세계가 놓여있는 공간적 구도가 아름답지 않은가. 그야말로 그림 같이 고운 풍경이다. 가끔 나는  설화문학을 접하는 중에 탁월한 우리 민족의 농경문화적 상상력 앞에서 무릎을 칠 때가 있다. 물론 이 이야기가 중국에서 넘어온 설화이긴 하지만 오래오래 우리 민족의 입에서 입으로 전승된 거니까 감성의 몫은 우리 것이다.

넓은 벌판을 가로질러 지줄대듯 흐르는 파아란 은하를 사이에 두고 그 동쪽에 선계가 있고, 서쪽에 속계가 펼쳐져 있다. 선과 속의 경계가 은하로 구분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은하는 사람이 바지를 걷고 건너다닐 만한 시내다.

 

 

그러니까 우리의 옛 어른들은 항상 이쪽의 징하고 답답한 현실을 살면서도 그 머리에는 선계를 두고 살았다. 관리들에게 수탈당하고, 온갖 폭정에 끄달리고, 나라 안팎의 전쟁에 시달리며 수천 년을 살면서도 탁, 쓰러지지 않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개똥밭이 어쩌면 선계일지도 모른다는 선속 동일사상 때문이다. 선계인가 하면 속계이고, 속계인가 하면 선계인.

 

 

티없이 맑고 깨끗한 은하의 서쪽에는 누가 사는가? 본명이 하고河鼓라는 청년 견우가 살았다. 견우는 형 없는 형수 밑에서 구박을 받고 살다 쫓겨났는데 겨우 늙은 소 한 마리를 얻어 나왔다. 늙은 소를 데리고 헐벗은 들판에서 농사를 지으며 간신히 살았다.

“은하에 목욕을 하러 오는 직녀를 만나 보시오.”

데리고 나온 늙은 소는 혼자 사는 견우가 너무도 불쌍했던 모양이다. 이런 귀뜸을 해주며 직녀를 만나볼 것을 권유했다.

급기야 견우는 늙은 소의 말대로 직녀를 만났고, 피가 뜨거운 청춘남녀는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얼굴 예쁜 직녀 좀 보아. 착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고 제 직분을 잊고 견우의 달콤한 품에서 아예 나올 줄을 모른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하늘의 여인이 땅의 가난한 인간을 참 어지간히 사랑한 모양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서왕모는 소스라치듯 분노했다. 우선 하늘의 옷을 철따라 갈아입힐 수 없게 되었고, 또한 하늘의 신들마저 옷이 남루해져 갔기 때문이다. 그건 왜 그런가. 직녀가 자신의 당연한 직분인 직물짜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왜? 한 인간을 너무도 사랑했기에.

“직분을 잊은 자에게 쓴맛을 보여주리라.”

서왕모의 말은 들은 천제는 직녀를 불러올려 먼 동쪽으로 내쫓았다. 그리고, 견우는 서쪽으로 내쫓아 서로 헤어져 살게 하였다.

 

 

견우는 직녀 없는 허허벌판에 혼자 쓸쓸히 살았다. 그토록 사랑했던 직녀를 단 한 시도 잊고 살 수는 없다. 그건 직녀도 마찬가지다. 견우 곁을 떠나 사는 건 결코 사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맨날 서로 그리워만 하며 살 수는 더욱 없었다. 마침내 견우는 은하를 건너 직녀를 찾아가기로 마음 먹고 은하 앞에 섰다. 이 은하를 건너면 사랑하는 직녀를 만날 수 있다. 견우가 은하에 막, 한 발을 들여놓을 때다.

 

 

누군가의 커다란 손이 하늘에서 휙 날아왔다. 그러더니 그의 날쌘 손이, 파아랗게 흐르는 은하를 덥썩 집어올려 하늘 허공에 걸어 놓았다. 쳐다보니 잔뜩 화가 난 서왕모였다. 그녀는 머리에 꽂은 비녀를 뽑아 은하를 내리쳤다. 얕게 흐르던 은하가 이번에는 깊고 깊은 강물이 되어 출렁거렸다.

