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내 문학의 나침반, 이원수 선생님

권영상 2013. 1. 9. 23:53

내 문학의 나침반, 이원수 선생님

권 영 상

 

 

 

 

나는 전형적인 시골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때가 남북동란이 한창이던 때다. 그런 때에 태어났으니 밥이 귀했다. 그러나 나는 다행히 밥술이라도 뜨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근데 우리가 살던 그 무렵의 마을정서는 땅이 있는 집이든 없는 집이든 다 똑 같이 배를 곯으며 살았다. 너남없이 쑥이나 냉이, 시래기를 넣은, 곡기가 적은 밥을 먹었다.

 

우리가 사는 인근에 강릉 공군비행장이 있었다. 그 비행장에선 군인들 밥을 짓느라 생긴 누룽지를 민간에 나누어줬다. 우리 동네엔 집안 형편이 가장 어려운 돈만이네가 있었다. 돈만이네는 비행장까지 가 누룽지를 얻어다 불려 먹었다.

먹는 게 귀하지 않던 시절에도 누룽지는 맛있는 먹거리였다. 하얀 입쌀로 지은 밥의 큼직한 누룽지는 늘 험한 밥을 먹던 우리들의 관심을 끌었다. 비행장이라면 그리 멀지 않았다.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큰 냇물을 하나 건너 모랫길을 쭉 가면 거기 있었다.

“우리도 누룽지 얻으러 비행장 가요.”

누룽지가 먹고 싶어 안달을 하던 나는 끝내 아버지를 졸랐다.

“우리마저 먹으면 돈만이네는 굶고만다.”

그때 아버지는 나를 타이르셨다.

 

그 무렵, 나는 외갓집에서 시를 하나 읽었다.

 

저녁 밥상에 아기가 운다.

밀가루 수제비에 트집이 났다.

 

어머니는 달래다 화를 내시고

아기는 밥 내라고 더 소리친다.

달님이 들창으로 들여다 보고

창밖엔 코스모스가 듣고 있었다.

 

“저녁”이라는 동시였다.

이 작품이 누구의 것인지 나는 몰랐다. 그래도 그게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고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건 그 시절 집안 사정이 모두 이랬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어찌어찌하다 아동문학의 길에 들어섰다. 동시가 무언지 동시의 정체성을 몰라 서적을 뒤지다가 발견한 게 이 동시였다. 이 동시가 바로 이원수 선생님 작품이었다. 나의 방황은 이 동시에서 끝났다. 내가 찾아헤매던 동시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이 여기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내가 쓰는 동시의 방향이 엇나갈 때면 이 동시를 떠올린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내 동시의 나침반인 셈이다.

 

 

1979년쯤일 것이다. 작고한 최도규 시인의 동시집 출판기념회에 이원수 선생님께서 오셨다. 아마도 김영일 선생님이 오시는 편에 함께 동행하신 걸로 기억하고 있다. 그때 기념행사가 끝나고 경포대 해수욕장에 들렀다. 거기서 목마르도록 푸른 바다를 보고, 시내에 있는 동명극장 골목 “보리밭”이라는 음식점에서 뒤풀이를 했었다. 아동문학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된 새내기인 나는 간신히 말석에 끼어앉았다. 그러고는 저쪽에 앉으신 선생님의 말씀을 듬성듬성 얻어듣기나 했었다.

다른 말씀은 기억나지 않아도 이 말씀만은 또렷이 내 머리에 남아있다.

 

“아동문학은 비참한 아동 편에서.”

나는 그때 이미 이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내 친구 돈만이가 있었고, 그들을 위해 내가 좀 먹고 싶어도 참아야한다는 아버지가 있었다. 그리고 어릴 적 외갓집 컴컴한 방안에서 읽었던 “저녁”이라는 동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어찌어찌 서울로 올라와 글을 쓰고 살았지만 선생님을 가까이서 뵙지는 못했다. 내가 가입한 문학단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 썩 뒷날, 신문 지면에서 이원수 선생님께서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생님은 가셨지만 내 글의 바탕에는 늘 나침반 같은 선생님이 계신다.

 

                                                                                이원수문학관 회보 <꽃대궐> 2012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