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데꺼정 왔나? 그 잊을 수 없는 말놀이
권영상
우체국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동네놀이터가 왁자지껄한다. 슬쩍 쥐똥나무 울타리를 넘겨다 봤다. 십여 명의 계집아이들이 ‘얼음땡’ 놀이를 하고 있다. 걸음을 옮기던 애들이 “얼음!”하는 소리에 얼음처럼 굳어버린다. 옆에서 놀던 개들도 당황스러운지 애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꽁꽁 언 겨울을 보낸 탓이겠다. 아이들 놀이만 보아도 세상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눈도 많았고, 춥기도 어지간히 춥던 긴 겨울이었다. 새 학년이 시작된 지 이제 닷새가 지났다. 5학년쯤 되는 애들의 “얼음!”, “땡!” 하는 목소리에 윤기가 돈다. 그 애들도 본의 아니게 방학 동안 학원을 전전하느라 힘들었을 거다. 예전과 달리 요즘 애들에게 있어 개학은 부모의 간섭에서 해방 되는 날이다. 그러니 좀 춥기는 해도 개학 뒤의 봄날이 좋기만 하다. 애들은 두엇만 모여도 모이면 어떻게 놀까 그 놀이를 궁리한다.
초등학교 시절이다.
어찌 된 이유인지 아버지는 나를 여섯 살에 초등학교에 보내셨다. 내가 1학년일 때는 6,25 전쟁이 끝난지 불과 6년 밖에 안 되던 험난한 시절이었다. 피난 보따리를 마저 풀어 정리하기도 바쁘셨을 그런 때에 아버지는 막내인 나를 그렇게나 일찍 학교에 보낼 생각을 하셨다. 그런 까닭에 나는 주로 나보다 세 살, 네 살 많은 형들하고 같은 교실에서 같은 공부를 했다. 그러니 나는 그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학교는 집에서 십 리쯤 떨어져 있었다. 그 먼 거리의 학교에 무리하게 나를 보내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손위 누나가 있어서다. 누나는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이 6학년이었다. 누나가 초등학교를 마치기 전에 나를 누나 손에 맡길 계산이셨던 거다.
“동생 잘 데리고 다녀!”
내가 아침에 학교를 가려고 집을 나서면 어머니는 누나에게 그 일을 당부당부 하셨다.
그때로부터 누나는 등교할 때도 나를 데리고 가고, 돌아올 때도 웬만하면 나를 데리고 집에 왔다. 누나를 따라 다니기에도 십 리 시골길은 먼 길이었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엄마도 보고 싶고.
“누나, 업어줘!”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리가 아프면 나는 누나 손을 잡아 끌었다.
“사람들이 보잖아. 좀 가다 사람 없으면......”
누나도 나를 업어주고 싶긴 하겠지만 사람들 보는데서 나를 업는게 부끄러웠다.
“그래도 업어줘.”
그렇게 또 떼를 썼다.
“저어기 사람 오잖어.”
그러며 앞을 가리킨다. 저어기, 콩알만한 사람이 오긴 오지만 너무 멀다. 그렇게 먼데서 오는데도 누나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엄마한테 이를 거다.”
누나에게 겁도 주고, 떼도 쓰고 그러는 사이, 저쯤 밤나무 사이로 우리 집이 보인다. 그쯤 되면 누나는 엄마에게 이른다는 내 말이 두렵다.
“우리 ‘어데꺼정 왔나?’ 할래?”
그러며 누나가 어깨를 내민다.
키가 작은 나는 얼른 어깨 대신 누나의 허리춤을 두 손으로 잡는다.
“어데까정 왔나?”
나는 눈을 감고 누나 뒤를 따라가며 묻는다.
“아직아직 멀었다.”
누나는 앞 서 걸으며 대답한다.
“어데꺼정 왔나?”
“소나무 밑에 왔다.”
“어데꺼정 왔나?”
“돌다리를 건넜다.”
“어데꺼정 왔나?”
“골목꺼정 왔다.”
“어데꺼정 왔나?”
“도랑까지 왔다.”
“어데꺼정 왔나?”
