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권영상
산중 호수에 홀연히 떠 있는 암자.
그 법당 안에는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을 죽이고, 이제는 청년이 되어 피신해온 동자승의 불타는 번민이 있다. 노스님은 사랑의 배신에 분노하는 그를 위해 헝겊 끝에 먹을 찍어 나무 판자바닥에 마하반야밀다심경을 쓴다.
“이 글씨를 파면서 분노를 지워라.”
노스님은 동자승에게 찾아온 가엾은 숙명을 쓸쓸해한다.
배신한 여인을 죽이고 그 칼을 짐보따리에 숨겨 암자로 들여온 동자승은 그 살생의 칼로 반야심경을 새기며 여인에 대한 들끓는 내면의 격분을 지워나간다.
그렇게 분노의 분출구를 간신히 찾아갈 때다.
암자가 바라다 보이는 저쪽 일주문 앞에 두 명의 형사가 나타난다. 그들은 서서히 배를 타고 암자로 들어온다. 총으로 자수를 권하는 형사와 칼로 자신의 목을 그으려는 동자승의 대치.
“반야심경을 다 파거든 내일 아침 그때 그를 데려가시오.”
노스님은 이들의 대결을 그렇게 중재한다.
동자승은 그 칼로 제 몸의 살점을 파내듯 판자바닥의 글씨를 판다. 반야심경을 다 파고 잡혀가야 하는 동자승과 반야심경을 다 팔 때까지 등 뒤에서 이를 기다리고 있는 두 명의 형사. 밤새워 글씨를 파내려가던 동자승은 지친 칼을 놓고 쓰러져 잠이 든다. 이를 지켜보던 형사가 자신의 옷을 벗어 동자승을 덮어준다. 형사와 노스님은 동자승이 남긴 나머지 글씨를 밤을 새워 판다.
다음 날, 아침잠에서 깨어난 동자승은 반야심경을 파내려가는 형사들과 노스님을 본다.
한 사람의 죄업은 죄를 지은 그 사람 혼자서는 씻어낼 수 없다. 그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이들의 도움 없이는 악업을 벗어버릴 수 없다. 그렇듯 반야심경은 다 파졌다. 그리고 동자승의 마음의 분노도 그런 도움으로 지워진다.
약속했던 대로 동자승은 형사들을 따라 배를 타고 암자를 떠난다.
그리고 이 영화의 또 한 계절, ‘가을’이 간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중의 ‘가을’이다.
이 영화의 ‘봄’은 이렇게 시작된다.
카메라 파인더가 열리듯 일주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 안에 너무도 낯설고 좀은 당혹스러운 ‘호수 속에 떠있는 암자’라는 프레임이 가득히 차온다. 겹겹이 둘러싸인 산과 깊은 호수와 암자, 어쩌면 여인의 자궁같은 은밀한 정경이다. 이 소재들이 수묵화처럼 펼쳐내는 사계를 배경으로 노스님과 동자승의 내면 심리를 조용히, 때로는 격렬하게 이끌어간다.
동자승은 가끔 배를 타고 일주문 밖의 세상을 만난다. 뱀을 만나고, 개구리와 물고기들을 만나면서 그에게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악업을 저지른다.
동자승이 점점 자라 사랑이라는 감정에 눈을 뜰 때쯤.
이 암자에 몸이 아파 요양을 하러 오는 여자가 있다. 동자승은 불현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사랑은 깊은 정사만큼 뜨거워져 둘은 끝내 암자를 떠나 세속으로 달아난다. 세속의 것은 화려하나 그 안에 욕망과 악업으로 가득찬 고통이 숨어있음을.
함께 달아난 여인은 동자승을 배신하고 다른 사내의 품안으로 가버린다. 격분한 동자승은 여인을 죽이고 일주문을 거쳐 다시 암자로 돌아온다.
동자승의 짐보따리에서 피묻은 칼이 나온다.
칼을 품고 피신해온 동자승은 번뇌한다. 마치 불타는 가을 배경의 단풍들처럼 서럽게, 때로는 용렬하게 몸살을 앓는다. 그런 때에도 나를 안타깝게 한 건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며 호수다. 그들은 프레임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나약한 인간의 눈물겨운 번민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한 존재의 아픔을 답답할 만큼 조용히 응시할 뿐이다.
노스님은 살인범으로 돌아온 동자승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가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한 칸밖에 안 되는 이 암자에 두 명의 주인이 있을 수 없다. 그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 누군가의 소멸이 필요하다. 끝내 노스님은 배 위에 장작을 쌓고 그 위에 앉아 몸을 불태워 소신한다.
유달리 이 영화엔 물과 비 이미지가 가득하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화면이 흠뻑 젖을 만큼 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물은 죄와 업을 씻어내거나 정화하는 모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모성이야말로 구원의 절대적 존재이다. 물은 이 영화에서 특정한 임무는 없었지만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사건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간다. 물은 사람의 일과는 무관하게 유유히 흘러간다는 본성을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동자승은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어느덧 장년이 되고, 그 무렵 또 한 여인이 품에 안고 온 아들을 옛날의 자신의 어머니처럼 이 암자에 맡기고 간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나고 죽음과 다시 나는 일이란 늘 흘러가는 물의 속성과 다름이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업의 굴레 속에서 산다. 이게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그게 맞다면 이 영화는 크게 새로울 게 없다. 그리고 인생에 대해 질문을 요구하는 방식도 크게 새로울 게 없다. 승려가 세속의 사랑에 빠지는 테마도 크게 새로울 게 없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우리를 사로잡는 것이 있다.
산중 호수와 그 위에 떠있는 너무도 낯설어 보이는 암자가 있는 풍경이다. 이 좀은 서먹한, 그러나 왠지 묘한 동양적 분위기가 우리의 의식을 지배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그 풍경은 머릿속에 잔상처럼 고요히 남는다. 같은 주제의 영화라도 어떤 한 이미지 때문에 특별히 오래오래 마음속에 기록되는 영화가 있다. 그런 묘한 끌림이 그 풍경 속에 있다.
김기덕 감독의 제 69회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을 축하하며, 지워지지 않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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