판타지 소설을 읽듯 신화적 사건과 화면들이 장엄하면서도 두렵고 무시무시하게 급속히 전개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직녀는 외할머니 서왕모에게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할머니, 진정으로 그를 사랑했어요.”

사랑을 잃은 직녀의 슬픔은 애처로웠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아름다운 거지만 또한 힘들다. 견우를 만나 행복하지 않았다면 지금 직녀는 슬프지 않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외할머니 서왕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얼어붙은 마음에 서서히 봄날 같은 연두빛 금이 돌기 시작한다. 아무 비상구도 없이 둘의 사랑을 무턱대고 막아버리는 건 불안하다. 금지와 봉쇄만이 능사가 아니지 않은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급기야 서왕모는 비상구를 열어준다.

 

 

 

“정 그렇다면!”

“할머니, 저를 그에게 보내주세요.”

“그건 안 될 말! 일 년에 한 번씩은 만나게 해 주마.”

 

이렇게 하여 그들은 일 년에 단 한 번. 지상의 까막까치가 놓아주는 오작교에서 만나 회포를 풀게 된다. 해마다 칠석 날 아침이면 직녀는 견우를 만난 해후의 기쁨에 몸을 떨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린다. 이 때, 이쪽 마른 대지 위에는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린다. 이 비는, 이쪽 땅에 살고 있는 이별한 여인이거나 사별한 여인이거나 아니면 사랑을 간직한  모든 여인의 마른 가슴을 적시는 눈물이다.

 

 

“비가 오는구나.”

예전, 어머니는 칠 월 칠석날이면 저고리 동정을 다시다가도 가끔가끔 하늘을 올려다 보셨다. 그러다가 비라도 내리면 일손을 놓고 나가 그 비를 맞으며 안도하셨다. 혹 하루가 다 가도록 비가 내리지 않으면 어머니는 그날 내내 허전해 하셨다. 그 허전함의 내면에는 견우와 직녀가 상봉하지 못했을 거라는 불안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네 하늘은 그날만큼은 가랑비 한 줄금을 꼭 내려주셨다. 이 땅의 여인들이 그 비를 너무도 간절히 간절히 바랐으니까. 그것은 견우직녀의 사랑이란 것이 얼마나 애틋하고 서러운 것인 줄을 알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우리들 어머니와 아버지의 해후 또한 그러하셨다.

어머니는 안방에 거처하셨고, 아버지는 먼먼 사랑방에 따로 따로 기거하셨다. 그뿐 아니라 남정네가 비록 그의 아내라할지라도 여인이 거처하는 안방에 드나드는 일을 극히 경계하였다. 그것이 조선 5백 년 세월을 내려온 당시 부부들의 별거의 법도였다. 부부를 갈라놓는 그 법도는 마치 은하를 사이에 두고 일 년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하게 하는 설화의 잔혹성과 다르지 않다.

 

 

 

그 점에서 보아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지배해온, 내외가 같은 방에서 동침해서는 안 된다는 성 억압적 기제를 미화한 설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유교의 성 억압 이데올로기와 이 ‘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맞아떨어진 지점이 조선이 아니었던가 한다.

태초에 이 이야기는 남자는 농사를, 여자는 베짜기를, 이라는 직분의식을 심어주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전래설화가 그렇듯 본디의 의도란, 시대 사회적 조건과 유착하여 다른 의미로 변질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지금은 우리 사회가 성 억압으로부터 멀찍이 벗어나 있다. 그러기에 더 이상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우리나라 아낙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지 않다. 이것만 보아도 이 이야기는 부부간 성의 분방한 욕구를 억압한 매우 잔혹한 설화임이 분명하다.

 

 

지금은 신화와 전설이 사라진 시대다. 그렇기는 해도 가끔 오작교는 어찌 되었는지. 지금도 까막까치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은하로 올라가는지, 그런 싱거운 생각을 해본다. 혹 우리나라 국토부가 은하에 오작대교를 건설 중에 있는 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