말놀이가 그쯤 가면 내 몸의 반이 누나 허리춤에 매달린다. 암만 놀이라도 어린 1학년짜리에겐 힘들다.
“어데꺼정 왔나?”
“우물까지 와았다.”
그쯤 가면 나를 끌고가는 누나도 힘에 부친다.
“어데꺼정 와안나?”
내 몸이 누나 허리춤에 송두리째 매달린다. 누나 허리가 내 쪽으로 기운다. 책보를 앞으로 멘 누나가 이마의 땀을 훔친다. 그때쯤 누나가 내 앞에 등을 내밀고 풀썩 앉는다.
“자, 누나 등에 업혀!”
누나는 약았다.
우물까지 왔으면 집이 멀지 않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다. 이쯤에서 누나는 나를 업고 엄마가 기다리는 집으로 들어가려는 거다. 그런 누나를 보면 엄마는 누나가 학교에서부터 여기까지 나를 업고 오는 줄 알 테다.
“얼른 업히라니!”
생각 같으면 냅다 집으로 뛰어들어가 엄마한테 이를까, 하다가 만다.
“알았어.”
나는 누나 등에 업힌다. 누나가 간신히 일어난다. 누나도 힘들기는 힘들 테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마루닦기며 물걸레 청소까지 다 하고, 말 듣지 않는 남동생까지 데리고 오려니 힘들긴 힘들 테다.
누나는 나를 업고 끙끙거리며 안마당으로 들어선다.
“어유, 우리 막내아들 이제 오는구만.”
엄마는 나를 업고 들어서는 누나는 안 보고, 누나 등에 업혀오는 나만 본다. 엄마가 나를 ‘에구, 우리 강아지’ 하면서 받아 안는다. 누나는 그게 또 뭐가 불만인지 두 발로 땅바닥을 캉캉캉 구르며 제 방으로 들어간다.
“어데꺼정 왔나?”
나는 가끔 그때의 그 놀이를 떠올린다.
허둥지둥 출근을 할 때나, 달이 좋은 밤 놀이터 나무의자에 앉아 그 옛날의 달과 별을 볼 때다. 달을 보고 앉아 있으면 “어데꺼정 와안나?”, “도랑까지 와았다” 그러는 어린 시절 누나와 내 목소리가 들리는 듯 선하다.
“어데꺼정 왔나?”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을까. 기나긴 내 인생길의 어디쯤을 걸어가고 있는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내가 꿈꾸던 그 방향의 길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이 넓은 우주 중의 한 별, 지구에 내려와 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내와 나를 닮은 딸아이를 낳고, 그 딸아이가 크고, 그가 어느 한 방향으로 저렇게 가고 있는 뒷모습을 볼 때면 더욱 내가 ‘어데꺼정’ 왔는지 알고 싶다.
어린 시절엔 나를 이끌고 가던 누나가 내 앞에서 그 물음에 대답을 해주었다. 아직 아직 멀었는지, 돌다리까지 왔는지, 동구까지 왔는지.
그러나 지금은 그 질문을 나는 내게 하고 그 대답도 내가 해야할 나이가 됐다. 골프채나 들고 거들먹거리는 그 행렬에 나도 들어서야 하는 건지, 승진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건지, 물질을 모으는 일에 나도 뛰어들어야 하는 건지, 그런 세속의 욕망을 쫓아가느라 나는 나를 버리고 허겁지겁 살아가는 건 아닌지......
6,70년대를 걸어온 사람들이라면 다들 이 “어데까정 왔나?”를 부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들도 살아오면서 길의 방향을 몰라 헤매일 때면 그 옛날의 이 말놀이를 가끔은 생각했을 테다. 그래서 방향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무사히 왔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재미난 말놀이 중에 이런 놀이도 있다.
“어디 갔다 오나?”
“갯가 갔다 온다.”
“무얼 하고 오나?”
“고기 잡아 온다.”
“몇 마리 잡아 왔나?”
“세 마리 잡아 왔다.”
