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으로
포옥 가릴 수 있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 만하니
두 눈을 꼬옥 감을 수밖에....
좋아하는 계집아이가 있었어요. 이름은 정순이, 유정순. 얼굴은 갸름하고 통통했지요. 코는 오똑하고 눈은 쌍까풀이었어요. 한 마디로 예뻤습니다. 같은 반인 그애는 나보다 키가 컸어요. 그래서 나는 교실 앞자리에 앉았고, 그애는 중간쯤 자리에 앉았습니다. 공부를 하다가도 그애가 보고 싶으면 나는 고개를 돌려 그애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럴 때에 보면 그애는 연필 쥔 손으로 턱을 고이고 선생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뻤습니다.
“왜 자꾸 뒤를 돌아다보는 거니?”
결국 그런 행동이 선생님 눈에도 띄었습니다. 그래도 그애가 보고 싶으면 선생님 말씀을 잊고 또 슬그머니 고개를 돌립니다. 그러다가 그애와 눈이 마주치면 나는 얼른 바르게 앉습니다.
언젠가 그애 집 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권영상!”
그애가 집에서 나와 나를 불렀습니다. 대답도 못하고 서 있는 날 빤히 보더니 다시 저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애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쾅쾅 뛰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갈 때도, 공부를 할 때도 그애 생각만 났습니다. 그때부터 눈을 감는 버릇이 생겼어요. 눈을 감으면 쌍까풀 눈을 한 그애가 보였거든요, 또렷하게.
(글 권영상, 소년 2013년 4월호)