긴 긴 겨울, 애들은 썰매를 타고, 팽이를 치고, 연날리기를 한다. 빡빡 깎은 머리에, 흐르는 코를 훌쩍거리면서 딱지치기도 한다. 그렇게 어제 한 놀이를 오늘 하고, 또 내일 하고, 또 내일 하고 그러며 놀았다. 그래도 뛰어노는 일이 싫증날 때가 있다. 그도 저도 다 싫을 때면 흙담장 밑에 쪼그려 앉아 볕을 쬐며 눈 녹는 마늘밭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놀 궁리를 해내던 누군가가 무릎을 탁 친다.
그래, 이 놀이이다.
모여앉은 애들이 리듬에 맞추어 맨 첫자리에 앉은 애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어디 갔다 오나?” 하고 물으면 그 아이가 “갯가 갔다 온다.”고 대답하는 놀이.
“몇 마리 잡아 왔나?” 그러면 맨 첫자리에 앉은 아이가 머리를 써서 리듬에 맞게 “세 마리 잡아 왔다.” 하고 받는다. “나 한 마리 다오.” 그러면 “무엇하러 달래나?” 하고 받는다.
“우리 동무 씨동무, 둘레둘레 앉아서
볶아 먹고 지져 먹고, 지져 먹고 볶아 먹고 냠냠냠.”
마지막 두 행은 후렴이다. 맨 첫 자리에 앉은 아이는 이렇게 해서 무사히 말놀이에 통과했다. 그러니 통과한 아이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흥이 나 온몸을 들썩들썩하며 후렴노래를 한다.
이제는 그 다음에 앉은 아이가 대답할 차례다.
“어디 갔다 오나?”
그 곁엣아이들이 흥을 돋우어 손가락질을 하며 또 묻는다.
“뒷방 갔다 온다.”
“뭐하러 갔다 오나?”
“방구 뀌고 온다.”
이쯤 되면 애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킥킥댄다.
“무슨 방구 꿨나?”
“빨간 방구 꿨다.”
“방구 한 대 다오.”
“무엇 하러 달래나?”
“엿 사먹게 달래지.”
배 고픈 시절,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노래라는 것은 다 먹는 것에 닿아 있었다.
그때는 비록 가난했지만 어디든 두엇만 모이면 놀거리를 궁리해 심심하지 않게 놀았다. 연거푸 묻는 질문에 대답을 창의적으로 연거푸 재미나게 해내는 일. 옛날의 아이들은 돌발적인 놀이에도 즉흥적으로 잘 대응하며 창의적으로 놀았다.
근데 그때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초등학교 교과서에 창조수학이 도입됐다. 수학 풀이를 쉽게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하라는 거다. 요즘은 입만 열면 창조니 창의니, 스토리텔링이니 한다. 그러나 우리는 50년 전 그 때에 이미 좀 구식이긴 하지만 놀이를 통한 스토리텔링을 창의적으로 하며 커왔다.
그 까닭이겠다.
누구에게 옛날이야기를 들으면 그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구부리고 가감해 이웃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일에 익숙하다. 그뿐인가. 너트를 잃어버리면 너트 대신 고무줄로 볼트를 감아 썼고, 안경다리가 부러지면 테이프를 붙여 썼다. 이게 구식 세대들의 스토리텔링이고 창의성이다. 은행열매를 통째 구워놓고 펜치로 껍질을 깨뜨리는 나를 딸아이가 본다.
“우리 세대들은 생각도 못할 일이야.”
그러며 펜치를 쓰는 나를 보며 치를 떨 듯 놀란다.
“어디 갔다 오나?”
“밭에 갔다 온다.”
“뭐하러 갔다 오나?”
“감자 캐고 온다.”
“무슨 감자 캤나?”
아이들이 손가락을 저어 리듬에 맞추어 묻는다.
자, 누군가가 대답할 차례다.
그가 바로 당신이다. 대답해 보라.
“무슨 감자 캤나?”
'문학비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견우와 직녀, 그 속에 숨은 성 억압 이데올로기 (0) | 2013.03.14 |
---|---|
옛날에 옛날에 옛날이야기 (0) | 2013.03.10 |
내 문학엔 대관령 같은 남성이 자리하고 있다 (0) | 2013.01.23 |
내 문학의 나침반, 이원수 선생님 (0) | 2013.01.09 |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0) | 2012.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